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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쌤 Aug 20. 2023

신들의 놀이터, 쉐락볼튼

트레킹 1

  첫 트레킹 코스 ‘쉐락볼튼’이다.

 어제의 그 무지막지한 터널을 거꾸로 지나가다. 뭐, 사람이 다니라고 해놓은 길인데, 노르웨이인데 어련히 안전하게 해 놓았겠어? 여유와 신뢰로 무장한다. 주차장에 다다르고, 문을 열고 나선 직후의 그 공기가 심장을 또 뛰게 한다.

 스틱 잡고 심호흡하고 아자자자! 시작! 왕복 6시간의 길이란다.


 길은 가파른 바위산이다. 그러나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다. 세 고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다. 힘이 드는 등산은 아닌데,  발과 무릎에 힘을 줘야 한다. 많은 하중을 받는 등산이다. 미끄러지지 않는 바위길이다.

 '젊은 때는 그냥 날아올라가고 날아 내려왔을 길이다.' 요렇게 말하면 좀 서글프나? 


  두 바위 사이에 끼어있는 커다란 바위(계란 바위)를 만나다.

바위 밑으로는 1000m의 낭떠러지가 있고 그 밑으로 파아란 피오르드 물결이 비현실적으로 펼쳐져 있는 거다. 이런 풍경은 처음 보는 장관이다. 봐도 봐도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는 우리의 지구! 놀라워라.


 신들의 놀이터인가? 여기서는 그들이 돌멩이 던지기 놀이를 했을 수도 있겠다. 누가 누가 끼우나.

 먼 훗날 인간이 찾은 거다. 이 돌 참 신기하네. 인간도 놀이를 한다. 바위 위에 올라가 폼 잡기, 바위 사이를 줄 타고 건너기, 바위 기어오르기…….


 쉐락볼튼 바위가 눈앞에 펼쳐졌을 때 와우! 소리를 내지르는 순간, 뭔가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헛것이 보이는 줄 알았다. 피오르드를 둘러싼 저쪽 바위와 이쪽 바위 사이에 줄을 매달아 이어놓고서 그 천길 피오르드 위에서 줄타기하는 사람이었다! 제정신? 그렇게 바람이 부는데 그런 줄타기를 하다니……. 그런데 저쪽 바위를 보니 바위에 둘이 매달려 있다. 저건 뭔가? 암벽 등반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개미같이 움직이고 있다.


그 높은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들,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사람들, 그 높은 곳에서 텐트 치고 자는 사람들…….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 무서운 사람들, 장한 사람들, 인간의 한계란 없는지, 모험에 끝은 있는지?


 사진을 찍는다. 외국인 부부가 있다.

나, 외국인 부부 중 여자, 내 남편, 부부 중 남자,

이런 순서가 될 게다.

바위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마음이 흔들리더니 다리가 떨린다. 와락 무섭다. 그냥 내려올 수는 없다. 간신히 네 발로 기어가서 앉는다. 그가 저쪽에서 사진을 찍는데 바라보지도 못하겠다. 얼른 바로 기어 내려온다.


 그다음 여자, 그런데 그 여자는 바위까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바위 위에서 껑충 뛰는 포즈를 취한다. 헉, 인간의 간이 그렇게 클 수 있다니. 남자가 저쪽에서 셔터를 계속 누른다. 보는 내가 오금이 저려서 죽을 것 같다. 그만 하라곳!!!


  


 끝이 아니다. 그의 순서!

내가 찍는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껑충 뛰는 그 여자 따라 그도 그리 할까 봐 사진 얼른 한 장 찍고 그에게 빨리 내려오라 외쳤다. 그리고 아주 잠시 카메라 확인하고 눈을 드는데 그가 없어졌다!


 헉, 단 1초 사이다. 그 짧은 사이에 그가 옆으로 내려왔을 리는 없고, 밑으로?

심장이 벌러덩에다 아득... 해졌다…….

 그 순간 내 눈앞으로 걸어오는 그!

빨리 내려오라고 해서 아주 빨리 내려왔다고…….

이렇게 놀랍고 고마울 수가, 오금 저리다.



 내가 오를 때나, 그가 오르고 난 다음 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들거린다.

그런데 그 부부 중 남자, 그도 그 바위 위에서 펄쩍 뛰어오르며 포즈를 취했다. 궁금하다. 거기서 사진 찍다 밑으로 가라앉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지?


 노르웨이 세 개의 트래킹 중 오늘 첫 번째, 중급의 길을 이렇게 끝내다.


 어제 왔던 길을, 오늘 아침 다시 달려왔던 길을, 다시 달려 내려오다.

이제 뭐, 이쯤이야, 적응 끝인 것 같다. 인간의 생존, 적응, 도전, 초긍정……. 잡다한 능력이란 위대하달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다.


 무서움은 무지에서 나오는 것일까. 너무 많은 앎에서 나오는 것일까.

경험은 인간을 무서움에서 벗어나게 할까, 더욱 무섭게 할까.

나는 이렇게 무서울지 모르고 여길 왔고,

아마도 그 외국인 부부는 처음이 아니었을지 모르고,

어쨌든 지금 나는 뿌듯함에 벅차하고 있다.


 내일 등반할 ‘프레이케스톨렌 (펄핏 락)’과 가까운 숙소를 잡다. 아주 작은 이층 침대,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맘대로 풀어진다.

 바로 앞에는 피오르드가 펼쳐져 있다. 하나도 무섭지 않은 이불 같은 피오르드가, 오늘도 이렇게 멋진 곳에 감겨 까무러진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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