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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Dec 15. 2023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

제1장 지금 나는 무엇을 쓰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



그래서인지 사실 나는 이 고민을 즐겨 하지 않는다. 시를 쓰면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그려 넣거나, 아니면 쓰기 전에 미리 특정 주제를 정해놓는다. 이를테면, 이번 시집을 관통할 주제는 ‘소년’이라고, 무척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틀을 만들고, 시를 쓰면서 그 세부적인 사건과 사물들을 갖춰나간다. 걸으면서 방향을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향을 정한 후에야 걷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는 이 두 가지가 교묘하게 얽혀 있다. 생각하지도 않은 난관이 닥쳐와서 긴장감을 높이고 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끔 만든다.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만 알아두자.


                                                            *


모든 문학에서 가장 짧은 장르는 ‘시’다. 이 얘기는 시에는 반드시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개념이 암묵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필요한 단어와 문장만 남기고 모조리 버려야 한다.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시는 언어의 경제성이 충실히 구현되는 장르’라는 말이 향한 곳이다.      


찬비 내리네 옛사람의 밤 역시 나 같았으리

─ 요사 부손8)의 하이쿠     


도무지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다. 쓸쓸한 풍경은 ‘찬비’로 압축되고,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은 ‘옛사람의 밤’으로, 그리고 정처 없는 마음의 방랑은 ‘나 같았으리’에 표현되고 있다. 류시화 시인이 언급한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말은, 시에서 ‘적재적소’라는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좀 더 과장하자. 시는 화석화된 시간을 현재로 살려내는 마법이다. 그 마법의 중심에는 언어가 있다. 여기서 언어는 온전한 육체로서 미라처럼 뼈만 남은 앙상한 무엇이 아니다. 시를 쓰면서 시인은, 언어에 내장된 경험이라는 ‘뼈’를 취하고, 정서라는 ‘살’과 ‘근육’을 붙이며, 생기 혹은 활력이라는 ‘피’를 주입한다. 화석은 언어-속-에서 움직이며 현재를 다시 살게 된다. 물론 시인이 만든 이미지의 환등을 상영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


자,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방법은 있다.      


첫 번째는 농담 같지만 온종일 이 생각만 하는 것이다

나만이 가진 독특한 성향과 습관을 살펴보고, 또한 나의 경험에 담긴 이념과 태도,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것들의 목록을 써가는 것이다. 아니면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청년실업, 보이스피싱, 전세사기 등 사회적 제문제들도 충분히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목록을 적다 보면, 순간 무엇을 쓸지 혜안을 뜨게 된다. 적당한 날을 잡아 한 번 해보시라. 어느새 지겨워진 당신은 이 쓸모없는 고민을 단번에 물리치고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평소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브레인스토밍을 해보는 것이다아니면 아무런 목적 없이 해보는 것도 좋다

이를테면, 3분으로 시간을 제한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는다. 보통 에세이 쓰기나 논문 작성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시 창작에서도 유용하다. 쓰다 보면 막히는 순간이 있고, 그때부터 무의식에 각인된 ‘말’들이 표출된다. 창작자가 몰랐던 ‘나’의 이면이 떠오르는 것이다. 나도 가끔 이 방법을 쓴다. ‘문장-멍’(불멍이라는 단어와 운을 맞춰서)이라고 부르는데, 생각도 정리되고 잘 안 쓰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단어들도 내 가시권에 들어온다.      


세 번째는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다

만일 이 질문—'무엇을 쓸 것인가'—에 정답이 있다면, 독서가 가장 근접한 답일 것이다. 다시 말해 무엇을 써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다른 작가들은 무엇을 형상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최적의 방법이라는 것. 독서는 수천 년을 이어온 문장 강화의 최대치이자, 경험의 폭을 넓혀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독서가 이끄는 사유의 방향들은 모두 시적 대상이 될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독서는 순도 높은 아이디어 확보를 위한 보고다. 문장의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진시황의 불로초다. 게다가 시적인 아이디어의 산실이다. 만일 독서 중에 문장(혹은 ‘아이디어’)이 떠오르면 바로 책을 덮고 메모를 하자. 그 영양가 높은 비타민을 공중에 무작정 흘려버리기 전에 말이다. 등단 무렵 유명한 선배 시인이 책을 많이 읽으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독서가 훗날 너를 살리게 될 거라면서. 


다만, 독서의 분야를 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를 쓴다고 해서 오직 시집만 읽는다면 경험의 폭은 물론이고 아이디어를 포착하는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 문사철(文・史・哲)로 통칭되는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 종교나 의학, 물리학, 생물학 관련 서적을 비롯해 각종 도감에도 가급적 내 독서의 중력을 최대한으로 작동시키자. 할 수 있으면 문자 중독자가 되자.      


네 번째는 이 고민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생활만 즐기는 것이다다시 말해 시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신기하지만 효과는 있다. 무엇을 쓸지 정말로 모르겠다면, 몇 가지 방법을 시도했지만 효력이 없다면, 과감하게 책과 노트를 덮자. 산이나 바다로 가거나 간만에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자.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좋겠다.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잠시나마 사진작가가 되는 것은 어떨까. 이것도 일이라 느껴진다면, 일상생활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자. 시가 안 써진다고 굶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경험 쌓기가 아니라, 그저 머릿속을 백지처럼 텅 비게 하기 위해서다. 굳이 정당성을 부여한다면─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이니. 항아리에 빗물이 가득하면 장을 담글 수 없다. 그때는 생각을 멈추고 속부터 게워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은 전혀 모르는 날짜에, 시간에 불쑥 ‘시’라는 손님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신은 믿는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다만, 그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시를 쓰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과 시를 쓰지 못할 때의 '불안'도 이겨내야 하니까. 내 경우를 들자면, 나는 시를 쓰고 싶을 때 쓴다. 당연히 쓰고 싶지 않을 때는 안 쓴다. 그런데 한 번 봇물이 터지면 열 편이고 쏟아낸다. 광기에 사로잡힌 듯, ‘그것’은 스스로 나를 열고 나를 움직이게 한다. 가끔은 ‘목소리를 받아 적는다’라는, 이상한 상태도 찾아온다. 그 순간은 갑자기 찾아온다. 이런 현상은 바람직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나는 그렇다는 얘기다. (*)





8) 요사 부손(與謝蕪村, 1716~1784)은 일본 3대 하이쿠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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