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물과 거품
벌써 바람 부는 모양이 다릅니다.
나뭇잎 언저리에서 놀던 바람의 손놀림이 더 위로 올라가더니 ‘휙’ 하고 회오리를 그리다가 달아납니다. 햇살은 아직 따갑지만 바람은 서늘한 기운을 보입니다.
춥지 않아서 좋았던 여름은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곧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겠지요.
겨울은 한참 멀었는데도 난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렵습니다.
사계절이 있어서 좋은 우리나라, 겨울이 있어서 즐거웠던 때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용평 콘도미니엄에 가서 눈 쌓인 언덕을 내려다보며 불렀던 노래며, 스키를 타다 미끄러져 일어나 서지도 못하고 울어버렸던 기억, 눈썰매에 신났던 사랑하는 겨울이 싫어졌습니다.
포근한 거위 털 웃옷에 긴 가죽구두, 보송보송한 앙고라 장갑도 없는 그런 겨울은 나의 겨울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지난겨울을 끔찍하게 회상하는 건 아버지 때문입니다. 아니 아버지보다는 우리나라 어른들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잘 나가던 회사의 사장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세 살 먹은 아이도 안다는 아이엠에프 때문에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집은 물론이고, 할머니와 외갓집까지 모두 빈털터리로 만들었습니다.
거지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랑 백화점에 갈 때, 종종 보았던 육교 위에서 엎드려 있던 사람들. 때 묻은 옷을 입고, 종이상자를 앞에 두고 쪼그리고 있는 모습을 본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습니다.
종이상자 안에 든 동전 몇 닢으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할 뿐이었습니다. 내 생각엔 그것으로는 과자도, 학용품도 살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그런 내가 하루아침에, 동전 한 푼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겨울부터 지금까지 백화점이나 문방구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갖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살 수 있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붉어집니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습니다.
자고 나면 포근한 침대 속에서 듣던 그릇 부딪히는 소리들로 시작되는 행복이 그대로 이어질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갔습니다.
동생 태양이는 시골 할머니 댁으로 보내졌습니다.
술래잡기를 하면 찾기도 힘들었던 그 넓은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나는 옷가방 하나와 책가방만 달랑 들고 나왔습니다.
그 밤은 너무나 추웠습니다. 목도리로 친친 머리를 싸매고, 엄마 주머니 속에 한 손을 넣고 꼭 붙어서 걸었는데도 말입니다. 칼날보다 더 매서운 바람은 내 살을 파고들며 마구 쑤셨습니다.
상냥하던 엄마가 말이 없어졌습니다. 힘도 없는지 비틀거렸습니다.
한참 만에 엄마 친구인 숙희 이모가 있는 산내가든 갈빗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불이 다 꺼져 있었고, 입구에 있던 나무꽃등만 반짝거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앙상한 가지에 친친 감겨 있는 작은 전구는 마치 밤하늘의 불꽃놀이가 확 퍼졌을 때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현관문을 톡톡 두드려본 엄마는 아무 기척이 없자 근처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 쪽으로 갔습니다.
나는 나무꽃등 아래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에는 별도, 달도 없었습니다.
무리 지어서 몰려다니는 심술쟁이 바람만 씽씽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엄마가 전화를 하고 나오는 것과 동시에 현관문이 열리더니 숙희 이모가 잠옷 바람으로 우리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손사래를 했습니다.
그날 밤부터 우리는 숙희 이모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원목침대 대신 방바닥에서 잠을 잤고, 백 권이 넘게 꽂혀 있던 책상에서 밥 먹는 상으로 내려와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씻지도 않고, 양치질도 하지 않았는데도 닦달하지 않았습니다. 씻지도 않고 그냥 잔 것은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라 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잠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하루 사이에 살아가는 모든 것을 잊은 것 같았습니다.
엄마 눈치만 보면서 뒤척거리다가 첫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엄마도 내 등에 가만히 머리를 대고 훌쩍거리다가 반대편으로 돌아누웠습니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보냈습니다.
동쪽으로 난 창엔 일찍 해님이 찾아왔습니다. 어서 일어나라고 눈가를 간질였습니다.
그러나 나와 엄마는 아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일어나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방학이라 참 다행이었습니다.
