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달리 아침이 개운하다. 설사만 멎으면 고산적응은 끝난 듯. 다행히 아침 한번 이후 멈춘다.
하늘은 푸르고 황량한 사막이 아름답다.
다양한 모양의 기암괴석들, 그랜드캐년 같은 협곡, 귀여운 라마들, 그리고 오아시스...
사막의 길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 장엄한 서사들이 펼쳐진다. 광활하고 끝이 없다.
5시간을 달려왔다.
4,300m 고지에 있는 민박에 도착하다. 이 높은 곳에 위치한 민박집은 집도 훌륭하고 주변 경치도 4,300m 고도가 가지고 있는 풍경이 배경이다. 단 여기서 오늘 하루 잘 자야 한다.
그러면 내일부터는 드디어 평지이닷!
안데스 산맥을 넘어
오늘 칠레로 달리는 길은 여기 해발 4,000m급에서 시작하여 5,000m를 넘어가는 안데스 산맥 길이다.
구불구불 산맥을 넘어가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길이 펼쳐질지 몰랐다. 이 길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볼리비아에는 우유니만 있는 줄 알았지....
주변은 사막의 모습이기도 하고, 초원의 모습이기도 하고, 눈이 덮인 천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나. 붉은 흙이 드러난 비포장도로의 차도가 구불구불 놓여 있을 뿐, 어느 인공적인 조경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풍광이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나는 기사님께 잠시 차를 세워 달라고 부탁한다. 우리가 내리니 일행이 탄 다른 차들도 다 멈춘다. 모두들 원시적인 자연 앞에 할 말을 잃는다. 심호흡을 한다.
다시 신나게 달리다 차가 멈춘 곳은 꼴로라다 호수.
플라밍고라는 이름의 홍학들, 그들이 살고 있는 호수 앞이다.
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차는 멀리 세워놓고 호수 쪽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좀 놀라면 좋았을 것을... 셀 수 없는 수천의 새가 점점으로 호수 위에 떠있다. 정지된 그림 같다.
더 가까이 가보니 대부분 우아하게 발을 담그고 멈춰서 있는 자세다. 화면을 당겨보니 몇 마리는 백조처럼 거닐고, 몇 마리는 날기도 하며 자신들이 생물임을 알려주고 있는 듯.
저 새가 한꺼번에 난다면 어떤 장관일까 상상해본다. 오랜 시간 멍 때리고 있어도 저들이 나는 것을 보지 못한다. 뭔가를 해서 날게 하고 싶지만, 저들의 군무를 보고 싶지만,
그 또한 몇 대가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엄청난 장관일 듯하다.
지금까지 난생처음 보는 풍경들을 보고 경탄하지만,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몇 개의 장면이 있다.
우유니의 별자리와 일몰, 일출, 여기 홍학의 비상....
떠나자, 온천으로.
저 앞 지면 여기저기서 김이 보글보글 뭉텅이로 올라온다. '솔대마냐나' 온천.
화산 지대에 노천 온천이 하나 있어 여행객들이 잠시 몸을 담그는 곳이란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가는데 밖은 그대로 내리쬐는 땡볕이어서 우리는 모자에 수건에 몸을 다 가리고 들어간다. 나머지 외국인들은 웃통도 벗어젖히고 온몸으로 즐긴다. 당근 각자 입맛대로 즐기기. 으 시원타~
그리고 초록 호수(라구나 베르데).
푸른 호수가 뉴질랜드의 호수와 비슷한데 전면에 5,916m의 화산 '린칸카부르그'가 떡 버티고 있다.
저 산, 정말 자꾸 눈을 끌어당기는 산이다. 화산지형이라 그런지 뉴질랜드의 '통가리로 산'과 매우 비슷하다. 내 그 산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여기가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이 나뉘는 곳이란다.
2박 3일의 랜드크루즈를 마친다. 기사님과 인사하고 칠레국경으로 넘어온다. 미리 나온 칠레의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린다. 지금까지 비포장도로였는데 잘 닦인 포장도로다. 가이드는 우리가 가는 나라 중 칠레의 경제가 그나마 제일 낫다고 한다. 어쩐지 도로에서 바로 차이가 나네. 두 시간 여를 그냥 달려온다.
