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천천히

2024.03.28. 목

by 고주


울트라 마라톤 골인 지점으로 달려오는 자전거, 그 위에 발을 놀리는 주인처럼 매일 바쁘게 오는 녀석은 비가 온다고 걸어오는데도 역시 헐레벌떡이다.

안경을 들고 1학년 1반을 찾는 할머니.

돌아가는 길에 우산도 없다.

손자가 안경을 놓고 갔다는 것을 알고는 정신없이 뛰어나왔을 것이다.

비가 온다는 것을 알았어도 오직 손자 생각에 뒤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이 그랬고, 우리가 그러고 있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

3월이 딱 하루 남은 수업 시간.

지나온 책의 쪽수가 달랑 20여 쪽.

마음이 바쁘다, 숨도 쉴 틈 없이 달린다.

수업을 끝냈는데도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꺼림칙하다.

아무리 바빠도 서두르면 안 된다.

다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라도 자세하게 꼼꼼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을.

풀이는 스스로 할 수 있게 해도 되는데.

항시 욕심은 금물.

다시 한 달을 더 할 수 있으니, 호흡을 고르자.

4교시를 힘들게 마쳤는데, 특별반으로 갔던 윤이가 들어온다.

GTX A선이 주말에 개통된다고.

주말에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지하철을 타겠다.

오로지 지하철만 머리에 있는 아이.

함께 가는 엄마와 아빠는 어떤 심정일까?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아픔, 그 깊이를 어찌 다 알겠는가?


내 후회할 줄 알았다.

결국 부모님들이 함께 학교에 오셨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해서 일이 일단락된다.

학폭은 아니더라도 생활지도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일은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알을 배고 말았다.

내 뭐라고 하더냐, 맹꽁아.


명의에게 더디고 더딘 얼굴을 맡기로 가는 길.

학원가에 가득한 아이 중에 인사하는 몇이 있다.

이거 옷차림부터 살펴봐야겠다.

술 먹고 갈지자걸음이라도 걸으면 큰일 나겠다.

조심 또 조심.

얼굴아!

빨리 돌아와, 해찰하지 말고.

keyword
이전 18화후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