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드라이브
일박 이일 사업본부 워크숍 장소가 양평으로 정해졌다. 무슨 워크숍을 금요일에 간담. 하면서 여직원들의 구시렁이 이어진다.
'그러게 말이야, 주말 오전에 약속도 있는데 뭐 어쩌라는 거래. 나는 친구 결혼식 가야 하는데 새벽에 나와야겠어. 아침 일찍 나올 사람들 같이 나오자.' 한 달 뒤 워크숍 일정이 나왔을 뿐인데, 출발도 전에 돌아올 작전을 짜는 직원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나도, 작전이 필요하다.
금요일에 떠나든 목요일에 떠나든 뭐 어떠리. 언제 가고 언제 오는 것이 아무런 상관도 없던 때가 분명 있었건만, 더 이상 주말에는 오롯이 나의 시간을 갖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서른여덟의 나에게 키 185cm, 나이는 서른하나. 나만의, 나의, 내 애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곱이나 연하인 그 사람은 이제 내 애인이 되었고, 보통 주변인이 부르는 호칭으로는 남자친구다. 남자친구라는 단어가 익숙지 않고 어색해서 도통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게 흠이지만 말이다.
워크숍 디데이가 다가왔고 아직 서툰 운전이지만 내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팀원 두어 명과 함께 출발했고 고속도로 안전운전 속도를 훌륭히 지키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손바닥에 약간의 땀이 있음을 이제야 알아챘지만.
차에서 내려 보니 양평은 양평인가 보다, 싶다. 주변이 모두 초록 초록 산이고 숙소 근처에는 얕은 계곡도 있다. 공기 좋고 물 맑고 다.
워크숍은 잠깐의 회의를 시작으로, 단체 게임 그리고 야외 식사가 이어진다. 물론 술도 함께다. 술잔을 기울이고 마시고, 기울이고 건배하고 다시 마시고 끝이 없다. 술에 취한 척 한 명 두 명 방으로 들어가고, 나도 휩쓸려 들어갔다. 원래의 나라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의리파이지만 오늘은 예외다. 술에 취하고픈 마음이 없다.
다음날 새벽 5시나 되었을까. 워크숍 날짜가 정해진 날로부터 계획적으로 세워둔 일급 작전을 실행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찬물에 세수만 한 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주차장으로 나와 팀장에게 문자 하나를 남겼다.
'급하게 서울 갑니다. 부모님과 지방 친척분께 갈 일이 생겨서요. 이번 워크숍 너무 즐거웠습니다! 서울에서 뵐게요!!'
오빠가 타던 SM3를 중고로 받은 지 15개월 만에 이 차가 이렇게나 요긴하게 쓰일 줄 누가 알았으랴. 차 시동을 걸고 네비를 찍고, 서울로 출발! 소중한 나의 주말을 여기에서 반나절이나 보낼 순 없지. 하고 새벽같이 홀로 빠져나왔다.
양평에서 서울로 향하는
새벽 드라이브는
내 생애 최고였다.
텅 빈 도로 위 차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음악과 창밖 상쾌한 공기 그리고, 내가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을 생각하니 행복 그 자체다. 토요일 새벽 드라이브가 이리 즐거울 수 있다니, 혼자임에도 이토록 신나다니 이 느낌 이 기분 오래 기억하자, 싶었다.
건대입구에 도착했다. 주변 골목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익숙한 곳을 향해 한발 두 발 걷는데 약간 떨린다. 심장이 깨어났는지 두근두근 쿵쾅쿵쾅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다.
계단을 올라 3층 옥탑에 도착했다. "똑똑.... 똑똑똑!" 작지만 강단 있는 박자로 문을 두드렸다. 한 번 더, "똑. 똑. 똑" 하자마자 빼꼼 문이 열린다. 눈부신 듯 눈을 비비며 누구...
'나야 나. 나라고. 내가 왔지!'
웃는 건지 놀라는 건지 묘한 표정의 내 앞에 서있는 이 남자 - 그렇다, 나의 애인이다. 남. 자. 친. 구라 불리는 그 사람의 집에 무사히 도착했지 말이다. 꿀잠 자고 있던 남자친구는, 워크숍 이랬잖아? 하며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나 보다.
'뭐긴 뭐니. 자기 보고 싶어서 달려온 거지!' 속으로만 말하기 아까워 "보고 싶어서 새벽에 달려왔어!" 속마음 그대로 다 말해 줬다.
수줍어하는 남자 그리고 함박웃음 짓는 여자.
그렇게 우린 한참을 웃었고, 허그를 했고 키스도 했다. 토요일 새벽에 하는 드라이브 그리고 애인과의 입맞춤이 이렇게나 달콤할 줄이야. 이 또한 내 생애 최고의 기억이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