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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2024.03.27. 수

by 고주


에너지 하늘로 솟는 보건 선생님이 방방 뜬다.

비만 자가검진에 수학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몸무게와 키에 어떤 수식을 적용하면 비만지수가 나온단다.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내가 시집을 냈다는 이야기를 한다.

10권은 사겠다고.

벌써 소문 다 났나 보다.

내가 나서서 한 것은 아니니 부끄럽지는 않지만, 판매용도 아니고 전문 시인도 아니어서 좀 쑥스럽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학생 참여 수업. 6반.

선착순은 모두 여학생 몫.

남학생들은 밀려 머리만 긁적긁적.

똑 떨어지는 표정도 그렇고 자신만만한 설명은 따라오는 서비스.

부끄럽지도 않은지 앞에서 춤을 추며 즐긴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여자에게 맡겨야 한다.

숙제하지 않은 녀석은 종료종이 울린 후 복도에서 앞으로는 잘해오겠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이놈아, 겁먹지 말고 뻔뻔해져 보라고.

그렇게 약해서 이 풍진세상을 어떻게 헤치고 나갈 것이냐.

오전 4시간 중 3시간 수업은 좀 무리다.

조절해야겠다 마음을 먹지만 분위기에 따라 작두를 타는 내 흥을 어찌할거나.

슬쩍 농땡이를 피우는 녀석들에게는 적당한 거리와 긴장감을 유지해 줘야 한다.

설명을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환호를 유도해 준다.

학생부에 기록할 내용은 꼼꼼하게 적는다.

부족한 설명 다음에는 친절한 보충이 필요하고, 다양한 연계된 내용들을 소개하는 것은 상위에 속하는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하는 기회가 되도록 한다.

눈알을 굴리면서 새로 제시되는 방법에 흥미를 보인다.

좀 먼 시간이 되겠지만 고3까지 가는 동안 어느 길목에서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를 기억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미래에 내가 있다면 얼마나 영광인지!

좋은 추억이었으면.

심한 말로 조사를 받게 되는 아이들.

3월만이라도 무사히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학생부의 바람이었는데.

녀석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 꼬이고 있다.

나야 직접 투입되지는 않지만, 결코 부담이 가볍지 않다.

하루 곰곰이 생각해 보고 쉬운 길로 가자. 이놈들아.

하찮은 일에 목숨 거는 일은 없어야 해.

곧 알 것이다.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만이고,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단다.

개인정보가 무서운 세상이라 다 말은 못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알고 나면.

오직 나만 생각하고 달리는 길은 외롭고 쓸쓸한 밤도 벼랑도 가야 하는 길고도 힘든 일이야.

몸으로 느껴라.

이 뿌라시 같은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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