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3
드디어!
노르웨이에 온 가장 큰 이유, 트롤퉁가 가는 날이다!
5시 30분에 일어나서 누룽지를 끓여 먹고, 점심과 간식을 단단히 준비, 6시 30분 출발이다.
한국인 부인을 만나 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숙소에서 9km 올라가면 P2 주차장, 대부분 여기에 주차를 한다. 거기서 4km 더 올라가면 p3주차장, 우리는 30대만 예약을 받는다는 p3주차장을 이미 예약해 놓았다. 만세!
산행을 시작할 때 아스팔트로 4km를 올라가면 많이 지칠 것이다. 산행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4km를 내려온다면 완전 기진할 것이다. 미리 P3주차장을 예약해 놓은 것은 매우 잘한 일이고, 그것도 모르고 우리와 같이 동행하기로 약속된 이 부인은 '행운 당첨'이다. 어쨌든 우리는 오른다.
P2주차장에는 이미 차가 빼곡하고 p3주차장에도 십여 대가 주차해 있다. 완전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산길은 심란하다. 사람들은 오르고 있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10km. 총 10시간을 예상하고 있다.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길을 오를수록 감탄이 나온다. 멀리 빙하가 있는 눈 쌓인 산하며, 바위에 낀 이끼 같은 초록들이 스위스나 뉴질랜드를 섞어놓은 것 같다. 길은 흙길, 바윗길, 돌길들이 섞여 있다.
트롤퉁가의 길이 이럴 줄 몰랐다. 그 마지막 장면, 트롤의 혓바닥에만 집중했는데 가는 길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우리는 감탄하며 걷는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간식도 나눠먹고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데 2km 왔다는 표지가 나타난다.
"아니 벌써?" 이런 말도 나오고,
이후로 1km씩 줄어드는 표지판을 보며
'같이 걸으면, 수다가 길을 줄여주는구나.' 이런 느낌도 나오고.
구름이 있어 걷기에 최적의 날씨인데 간혹 나타나는 해와 호수와 바람들이 은총과 같다.
드디어 목표지점이 저기 보인다. 하르당에르 피오르드를 향하여 바위 하나가 혓바닥처럼 나와 있다.
그 바위 끝으로 걸어가, 혀 끝 쪽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이 트레킹의 정점이다.
아, 여기를 오다니. 페북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꿈을 꾸었던 곳이다.
그 청년은 몇 년간 워킹홀리데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다. 러시아부터 시작하여 유럽과 이곳을 거쳐 산티아고와 아프리카까지 세계 일주를 계획하고 떠났다.
그가 트롤퉁가에서 피오르드를 향해 온몸으로 도발하는 사진을 본 후, 난 칠판에 세계 약도를 그려놓고 아이들과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 이 땅 밖으로 나가 세상을 돌아다니기! 학교와 동네 피시방이 세상의 전부인 걸로 알지 말거라.
여행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돈’이라 한다. 돈도 필요하지. 그런데 돈이 필요한 건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란다.
튼튼한 몸이 가장 중요하단다. 술 담배 줄여라.
그리고 ‘시간!’
돈이 부족한 사람은 돈 버는 데 시간을 써야 해서 여행 갈 시간이 없다고 한다. 돈 많은 사람들도 시간을 돈으로 알기 때문에 돈을 더 벌고자 여행 갈 시간이 없다고 한다.
돈은 차비와 최소한 경비로!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면 걸어서 세상을 떠돌 수 있지만 그전에는 최소한 비행기 값은 있어야겠지? 그리고 현지 가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여행을 하거라. 버스 타고, 기차 타고, 걸어서, 얻어 타고…….
자기 몸보다 큰 배낭을 짊어지고 밤 버스를 타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봤다. 고생이 심하겠다만 그것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차이가 얼마나 크겠느냐.
그 당당한 젊은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오르드 위에 혀처럼 나온 이 바위를 그려놓고 말이다.
그 청년은 자기 힘으로 여행을 한다. 돈도 몸도 시간도 자기가 만들어서 간다. 선생님도 그렇게 여기를 갈 거닷!
자본의 세계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스승님의 뜬구름 잡는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가 있기는 하다. 공부를 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고, 지금 가난하고……. 자기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을 게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눈을 빛낸다. 수업 시간에 듣는 여행이야기는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여행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어느 날 그 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오는 아이가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의 줄이 길다. 저 혓바닥 끝에서 감동의 순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모두의 눈은 그 혓바닥이다. 자기 순서가 되면 바위 끝으로 걸어간다.
쑥스러워하거나 어색해하거나 당당해하거나 쇼맨십을 부리거나 자기 특성대로 포즈를 취한다. 긴 시간 머무는 사람도 있고 딱 한 컷 찍고 내려오는 깔끔한 청년도 있다.
우리는 셋이서 교대로 찍어주기로 한다. 계속 셔터를 누른다. 무쟈게 기대되는 사진이다. 잘 나와야 한다. 자랑질도 하고 페북에도 올리고 해야 하니까.
그 감동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이 순간을 위해 긴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기 쉽지 않은 길이다. 많은 시간을 들이고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점심을 먹고 내려와야 하는데 바람까지 심하게 부니 일단 내려오기로 한다. 7월인데 몹시 춥다. 옷을 하나 더 껴입고 비옷까지 껴입고 내려온다. 오늘 하산 즈음에 비 예보가 있었는데, 사진을 다 찍고 비가 오니 다행.
남아있는 사람은 비와 함께 혓바닥을 감상할 것이다. 그 또한 색다른 경험일 것이고.
배고프다. 잠시 바람을 피할 바위 곁에 앉는다. 커피와 빵이 꿀이다.
같이 간 부인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남편이 하반신 마비의 장애를 가졌다. 처음 만나서 겪었던 이야기를 듣는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못된 인간 이야기를 듣는 대목에서는 내 입에서 욕이 튀어나온다. 결혼 후 지금도 이런저런 어려움은 진행형이란다. 그러나 참 바르고 씩씩하다. 남편도 그런 것 같다. 부부는 장애인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시간 많은 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앞으로 이 부부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짠하기도 하고 귀하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남편이 반갑게 맞는다. 그들의 방에서 컵라면을 먹고 가란다. 그 방은 우리 방 구조와 다르다. 휠체어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시설이 갖추어진 장애인을 위한 방이란다.
이 나라 정말 선진국이구나, 감탄한다.
남편이 휠체어를 움직이며 컵라면을 준비한다.
아, 이 맛! 이 시큰함!
장애인 관련 회의가 있어 이 나라에 오고, 부인이 트롤퉁가에 가고 싶어 했고, 장애인이 묵을 수 있는 이 게스트하우스에 왔다가, 우리를 만난 거다.
남편이 많이 고마워한다. 우리가 고맙다. 산을 잘 다니지 않는 부인은 매우 훌륭하게 잘 다녀온 것 같다. 포옹을 하고 인사 나누고 헤어진다.
몸이 또 풀어진다.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을 감사한다. 일행을 위해 기도한다. 조금씩 나아지는 세상이 되길.
그들은 하루 더 묵는다 하고, 우리는 짐을 싸들고 나온다.
‘오따’라는 아랫마을로 내려와 캠핑장에서 이틀을 지내기로 했다. 비가 계속 내린다. 캠핑장은 붐빈다. 이층 침대의 방, 옆으로 공간이 있어 식탁을 펴놓고 식사를 할 수가 있다. 불편하긴 하지만 텐트에 비하면 호화롭다.
카톡이 왔다.
여행 중에 귀한 분들 만났어요. 처음이거든요.
마지막에 꼬옥 안아주셔서 많이 따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