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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Dec 29. 2023

아버지의 부재

제1장 지금 나는 무엇을 쓰고 있는가?

[시 창작 에피소드 #1]     


아버지의 부재



내 경우를 들자면 내 유년의 기억에 남아 있는 풍경과 사건에는 항상 ‘아버지의 부재’가 엉켜 있다. 등단작에도 이러한 아린 감정은 남아서 나를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살아계시니, 그 상황이 꼭 '부재'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말로는 감당하기도 여의치 않다. 아버지는 중동에 건설노동자로 가셨고, 이름도 생소한 사막에서 5년여를 보내셨다. 나에게 그 시절은 공백이다. 아버지가 없는 가족 사진은 여전히 낯설다.     


아버지가 대청에 앉자 폭염이 쏟아졌다.

족제비가 우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맑은 바람에

숲이 흔들리면서 서걱서걱 비벼대는 소리라 말했다.

부엌에서 어머니와 멸치칼국수가 함께 풀어졌다.

땀을 말리며 점심을 먹는다.

아버지의 눈을 훔쳐본다.

여자의 눈을 쳐다보면 눈이 뽑힌다는

아랍의 무서운 풍습을 말한다. 석류가 터질 때

아버지는 아랍으로 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빗장을 단단히 채우고 방을 나오지 않았다

세밑까지 어머니는 화석이 되어있을 것이다.

기다리면 착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내게는 마음이 없고, 문도 없었던 겨울이었다.

─ 박성현, 「폭염」 전문     


몇 가지 단편적인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표정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표정했다는 얘기도 아니다. 단지 그는 가면을 쓴 듯 표정을 멀리 두었다. 그 가면 너머에서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랍에서 몰래 마셔야 했던 술을 매일 드셨고, 호기롭게도 1970년대 가부장의 특권을 만끽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검게 그을린 얼굴로 고국에 오시자 두 형제에게 그토록 살가웠던 어머니는 확연하게 달라지셨다. 수다스러운 소녀의 이미지는 없어지고 지나치게 조용한 여인으로 바뀌었다. 한달 후에는 아랍으로 다시 가야하는, 아버지의 부재가 믿기 힘들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버지가 계시는 동안 어머니는 우리 형제와 잠을 자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 아버지는, 아랍의 이상한 풍습을 몇 가지 농담을 섞어 얘기했다. 석유에 밥을 말아 먹는다든가, 사막에도 눈이 내린다든가 하는 시시한 말이었다. 나는 집중해서 들었지만, 여자의 눈을 보면 눈이 뽑힌다는 대목에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가능한 걸까. 어머니의 눈을 오래 쳐다보면 내 눈도 뽑히게 될까. 그때 멸치칼국수가 풀어지면서 가족들은 땀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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