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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디자이너 Jul 05. 2024

상하이 봉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사람들

제로(0)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중국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숫자를 0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공기로도 전파되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그게 궁금했는데, 사람들을 집안에 넣어놓고 집밖으로 개미 한 마리 못 나오게 했다. 그 당시 감염자는 팡창(方舱)이라는 시설로 강제 이송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아픈 것보다 이곳으로 끌려가는 게 더 무서웠다.

체육관의 간의 침대에서 말 그대로 음성이 나올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한다. 가장 큰 이슈는 부모와 아기를 따로 떼어 놓는다는 것이었다. 아기는 양성, 부모는 음성이면 아기만 팡창으로 이송되었다. 100명이 넘는 아기들이 10명도 안 되는 간호사들이 돌보고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혹시라도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누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 영사관?

내 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기 시작했다. 무조건 안 걸려야 한다.  


  

2022년 3월부터 봉쇄에 들어간 아파트들도 있었다. 단지 한 명의 양성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획일적인 정책이 아니라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하고, 지역 혹은 단지에 따라서 실행되는 정책이 달랐다.

외국에서 코로나 확산으로 봉쇄를 할 때 중국은 평화로웠다. 그 평화로웠던 2년간의 시간이 갑자기 상하이 봉쇄라는 강경책으로 바뀌고 나서 일상이 180도 바뀌기 시작되었다.

4월 1일부터 2주간 봉쇄를 한다고 했다. 나는 정말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설마 사람들을 몇 달간 집에 가둬두겠어?!!!’


그 당시 치치는 5개월 아기였다. 이유식을 앞두고 봉쇄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무슨 모험을 떠나는 것 마냥 신이 났다. 

남편이 회사를 안 가고 육아를 도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일까?

약속한 2주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봉쇄를 했는데도 양성자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기저귀와 분유를 챙겨두지 못했다. 아니 챙겨두지 않았다. 2주간의 모험이 끝나고 주문하려고 했었다.

기저귀를 구할 수 없다면 내 티셔츠로 기저귀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다음 난제는 분유. 5개월 아기는 분유나 모유가 주식이었기 때문에 이유식으로 대체할 수 없었다. 

-저번달에 단유 했는데. 단유하고 다시 젖을 물리면 젖이 나올까? 그다음에 다시 단유가 될까? 과연 치치가 젖을 다시 물것인가?

뭐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아직 남아 있는 분유 한 통을 다 먹이기 전까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초기 봉쇄 기간에는 상하이로 물건이 들어올 수 없었다. 물류가 묶인 것이다. 그야말로 고립. 분유, 기저귀를 살 수 있는 그룹이란 그룹엔 다 들어갔다.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하는 일이 그룹 소식 확인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오늘은 풀어진 물량이 있는지. 가뭄에 콩 나듯 조금씩 물류가 풀리긴 했지만 아주 소량이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다.

한국 엄마들은 띠별로 그룹을 만들어서 소통하고 있었는데 나는 소띠 맘 멤버였다.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면 소띠만방에도 공유했다.


아침에 들은 내일 아침 9시에 압 * 밀분유가 풀린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떤 엄마가 나에게 톡을 보내왔다. 압* 밀 분유 미니 프로그램 상용 법을 물어왔다.(중국은 위챗 앱에서도 각 브랜드마다 미니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위챗 안에서 물건을 바로 구매할 수 있다. )


두둥! 8시 58분. 이게 뭐라고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이미 내 광클릭이 먹히지 않아서 구매를 몇 번 실패했었기 때문에 더 떨렸다.

진짜 59분에서 00으로 변하는 순간 구매 버튼을 눌렀다. 6통 구매 성공!!!!!!

안도의 미소가 절로 나왔다. 아기 배를 굶기지 않겠구나. 이제 걱정 없겠어!!

조금 뒤 그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혹시 구매 성공하셨어요?

-네. 저는 구매했는데, 그쪽은요?

-저는 실패…..


순간 나는 갈등했다. 분유를 한 통이라도 줘야 할까? 아니면 혹시 모를 장기 봉쇄에 대비해서 그냥 쟁여두어야 할까?

아. 너무 어렵다. 맘 같아선 두통이라도 주고 싶었다.

’ 정작 나중에 치치가 먹을 분유가 모자란다면?‘ 2초 되는 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그 엄마는 한국촌에 살고 있어서 우리 집과 거리도 멀었다. 현실적인 이유로 분유는 공유되지 못하였다. 

이게 진짜 나의 모습이겠지? 나도 어쩔 수 없구나. 내가 먼저, 내 아이가 먼저구나. 분유 구매 성공의 기쁨과 씁쓸함이 밀려왔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한 상하이 봉쇄가 미웠다..


  

첫 번째 이미지: 봉쇄가 끝나고 거리에서 이발하는 사람들. 두 번째 이미지: 나는 쫄보라 집 밖을 나갈 엄두를 못 냈는데, 남편이 옥상으로 가자고 했다. 자유를 보았다.



기저귀, 분유를 구하기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고생하는 엄마들이 대단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치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 엄마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도시락 4개를 싸고 생계를 위해서 일을 했다. 엄마의 책임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엄마가 생각이 났다. 임신했을 때 엄마의 사랑과 희생은 높게만 보였다. 과연 내가 우리 엄마처럼 자식을 위한 무한한 사랑과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봉쇄를 겪으면서 나 역시 우리 엄마처럼 나의 아이에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은 자신이 생겼다. 

높게만 보이던 엄마의 사랑을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 생겨난 것 같아서 기뻤다.


 이렇게 나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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