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마니아
월 화 수 목 그리고 주말 같은 금요일을 지나, 진짜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모두 합하면 정확히 일주일이 된다. 그 칠일 간에 우리가 만나는 건 주 3일? 2일? 정도다. 자주 만난 범위에 속하지 싶다.
주말은 당연히였고, 평일에도 늦은 시간 만나 야식 데이트를 하곤 한다. 서로를 알기 전부터, 둘 다 운동을 좋아하던지라 각자의 직장 근처에서 퇴근 후 수영을 즐겼다. 사실 즐겼다의 표현은 고급반 에이스인 남자친구에게만 해당된다. 그즈음의 난 어푸어푸 숨쉬기 운동만 줄곧 하던 생초보반 수강생 중 한 명이었다.
친구 따라 다니기 시작한 수영 강습인데, 물놀이가 취미인 남자친구를 만나다 보니 적어도 자유형 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언젠간 드라마 속 호텔 수영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올림픽공원이든 어디 구민회관이든 수영장 데이트는 꼭 한번 해보자 싶었다.
어느덧 25m 레일에서 자유형 왕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때가 왔다. 망설일 것 없이 한마디 툭. 던져본다.
"우리 이번 주말에 수영장 갈래?"
"좋지. 어디로 갈까?"
와우. 세상에나. 남자친구라 당당히 말할 남자가 내 옆에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 요즘인데, 수영장엘 동행할 남자가 생기다니! 어라, 듣자 하니 간절히 원하면 진짜 이뤄진다던데. 오랜 세월의 데이터베이스가 축적된 선조들의 귀한 말씀이 빛의 속도로 스친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거, 정말 맞긴 맞나 보다.
주말이 오고 있다.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저 멀리 높다란 롯데타워가 선명히 보이는 화창한 토요일이 되었다. 아직은 조금 쌀쌀한 기운이 맴도는 계절이지만 나의 자유형 실력을 뽐내기에는 전혀 문제없다. 게다 말로만 듣던 이 남자의 수영실력도 두 눈으로 확인할 기회다. 다만 다들 수영복을 입고 있음이 당연한 수영장이라 해도, 수영복 차림으로 만나는 건 처음인지라 살짝 부끄럽긴 하다. 그럼 어떠리, 파란 물속으로 풍덩 재빠르게 들어가면 된다.
오! 세상에나. 만상에나.
키 185cm 라더니 190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남자가 저 멀리서 걸어온다. 한걸음 두 걸음 내 앞으로, 다가온다. 국가대표 선수라 해도 손색없을 널따란 어깨를 보니 두근두근 콩닥콩닥, 내 심장이 활발히 움직인다. 제발 웃지는 말아 줘, 그러다 나 쓰러져... 하는 찰나, 씩- 미소를 짓는다. 리얼, 떨. 린. 다.
그즈음 산이며 바다며 몰려다니던 싱글 동생들이 몇 있었는데, 남자친구를 보면서 하나같이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언닌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 그것도 한 번만 구한 것도 아니고 한 여섯 번은 구한 거 같아."라고 말이다.
오늘에서야, 그 말에 진정 동의하고 인정한다. 평상복도 훌륭하지만 수영장에서의 이 남자, 몸매가 아까울 정도의 모델급이다. 신인모델 어디 구하는데 없나? 보디 프로필 찍어서 보내고 싶은 걸 하고 진심 생각했지 말이다.
수영장인데 수영에 집중은 안 하고, 남자 그것도 내 남자 몸매에 감탕하고 있다니. 나도 참 웃기는 여자 군. 어찌 되었건 수영하러 왔으니 이젠 내 자유형을 보여줄 차례다. 생초보반에서 초급반으로 월반된 나의 실력을 제대로 뽐내보리라, 큰맘 먹고 '잘 봐봐' 한마디 남기고 힘찬 발돋움을 하며 출발!
어푸어푸, 어푸어푸. 왼쪽 오른쪽 고개 돌려가며 어푸어푸. 긴 팔도 쭉 뻗어가며 앞으로 전진해 갔다. 발차기 첨벙첨벙, 숨쉬기에 집중하며 최대한 힘을 빼고 물살을 가르며.... 레일 끝에 도착이다. 손 한번 흔들어주고, 다시 되돌아서 출발점까지 도착 완료. 먼 길 수고 많았다, 스스로 토닥이며 '나 어땠어?' 하고 물었다.
고개를 까딱까딱 끄덕여준다. 잘했다는 말은 없다. 표현력에 조금 실망이지만, 숨이 가빠서 뭐라 말도 못 하겠다. 이번엔 남자친구 차례다. '어디 해봐, 얼마나 걸리는지 보자고.' 내 말 다 안 끝났는데, 쌩- 출발이다. 쓰윽 잠수하나 싶더니 레일 1/3 지점까지 가버렸다. 그리고 눈 깜박거림 몇 번 했더니, 내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는 거다.
'우와. 뭐야 뭐야. 잘한다! 진짜 빠르다! 잘하네!!' 잘했다는 말이 몇 번이고 절로 나왔다. 아. 하나 깨달았다. 이럴 때 비로소 잘했다, 하는 반응을 하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그다음은, 엎치락뒤치락 장난도 치고 동시 시합도 하면서, 살짝 민폐 안 끼치는 차원에서 물놀이도 하면서 땀나게 즐겁게 놀았더랬다. 수영장이 이렇게나 재밌는 놀이터가 될 줄이야 생각도 못 했다.
데이트할 때 뭐 해? 하고 간혹 묻는 친구들이 있다. 뭐 할만한 게 없다면서 말이다. 그럴 때면 수영장어때? 라고 얘길 해 주곤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무슨 수영장.. 하고 듣는 둥 마는 둥 지나치곤 한다. 아쉬운 순간이다.
무엇이건 해 보면 안다. 영화만 보고 맛집만 찾아다니기엔 주말 데이트가 너무 밋밋하다. 테니스장 데이트는 물론이고, 한강 라이딩 그리고 처음 알게 된 수영장 데이트까지. 운동이 주는 데이트 꿀맛은 절대 포기할 수 없지 말이다.
어쩌면, 데이트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운동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