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2
설교 바위, 제단 바위라고도 한단다. 피오르드 위로 기둥같이 솟아있는 거대한 바위, 그 꼭대기에는 마치 설교 제단인 냥 넓은 공간이 있다.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진을 봤다.
숙소에서 점심에 먹을 빵을 싸들고 오른다. 왕복 3시간 정도라고 했다.
오늘은 가뿐할 것이다. 어제 6시간의 절반이니까. 초입부터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개도 많고 아이들도 많고 가족 단위로 많이 왔다. 우리나라 백운대 등반하는 느낌이다. 그리 험하지도 길지도 않은 길을 조금 수고하여 걸으면 웅장한 풍경을 조망하는 멋진 바위를 만날 수 있으니, 대중적인 트레킹코스일 듯하다.
초반은 가파르다. 오르는 길의 풍광은 확 트였거나 산으로 둘러싸였거나,
북유럽에서 볼 수 있는, 큰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웅장한 모습이다. 어제의 바윗길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여전히 울퉁불퉁 돌길이다. 그러나 오르는 이들은 소풍을 가는 듯, 표정들이 달떠있다.
드디어 프레이케스톨렌!
저쪽에 사진에서 본모습이 그대로 연출되고 있다.
햇살은 아낌없이 쏟아지고, 짙푸른 뤼세피오르드 위로 거대한 바위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만들어 곧추서 있고, 그 바위 위에 많은 이들이 줄을 서있는 모습!
푸른 산맥과 깊은 계곡의 피오르드가 역시 비현실의 풍경으로 펼쳐져 있는 거다. 바위 가장자리를 돌며 사방을 둘러보다. 입이 헤 벌어진다. 노르웨이 멋지다!!!
사진을 찍어야 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줄을 서서까지 사진을 찍는 거 잘 안 하는데, 노르웨이의 트레킹 바위 위에서는 절대 예외다.
저기 바위 끝에 앉아 폼 나게 사진을 찍어줘야 예의인 곳이다. 내 앞에 선 가느다란 여성이 난이도 있는 요가 자세로 앉는다. 헉, 저게 또 어떻게 가능한가.
난 오늘도 떨었다. 면적이 훨씬 넓은 바위여서 오늘은 아닐 줄 알았으나, 이 또한 벼랑 끝이다.
저쪽 사진 찍는 그를 향해 요런 저런 포즈를 취했고, 바위에 다리를 걸쳐놓고 좀 과감한 흉내도 내면서 폼을 잡았다. 내 나름 뽕을 빼느라 시간도 끌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좀 미안한 감이 없지도 않은데,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온 그의 표정이 션찮다. 나보고 너무 빨리 움직이고 너무 빨리 나왔다고... 정말? 난 한참 된 것 같은데, 얼마나 무셔웠는데, 내 심장이 쫄아드는 것 같았는데 어찌 그보다 더 오래 있을 수 있을꼬……. 사진 때문에 기분 다운될 필요 없는데, 잠시 그런 기분이 되다.
사진 찍기에서 벗어난 이들이 햇살을 맞으며 곳곳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사방이 익숙해지자 하늘과 맞닿아 있는 이 풍경이 하늘나라의 어디쯤 같다. 행복하다. 난 무슨 복이 있어 여기까지 왔을까. 전생에 나라를 몇 번 구한 걸까. 명상에 잠긴다. 고요하다. 하늘을 나는 헬리콥터의 요란한 소리에 깨어난다. 이제 내려가자. 이것저것 주변을 간섭하며 천천히 내려간다. 젊은 아이들은 폴짝거리며 뛰어 내려간다. 흠, 좋을 때야!
다리가 묵직하다. 내려와 아이들에게 사진을 남긴다. 아이들이 놀라며 엄지 척을 날린다. '엄마 아빠 이런 사람이야~' 폼 잡는 이모티콘 하나 보낸다. 이제 하나 남았다. 가장 묵직한 트롤퉁가.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서울에서 그가 예약해 놨다.
숙소 앞에 차를 대는데 휠체어에 탄 남자가 다가온다. 한국인이냐구, 내일 산에 가시냐구, 부인이 혼자 가야 하는데 걱정이 되는데 같이 가줄 수 있냐구. 물론이죠!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숙소 벽에는 요정인지, 악마인지 '트롤'이 아주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 한가득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니 귀엽다!
밥도 하고 된장국도 끓이고 저녁 준비를 해서 먹는다. 내일이 정말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