숙희 이모 갈비 집은 우리 가족이 자주 와 외식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넓은 마당에 있는 나무들은 밤이 되면 작은 등을 달아 반짝거렸습니다. 나와 동생은 그 작은 불빛 밑에서 잡기 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둥근 반석 위에 벌렁 눕기도 했습니다.
엄마와 나는 작은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숨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숙희 이모도 말없이 먹을 것만 들여보내고는 한숨을 쉬고는 나가주었습니다.
나는 먹었습니다. 갈비도 먹고, 사과도 먹고, 단술도 먹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한숨과 눈물만 먹고 지냈습니다.
내가 아무리 먹으라고 사정을 해도 엄마는 돌아앉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엄마는 쓰러졌고, 의사 선생님이 왔으며 왼팔에는 주삿바늘이 꽂혔습니다.
걱정스레 보고 있던 숙희 이모는 엄마 곁에서 정성껏 시중을 들어주었습니다.
“미안, 정말 미안해…….”
정신이 든 엄마는 벽 쪽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얘, 순애야, 너답지 않다. 그동안 고생도 모르고 살던 사모님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니 상심이야 크겠지. 하지만 네 곁에 있는 이슬이를 봐, 네 희망이지 않니?”
그래도 엄마는 흐느끼기만 했습니다.
나의 눈에도 내 이름 같은 이슬이 송송 맺혔습니다.
“살다 보면 또 웃을 날이 있을 거야. 힘내, 힘내라고.”
숙희 이모는 엄마 등을 두어 번 토닥거리곤 갈비 파는 거실로 나갔습니다. 방 안에는 엄마의 한숨과 숙희 이모의 걱정이 가득 차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나도 밖으로 나왔습니다.
벌써 저녁때가 되었는지 많은 차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숯불을 피우고, 앞치마를 두른 언니들이 바쁜 듯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큰 유리창 너머 숙희 이모의 하얀 얼굴이 보입니다. 입가에 연신 웃음을 달고 있는 숙희 이모를 보니 엄마가 더욱 가엽게 생각되었습니다.
숙희 이모는 항상 우리 엄마를 부러워했습니다.
우리가 갈비를 먹으러 올 때마다 함께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순애 넌 좋겠다. 자상하고 돈 잘 버는 남편, 요렇게 예쁘고 공부 잘하는 딸 이슬이, 점잖은 도련님 태양이도 있고, 이 세상 뭐가 부럽겠어.”
숙희 이모는 우리를 만날 때마다 신세타령을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싱긋 웃었고, 엄마는 예쁘게 눈을 흘기곤 했습니다.
옷은 벗었지만 작은 등을 달고 있는 겨울나무는 도시의 빌딩처럼 풍요로워 보였지만, 깜빡거릴 때마다 밀려오는 슬픔 같은 것이 느껴져 낯설었습니다.
그 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돌멩이 하나를 주워 땅 위에 낙서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슬이 아냐? 너도 갈비 먹으러 왔구나.”
지훈이가 내 앞에 서서 반가워하였습니다.
“으응.”
물이 없는 꽃병의 장미처럼 고개를 떨어뜨리며 난 애써 지훈을 외면하려 했습니다.
말하기 싫었습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모르는지 지훈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으며 말했습니다.
“우린 용평에 갔다 왔어. 눈썰매를 너무 신나게 타다가 속옷까지 다 젖었지 뭐야. 밤늦게 도착하여 아침도 점심도 못 먹고 잠만 잔 거야. 오늘은 저녁 한 끼만 먹는 꼴이 됐지 뭐야. 흐흐.”
“……, 으음.”
내 목소리는 열이 몹시 나는 감기 앓는 사람처럼 신음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지훈은 혼자서 신나게 말을 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는 설악산 간다.”
“……그래, 나 화장실 가고 싶어.”
나는 애써 찡그리는 얼굴을 지으며 빨리 일어나 뒤뜰 쪽으로 달렸습니다.
“그래, 빨리 갔다 와.”
지훈이는 일 학년 때부터 나와 쭉 같은 반이었고, 우리 엄마와 지훈 엄마, 그리고 숙희 이모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였습니다. 숙희 이모는 혼자 살기 때문에 아이가 없지만 지훈이네와 우리는 만나면 즐겁고 반가웠습니다.
‘이젠 갔겠지.’
뒤뜰에서 한참 서 있다가 나무꽃등 쪽으로 가려고 하자, 빨간 스포츠카에 기댄 지훈이 엄마와 숙희 이모 소리가 들렸습니다.
