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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

2024.02.29. 금

by 고주


검은 ‘송로버섯 베리 청’ 어깨에 “조금 시끄러울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이 빨리 키우겠습니다.”라는 편지가 붙어 문 앞에 놓여있다.

택배가 가득 쌓여있는 경우가 많아 고개를 갸웃하면서 바라보았던 1호.

출산 준비를 했던 모양이다.

한집 건너여서 아이 소리도 들리지 않을 텐데, 받아도 되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편한 관계가 된다고, 큰딸아이는 당연하다는 눈치다.


산책길 옆 화단에 한 다리 들고 있는 불도그보다 더 깊은 주름이 얼굴을 뒤덮은 아저씨.

웅크린 어깨, 축 늘어진 손에 매달린 똥 주머니.

미세먼지 경보가 내린 아침, 근심을 낳을 때가 다 되었는지 배가 터지려 한다.

농구장에서 공을 튀기는 두 녀석.

밥은 먹고 나왔을까?

달빛 아래에서 공을 찼다는 후배는 그 기술로 세상으로 나가는 강 위에 다리를 놓았는데.

무엇이든지 저 노력이면 칼도 되고 방패도 되리라.


총선의 분위가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데, 젊은 부장님은 수년째 기권을 했다나.

찍고 싶은 당도, 사람도 없다고.

최선이 없다면 최악을 피하는 것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는다.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은 이야기이니.

아들 둘 키우는데, 내일이 없이 오늘만 산다는 미술선생님.

남편의 월급으로 아이들 학원비하고, 자신 것으로는 먹고살면 그다음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단다.

젊은이들이 비트코인에 열광하고 영끌해서 집을 사는 것이 이해된다.

고향 등지고 치열한 정글에 들어와서 배우는 법칙이다.

8반 수업.

진도가 빠른 반이라 잠깐 옆걸음으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이야기했던 데카르트에 대해 들려간다.

‘눈물이 날 것 같아 보건실에 좀 다녀올게요.’라고 쓴 노트를 보여주는 아이.

‘진도나 나갑시다’하는 표정으로 건방 떠는 눈빛이 흐려지는 몇.

음수의 덧셈, 뺄셈이니 하찮지.

생활 속에서 음수가 필요한 경우를 예로 찾는 발표 시간.

모락산 정상까지 150m 남았으니.

영어단어를 외우지 않았으니,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땡.

끝 종이 울리려면 2분이 남았으니, 모두 기발하다고 박수.

웃으며 2분 먼저 수업을 끝낸다.

방송 댄스반.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한 옥타브 높게 익숙하지 않은 리듬으로 울리는 소리.

“왜 징징거리는 거야!”

날카로운 선생님의 꾸지람.

“기분이 좋으면 하는 소리예요.”

은이가 통역을 한다.

쉬는 시간에도 뒤에서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동작을 함께 하는 우.

티 없이 맑게 웃고 있는 진이는, 지금 낙원에서 춤을 추고 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천사들이다.

우울한 정이는 풀 죽은 보릿대다.

“못된 밀당은 왜 하는 거냐고, 못된 쉐끼.”라며 머리를 콩콩 찢는다.


한 달 더 부탁한다고, 가셨던 교감 선생님.

명예 퇴임자는 교육청의 인력풀 승인을 받을 수 없다며, 공개채용을 할 수밖에 없다는 교무부장님.

모르는바 아니어서 절차대로 하시라고 했었다.

“지원하신 분이 없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면접도 없이 한 달이라는 근무를 명 받는다, 서로 한숨을 내쉬면서.

교장 출신이라는 것이 들통난 첫 번째 회식 자리.

걸어서 돌아오는 별밤.

하던 대로 하자.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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