칠레 국경에서의 입국심사는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코카잎차도 버리라고. 얼마든지~.
넘어오는 버스에 버리고 짐 검사를 받는다. 버스는 코카잎차를 그대로 싣고 그냥 국경을 넘고, 우리는 짐 검사를 다 받고... 철저하긴... 맘만 먹으면 버스로 마약도 실어가겠다.
드디어 칠레의 땅, 산페드로 데 아따까마에 도착. 여기는 해발 2,000m.
숙소는 민박 수준의 흙집이고 창문은 니스칠에 떡이 되어 열리지 않는다. 전구가 나가서 바꾸려 하니 흙이 떨어진다. 이런....
동네를 둘러보니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다. 먼지 휘날리며 굉장치도 않은데, 오히려 관광객, 특히 젊은이들이 무지 많다. 거의 배낭여행족인 것 같다. 여기가 중요한 곳인가? 나중에 찾아보니, 우유니를 비롯하여 여기서 시작하는 투어가 많단다. 개인적으로 오는 여행객에게는 주요한 지점이 되겠다. 숙소에 딸린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 맛있다. 내일은 수도 산티아고로 간다.
에필로그
체 게바라다운 땅, 볼리비아
1. 라파즈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도 라파즈.
둥그런 접시 모양의 분지인 이 도시는 낮은 곳이 3,600미터, 최고지대는 4,095미터.
3600 고지에 사는 분들은 상류층, 중간 지대는 중산층, 4095 지대에 사는 분들은...
우리는 평지에서도 호흡이 쉽지 않다. 약한 경사를 오를 때는 등산을 하는 것 같다.
혹 도둑이 우리 가방을 코앞에서 낚아채 가도 우리는 그를 잡으러 가지 못할 것이라고 농담을 한다.
우연히 들른 한국식당의 주인아주머니는 요리를 할 때 산소호흡기를 쓰기도 한다고...
밤에 잠을 자는 것은 더 곤혹스럽다.
관광객은 전망을 보기 위해 4095 고지를 케이블카로 오르지만,
케이블카는 이 도시의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이다.
우리나라 돈 약 500원으로 올라가는데 15,000원짜리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이 아찔하다.
그곳에, 밑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무수히 많은 빈민층이 살고 있었다.
사진 찍는다고 조금만 까불어도 우리는 바로 어지럽고 헥헥댄다.
이곳도 언젠가는 전망 좋은 집들로 탈바꿈을 할까. 사실 전망은 끝내준다.
2. 우유니 소금사막
볼리비아에 가는 이유.
남미는 거의 무비자인데 이 나라만 유일하게 비자를 요구한다.
떠나오기 전 비자를 받기 위한 과정은, 그냥 확 빼버리고 싶도록 무척 까다로웠다.
그러나 이놈의 우유니 땜시 성질 꾹 참고.
정작 우유니에 가는 날엔 고산증인 설사가 종일이어서 기운을 빼다.
그러나, 오! 세상에...
이 땅에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실일까.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뭍이요?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
김민기는 그때 우유니를 갔다 온 걸까...
3. 칠레 국경으로 가는 길
사륜 구동을 타고 안데스산맥을 넘는다.
이 길은 이 세상길들이 아니라고 봐...
서로 다른 이름의 고산들과 그들의 맥들과 사막과 끝없는 고원의 평야, 다양한 모습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입을 다물 수 없다. 세상이 이렇게 유별날 수 있을까.
페루에 마추픽추만 있는 게 아니고,
볼리비아에 우유니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이래서, 남미!!!
5,000m 고지를 넘어 볼리비아와 안녕하고 2,000m 평지 칠레로 넘어오다.
고산병 안녕, 볼리비아 안녕.
맥주 한 잔, 커피 한 잔 드디어 안녕!
4족:
"볼리비아에서는 체게바라 흔적이 잘 안 보이네요?"
현지가이드"우리 볼리비아에서는 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의 정신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