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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선 Nov 20. 2024

시명상/괜찮아/한강

시를 읽는 이유 중 하나가 가능성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은 시가 아닌 어떤 글이라도 그러하겠지요. 글은 우리의 생각을 불러내기 때문입니다. 글은 저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느낌과 감정을 불러내어 펼쳐놓습니다. 그 글을 깊이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지요.



오늘 한강의 「괜찮아」를 읽었습니다. 괜찮아는 누구나 알고 있는 단어지요. 괜찮아는 때로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단어이고 들을 수 있는 흔한 단어입니다.  그 괜찮아는 걱정할 것 없어라는 의미입니다. 문제 될 것 없으니 마음 놓으라는 의미겠지요.  그러니 괜찮지 않아는 걱정스럽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괜찮아를 반복합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경우에 맞닥뜨려서 괜찮아를 반복해 자신이  괜찮아지게 됩니다. 타인을 위로하는 괜찮아가 결국은 나에게로 향하는 것인데요. 타인에 대한 위로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위로라는 이 발상이 놀랍습니다.



시는 아기의 울음에서 시작합니다.

 


괜찮아 /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 사상』 77




 아기가 우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우리는 아기가 왜 우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달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기저귀를 들여다보거나 안아주거나 밖으로 나가거나 온갖 방법을 다 써보지만 아이는 막무가내로 울기만 합니다. 그 울음이 그치는 것은 달래서가 아니더군요. 아기는 다 울어야 그칩니다. 엄마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음직한 일입니다. 그러잖아도 피곤한데 아이까지 울면 짜증이 치솟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아기는 얼마나 연약한지요.  눈을 한번 돌리면 꺼질 것처럼 연약한, 그래서 거품 같은 아이.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짜증이 나지만 아기이기에 그럴 수 없습니다. 화자는 마침내 절망에 빠져 울음을 터트리지요. 눈물이 아이의 눈물과 섞입니다. 아이와 함께 우는 엄마. 바보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많습니다. 이유 없이 다가온 고통, 고난. 달랠 길 없는 고통 때문에 어쩔 줄 몰라 절망에 빠지는 우리들.



그때 왜 그럴까 대신 괜찮아를 말해준다면. 나 자신에게 괜찮아를 되풀이해서 속삭여준다면. 내 안의 아이를 달래는 것이 되겠지요.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시작했던 괜찮아가 자신을 달래는 괜찮아로 끝났습니다. 서로 읽고 듣는 그리고 그 느낌을 헤아리는 시 명상이 끝난 후 괜찮아는 내 가슴에서 내 몸에서 흘러넘칩니다. 우리가 얼마나 다정한 말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 다시 깨닫는 것이지요. 어른이 되었어도, 할머니 나이에 이르렀어도 우리는 여전히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 격려를 절실히 갈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른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입니다. 



어휘란 무엇일까요. 무엇이기에 내 안 깊이 숨은 아이를 꺼내오는지요. 소리는 대체 무엇일까요. 무엇이기에 이토록 다정하게 나를 어루만지는지요. 괜찮아, 아주 흔한 한마디, 괜찮아가 가진 그 힘을, 시를 통해 만난 것이지요. 괜찮아는, 아니 시는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요. 당신에게도 내 안의 힘겨워하는 나에게 괜찮아를 전합니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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