“……, 근 보름이 다 되어가. 순애가 저렇게 무너질 줄 몰랐어. 꽤 악바리였는데 말이야.”
“어려운 일을 당해본 건 처음이라 견디기 힘들 거야.”
“본가고 친정이고 다 날렸지 뭐니?”
“정말 안 됐어.”
“그래, 이슬이 아버진?”
“소식 없어.”
“언제까지 저렇게 있을 건데?”
“글쎄, 한 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말이야. 날 도와주며 같이 살자고 해도 대꾸도 안 해.”
숙희 이모는 한 숨을 푹 쉬며 하늘을 보더니 발로 땅을 두어 번 찼습니다.
“자존심은 또 얼마나 강한 애니?”
양팔을 깍지 낀 채, 지훈이 엄마가 말했습니다.
“자존심이고 뭐고, 이제 다 뿌리쳐야지. 먹고살아야 할 게 아냐.”
“우리가 도와줘야 해.”
“아무것도 없는 순애에게 우리가 잡고 일어서도록 버팀목이 돼줘야 한다고.”
“그래야지, 나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순애 도움을 안 받았다고 할 수 없지.”
“세상은 돌고 도는 게 아니겠어. 없는 자는 있게 되고, 있는 자는 또 저렇게 씻겨지고 말이야. 하느님도 어쩜 공평하시지.”
“힘들게 살았던 너희 집이 부자가 된 것을 보면 네 논리가 맞는 것도 같다.”
“엄마 졸려요, 빨리 가요.”
그때, 아버지와 함께 나타난 지훈이가 엄마 품에 안기며 투정을 부렸습니다.
“쳇!”
엄마 친구들의 우정에 담뿍 빠져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삐죽거렸습니다.
지훈이가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난 은근히 지훈이를 좋아했습니다. 철은 좀 들지 않았지만, 여자들과 얘기하면 얼굴은 물론 귀까지 빨갛게 되는 순진한 아이였습니다. 또 숯 칠을 한 것 같은 짙은 눈썹과 서글서글한 눈도 매력적이었습니다.
‘5학년이나 되는 남자가 어리광을 부리는 꼴 좀 봐.’
“참, 이슬이도 여기에 왔어요. 얘기하다가 화장실 간다더니 보이지 않아요.”
내 얘기를 하는 바람에 마음까지 들킨 것 같아 흠칫 놀라 몸을 숨겼습니다.
“잘 있어, 또 올게.”
지훈 엄마는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빨간 스포츠카는 미끄러지듯 굴러가 버렸습니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곱게 화장을 한 엄마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엄마!”
반갑게 엄마를 불렀지만, 어쩐지 엄마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유난히 빨갛게 칠한 입술연지가 촌스럽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어딜 가는 거예요?”
“응, 돈 벌어야지.”
“엄마!”
엄마 품에 왈칵 안긴 나는 엉엉 울었습니다. 향수 냄새가 아닌 약 냄새와 함께 풍겨오는 엄마의 몸 냄새는 날 더욱 슬프게 했습니다.
“이슬아, 이건 거품일 뿐이야. 물을 부으면 금방 생기는 물방울 같은 것 말이야.”
“거품?”
품에서 벗어난 나는 엄마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래, 거품은 금방 사라져 버리지. 우리에게 닥친 이 불행도 금방 없어질 거품일 뿐이야. 세게 부을수록 거품은 크게 일어나지만 사라지는 것도 빠르단다.”
그렇게 엄마는 산내 가든에서 고기를 굽고, 청소도 하며 겨울을 보냈고, 이렇게 봄과 여름도 지났습니다.
이번 여름에 나의 피서지는 산내 가든 꽃등 아래였습니다. 그 아래 놓여 있는 둥근 반석 위에 앉아 숙제도 하고 공상도 하면서 보낸 여름이 좋았습니다.
그 덕분에 나의 얼굴은 해수욕장에 간 사람처럼 까맣게 탔습니다.
뜨거워서, 뜨거워서 좋았습니다. 추운 나의 마음을 알맞게 데워주고 익게 해준 여름이었습니다.
어쩌면 겨울이 다시 온다 해도 지난해처럼 그렇게 춥지 않을 겁니다.
엄마의 말씀대로 거품은 곧 사라질 것이고, 맑은 유리잔에는 따뜻한 물로 채워져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