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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이별

2024.05.30. 목

     

마지막 학생 맞이, 후문 앞.

한 무더기의 학생들이 지나간다.

그중 한 녀석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푸바오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더니, 

“안녕하세요! 신기중학교 학생이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도 내일 저 길로 중앙공원 직업체험행사하러 가야 한다.

오늘따라 활짝 웃어주는 아이들.

마지막은 말하지 않아도 표정이, 느낌이, 기운이 느껴질까?     


체육대회도 떠들기도 1등, 6반.

숨 가쁘게 돌아가는 15분의 ‘수학의 역사’ 동영상.

내가 마지막 수업이라는 걸 말해주지 않아서 그런가?

역시 떠들고 난리다.

아르키메데스, 가우스, 뉴턴 수학의 3 대장 영상이 따라간다.

재미있는 일화와 와! 하고 느껴지는 달이 지구를 도는 설명이 압권이다.

“그동안 고마웠다.

조금 떠들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아니 세계 어느 나라 중학교 1학년은 다 떠든다.

내가 만난 최고의 중학교 1학년이었다.”는 말에 몇은 당황, 몇은 영문을 몰라하고, 많이는 우선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일.     


8반 담임 선생님이 편지와 함께 선물을 주신다.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 수업을 준비하는 모습, 동료 선생님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많이 배웠고 긴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하셨다.

‘우연히 7반 교실에서 보았던 내 시집에서, 시 구절 하나하나 표현 하나하나 따뜻하고 정겨워서 눈물이 날뻔했다.’ 하신다.


복도를 오다가다, 방송 댄스 수업 시간, 정문 앞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눠 쓴 효정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같고, 엉겁결에 산에서 내려온 사슴 같기도 하고, 왁자하게 핀 벚꽃 같기도 한 아이.

범계중 모든 남자아이와 스스럼없이 지내지만, 딱 한 아이에게만은 마음을 숨기고 가슴앓이하는 부끄럼 많은 아이.

“효정이를 생각하며, 효정이 닮은 귀여운 호랑이를 골랐지.

월요일부터는 선생님이 학교에 오지 않는다.”

내가 내민 초콜릿을 받다, 순간 얼음이 되었다.

“왜요?”

“아프신 선생님이 다 낳으셔서 돌아오시니까.”

어디에 그 많은 눈물이 고여있었나, 한꺼번에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방울.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며 쏟아내는 말.

“그냥 3년 동안 같이 있으면 안 돼요? 사회도 있고 과학도 있고 그런 과목 가르치시면 되잖아요.”

등을 토닥여 주며 함께 흐려졌던 눈에서 눈물이 쏙 들어가고 웃음이 나올뻔했다.

그렇지 이래야 중1이지.

울음을 참느라 일그러진 얼굴로 가는 아이의 뒷모습.     


잠 없는 늙은이가 조금 일찍 학교에 왔다.

내 몫까지 다 지고 계신 실의 선생님께 미안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게 제일 싫다는 이야기를 듣고 10년 동안 아침에 아이들을 맞이했던 것을 그대로 했다.

기분이 좋으니 늘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칠판을 두드리고 악을 쓰며 수업했던 것은 옛날 방식 그대로.

내가 부탁받은 것은 조그마한 수고이니 생각까지 해볼 필요도 없이 “예” 할 수 있었을 뿐이다.

너무 과분한 배려와 감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고작 3달 얼굴 마주하고 살아온 세월.

무슨 30년쯤 정들었던 사람들같이 이별하고 있다.

다른 학교에 가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나?

마지막 학교로 맘속에 간직할까?     

감사의 말씀을 메신저로 남기고 제일 늦게 후문을 나선다.

등에 지고 나온 짐이, 손에 들고 있는 선물들이 무겁다.

발걸음은 천군 만근이다.

운명처럼 정해진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닐까?

운명에 감사하며 하루들을 살아가야지.

또 무슨 운명이 날 찾아오려나?     

그동안 고생하셨다며 장미 한 송이를 주는 아들.

잘도 배워요.

그래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백수 생활도 찰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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