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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쌤 Jul 13. 2024

스치다, 중국 2002. 2

  '크고 넓고 많고'의 서막


 낯설고 어려운 나라 사회주의 국가! 정보도 없고 막연한 느낌만 있는 나라이다.


 하늘에서 바라본 우리 땅, 서해는 아름답다. 산맥이 길게 누워있다.

어디에나 산이 있고 나뭇가지처럼 이어진 강줄기, 굵은 서해안 고속도로하며 여기저기로 뻗은 길들, 섬들과 해안선들, 그리고 제주의 한라산 백록담을 끝으로 중국 쪽으로 날아간다.

저 작은 나라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긴밀하게 살아간다. 비행기가 바람에 이리저리 휘는가 했는데 구름인가 바다인가를 길게 지나 육지가 떡하니 나타난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야는 거대한 중국의 서막인 듯하다. 우리의 작은 땅덩어리는 어디나 산으로 에워져 있건만, 충분히 있어도 좋을 넓은 중국 땅엔 산이 없다. 반듯하게 정리된 논밭과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를 길들, 반듯한 집들과 아파트들이 대규모 단위로 세워져 있다.


   항주의 서호 (西湖)

 서호는 사람들의 물결이다. 서호로 인해 항주가 아름답다 하는데 꽃피는 봄날 자전거를 타고 호수를 돌면 그 매력을 만끽할 수 있으려나. 소동파와 백거이가 쌓았다는 제방에도 완전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 '뭐 반, 뭐 반'의 분위기다. 사람이 없었으면 좀 달랐을까? 그러나 이들의 인구를 어쩌겠는가......


  커다란 절에도 가고, 용정차밭에서 차도 사고, 비단 가게인지 진주목걸이 가게도 다니는데 나는 무슨 공장 견학 온 줄 알고 재미있게 다녔다는 것. 이것이 훗날 그 유명한 쇼핑 순례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

생각해 보니 쇼핑할 때 필요하다고 어제 호텔방에 누워서 이 나라의 숫자를 세었다.  

이 알 싼 쓰 오우 리우 치 빠 지우 스 량 바이 위엔 량 치엔 위엔...


감기 기운도 있고 곤하다.

 

 소주(蘇洲 )의 태호

 말이 호수이지 홍콩의 두 배나 된다는 바다 같은 호수이다. 갈대밭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호수와 갈대밭 풍경은 장중한 서사시 같아 내려서 거닐면 참 좋겠다고 했으나 패키지여행이 그런 거 아니란다.

 그러다 만난 매화나무!

 소주 중심가로 가는 길가에 매화가 늘어서 있다. 매화로 가로수를 만들다니.... 놀라는데 이 또한 서막일 뿐.

일행들이 만발한 꽃에 환호를 보내니 여기서는 잠시 내린단다. 길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런... 거대한 매화밭이 펼쳐져 있는 거다. 한바탕 눈이 쏟아진 듯 지천에 흰 꽃들이 널려 있는 모습, 난 매화가 이렇게 떼로 피어있는 모습을 처음 본다. 장관이다. 이들은 땅만 넓은 게 아니고, 사람만 많은 게 아니고, 감흥도 이리 깊은 사람들인가!

 선비들이 매우 좋아했고 단아하고 지조 있고... 이런 수식이 붙은 품격 있는 꽃을 대하는 내 마음은 살아온 곧은 선비를 대하듯 엄숙하기까지 하다. 모두가 그런가, 감동하고 사진을 찍고 난리가 났다.

 매화에 취한 건지 어제 먹은 감기약 때문인지 몸이 붕 뜨는 느낌을 순간 받다.


 상해

 외탄은 번화하다.

서구 열강이 밀려와 이권을 탐내어 각축을 벌였던 거리, 동서양의 절묘한 조화, 고전과 현대의 어우러짐을 보는 듯하다. 자유롭게 황포강을 따라 걷는다. 이제야 여행을 온 느낌을 갖는다.

앞으로 나의 여행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지 감이 온다.

 가이드를 따라 졸졸 따라다니는 것 아님! 내 맘대로 걸어 다닐 것!

 말만 통하고 (말이 안 통해도 좋다), 치안만 유지된다면 여행은 그렇게 자유롭게 다니기, 현지인들과 더 가까이 만나기, 몸으로 걷고 경험하기...


 상해의 야경은 화려하다.

