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하다 보면 이상한 로그(Log)가 찍히는 순간이 있다.
분명 나는 거대한 서사를 깨기 위해 접속했는데,
정작 필드에서는 이름 모를 NPC의 잡다한 심부름만 하고 있었다.
잡템을 모으고, 의미 없는 반복 사냥(Grinding)을 하며 스태미나를 낭비한다.
그러다 문득 캐릭터의 상태창을 확인하며 현타가 찾아온다.
“내 캐릭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우리 인생의 퀘스트 창에는 보이지 않는 두 가지 분류가 존재한다.
<퀘스트 창의 두 가지 카테고리>
1. 메인 퀘스트(Main Quest)
- 내가 직접 선택한 ‘엔딩’을 향하는 고유의 서사
- 클리어할 때마다 내 캐릭터의 핵심 스탯이 성장하고, 세계관이 확장되는 길.
2. 사이드 퀘스트(Side Quest)
- 생존을 위한 골드 벌기, 혹은 타인의 부탁으로 생성된 미션
-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경고 알람’이 뜨지만 내 인생의 전체 스토리를 진전시키지는 못하는 일들
그렇게 나는 그동안 사이드 퀘스트를 메인 퀘스트인 줄 착각하며 모든 기력(MP)을 다 써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이런 로그 데이터를 복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정말 내가 ‘수락(Accept)’ 버튼을 눌러 활성화한 퀘스트인가?”
어쩌면 나의 시스템 설정에 “강제 자동 수락” 옵션이 켜져 있을 수 있겠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스템 설정을 살펴보니 역시나 “강제 자동 수락” 옵션이 켜져 있었다.
- 남들이 다 하니까 기본값(Default)으로 설정된 직업
- 불안함이라는 디퍼프 때문에 차마 삭제하지 못한 관계
- 인정 욕구라는 이벤트 보상을 얻으려고 억지로 붙들고 있는 역할들
이렇게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락된 퀘스트 수행으로 나의 기력(MP)은
메인 퀘스트를 수행할 때마다 소진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제 현실적인 서버 운영을 위해서 내 퀘스트 창에 “우선순위 필터”를 걸기로 했다.
- [Side]: 이건 생전을 위한 파밍(Farming)이다. 필요하지만 내 자아의 전부는 아니다.
- [Main]: 이건 내가 지켜야 할 핵심 서사다. 어떤 렉(Lag)이 걸려도 완수해야 할 목표다.
이 구분을 명확하게 하면 캐릭터의 피로도가 조정이 될 것이다.
비록 사이드 퀘스트에 치여도 내 메인 서사가 아니므로 감정적 방어막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임을 오래 해본 고수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사이드 퀘스트만 무한 반복하면 레벨(나이) 수치는 올라갈 수 있어도,
내 인생의 진정한 업적은 하나도 달성할 수가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