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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1. 월

by 고주


후문 앞에서 현수막에 쓸 봄 문구 설문조사를 한다.

“봄봄봄 내 심장이 뛰네!

꽃이 피어서가 아니라, 네가 와서 봄이다.

봄이다! 이제 너도 꽃피워라.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

봄에 피는 가장 예쁜 꽃은 우리.

지금 너와 함께인 이 봄이 내 청춘이라 좋다.”

학생회 임원들이 나와 사탕을 주며 스티커를 나누어준다.

이젤에 올려진 판에 써진 문구를 보고, 제 맘에 드는 곳에 스티커를 붙인다.

일찍 온 아이들은 한참을 서서 읽고 또 읽고.

40분이 넘어가니 무더기로 몰려드는 아이들.

읽지도 않고 스티커가 많이 붙어있는 곳에 숟가락을 올린다.

선거도 그러지 않을까?

자기가 투표한 사람이 당선되기를 바라고, 가망이 없으면 일찍 포기하는.

최근 판세는 제대로 불이 바람에 실렸다.

태워라, 태워라, 확 태워버려라.


가벼운 옷차림의 아이들이 많다.

엄마와 함께 오는 특별반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맨 마지막으로 오는 녀석이 네 명과 함께 온다.

다문 입이 초승달이다.

벚꽃이 터지려나 보다.

정수와 분수가 섞인 숫자를 직선에 표시하고, 더하는 부분.

정신없이 달린다.

무려 여섯 쪽을.

좀 빨리 달렸으니 따라오기 힘든 사람은 복습을 꼭 하라고 이른다.

“이것이 빠른 거예요?”

입꼬리 한쪽으로만 끌어내리는 저 밉상.

답답하겠지.

혼자 잘난 척하는 사람 요즘 신물 나게 보고 있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지, 주위를 둘러볼 줄 알아야 한다.

축구 잘하는 우는 음수끼리 덧셈도 힘들다.

음수를 수직선에 표시하기도 어려워, 짝에게 놀림을 받는 것이 보이지 않냐?

다행히 축구를 잘한다는 말에, 깜짝 놀라는 우.

내가 높은 곳에서 운동장을 수시로 본다는 것은 몰랐지.

여자 짝에게 친절하게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

축구하듯이 하면 공부도 금방 하겠다는 응원에 눈을 반짝이며 앉아있는 우가 듬직하다.

자존심을 버리고 용감하게 수학과 마주했다.

한 가지에 도통한 사람은 그 한계를 넘는 법을 안다.

가시나야, 너 곧 혼난다.

지킴이 선생님이 달걀로 얼굴을 문지르고 있다.

복도에서 장난치던 녀석이 선생님이 가는 줄 모르고 휘두르는 손에 정통으로 눈에 맞았단다.

안경이 날아가고.

다행히 안경은 깨지지 않았으나 눈 밑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식당에 갔더니 달걀이 없다고 했다나, 무슨 학교 식당에 달걀도 없느냐고.

마트에서 사 왔다는 달걀 한 판이 책상에 올려져 있다.

부글부글 끓는 화를 식히고 있다.

근처의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달린다.

엄나무와 가죽나무 순을 사려고.

휑하니 바람만 지나가는 시장.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공연히 헛걸음했다.

내 생각만으로 세상을 본 죄로 매연 가득한 길을 미세먼지와 함께 걷는다.


<미용실 아짐>

이제는 염색 안 하시려고요?

백발이 중후하게 보이는데요.

뒷머리는 검은색이 제법 있어요.

봄꽃 소식 몰고 오는 중입니까?

단풍 물감 번지는 시기입니까?

얼굴 탱탱하고

눈썹까지 희지는 않으니

팍 삭지는 않았구먼요.

감고 온 머리를 정성스럽게 만져 주신다.

체크카드를 내미는 순간

팍 팍 튀기는 전기

둘은 화들짝 손을 등 뒤로 숨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나한테 너무 신경 쓰지 말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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