 붉은 사회주의 깃발이 유난히 많이 펄럭이는 곳에서 자본주의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 언발란스 같지만 뭔가 당당한 느낌을 주려 깃발이 애쓰고 있는 것 같다. 제발 인간답게 멋지게 좀 해보거라. 기분이 묘한 나라이다.

 

 상해 서커스. 정확하고 예술이라 해도 될 만큼 깔끔하고 현란한 묘기를 본다.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가. 혹시 인간의 능력을 실험해 보자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려 혼신을 다하는 그 과정을 상상하면 몸이 오그라들고 슬픈 느낌도 든다.

  

   동네 한 바퀴 

  떠나는 날이다. 아침 일찍 몇 선생님과 숙소 주변을 잠시 돌아보자고 나온다.

 일요일이라 거리는 한산하고 사람들은 표정이 없다. 한쪽은 잘 정돈된 깨끗한 아파트단지인데 한쪽은 낡은 단지이다. 작은 시장이 있다. 우리 시장에서 보는 채소 야채들이 그대로 있다. 크기가 대체로 크다. 어떤 아저씨는 자라의 몸을 자른다. 놀랍게도 벌건 피가 나온다. 징그러워라.


 동네를 흐르는 개천은 무척 지저분하다. 이 나라 공무원들이나 정부는 정말 할 일이 태산 같이 많겠다. 땅덩어리가 엔간히 커야지. 나라가 이리 커도 될까? 욕심이 너무 많은 나라 아닐까? 정비하고 신경 쓸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닐 것 같은데 이게 언젠가는 정리가 될까?

 오지랖이긴 하다. 남의 나라 걱정까지 하는지... 그러나 왠지 이들은 밀어붙여서라도 해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 일행은 벌써 중국에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흘 지내봤다고 이 나라가 좀 가까워진 듯한데 이게 여행의 맛일까?


  홍구공원

 윤봉길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공원, 그 장소에 기념탑이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다. 묵념을 한다.

옆에 노신 무덤이 아주 크게 꾸며져 있고 기념관도 잘 지어져 있다. 이곳을 노신공원이라고도 하는 이유겠다.

중국인에게 노신은 중요한 인물인 듯하다. 우리에게 윤봉길이 매우 매우 중요하듯.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낡은 2층 건물에 있는 유적지를 대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다. 일행들이 숙연하다. '여기를 와보다니...' 이런 눈빛들.

 아파트 재개발로 철거하려는 걸 간신히 구입하여 꾸며놨다는 얘길 듣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전에 신문에서 본 것 같은데 신경도 안 썼다. 이렇게 무심하게 살았구나 싶다.

 김구선생님 사진을 보는데 울렁거린다. 2층 그들의 집무실과 힘들었을 활동사진들, 쫓기는 과정을 담은 자료를 보는데 눈물이 난다. 이승만도 있다. 둘이 잘좀 지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머릿속으로 우리의 아쉽고도 아픈 근대사가 지나간다. 미안함과 고마움에 시큰거린다. 아마 모두들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여행을 한가하게 다닐 수 있게 된 것도 그들 덕이라는 생각을 한다. 선생님들이라 더 복잡했을 것이다.

 아, 정말 고마운... 대한 독립 만세. 속에서 저절로 나온다.

이번 여행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다.


  음식에 대하여

 마지막 점심을 한식으로 먹다. 다행.

여행을 하려면 음식에 까다롭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그동안 먹은 호화판 중국음식에 많이 힘들었다.

 중국 음식들은 기름지다. 그리고 사람 질리게 만들 정도로 양이 많다. 특히 나처럼 살기 위해 먹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크기와 양에 있어서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겠다는 원칙이 있나 싶을 정도다. '적당함'이나 '모자람'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많은 음식을 버리게 된다. 무지 아깝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첫 단추 괜찮았어!

 착한 값으로 찾은 여행인데 마지막까지 풍족하고 알차게 보내는 것 같아 중국에 대한 이미지까지 좋아진다. 근데 여행사는 무얼 먹고사나? 가이드는 적정 임금을 받나? 이런 염려도 잠시 해보고.


 무엇이든 크고 많은 나라 중국을 4일간 만난다는 것은 아주 잠시 스친 여행임을 안다.

아마 다시 찾을 나라일 게다.

 상해공항의 공안들은 도착할 때와 마찬가지로 위압적이고 느낌 없는 자들이었으나 알찬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으니 용서한다. 빨리 우리나라에 가고 싶다. 모두들 그렇단다.

2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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