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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한 Jan 28. 2024

그냥 공무원입니다

 직업을 왠지 밝히고 싶지 않다. 어찌 되었던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는 공무원이 되었지만, 어쩐지 마냥 숨기고 싶다. 다른 직업군에 비해 높은 도덕적 잣대가 적용될 것 같고, 괜한 민원을 받을 것만 같기도 하고, 국민정서상 공무원은 철밥통에 욕만 먹고... 괜히 시비에 걸리면 더 불리할 것 같기도... 어떻게 보면 공무원은 종류가 다양해서 직업이라기보다는 직군으로 분류되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하면서... 아무튼 직업란에는 늘 그냥 회사원 혹은 학생으로 쓴다.


 그런데 얼마 전 좋은 강연이 있어서 전화로 참석신청을 하는 일이 있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내게 소속이 어디냐고 묻길래 - 이름과 핸드폰 번호 정도만 물어볼 줄 알았다. - 엉겁결에 "그... 그냥 공무원인데요..."라고 쭈뼛거리면서 말해버렸다. 그 직원은 나에게 더 자세한 정보를 묻지는 않았지만, 부끄러웠다.


 뭔가 그럴싸하게 둘러대지 못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나쁜 짓 할 것도 아닌데 구태여 공무원을 숨길 필요가 있나 싶다가도, 나 스스로 내 직업에 당당하지 못하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사실 이렇게 부처에서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는 것이 내 꿈은 아니어서, 내심 내 스스로 실패자라는 생각을 늘 해왔던 것 같다. 더더군다나 코로나 이후로 공무원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와서 보니 공무원이 진짜 가성비가 떨어지는 직업이다 보니, 요즘 현타를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속해있는 곳이니, 보람을 통해 직업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나름 내가 하는 사업에 힘을 쏟아부어 잘해보려고 하지만 참 녹록지 않고, 되려 좌절감만 느끼고 만다. 그리고 성과가 보이지 않는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게 참 어렵다. 내가 왜 이렇게 애를 쓰고 있을까 싶다. 나는 아무래도 공직마인드는 없는 요즘 것들이라, 괴롭기만 하다.


 요새는 점점 내려놓고 있다. 직업이 뭐 별거인가, 그저 적당히 밥벌이하고 살아진다면 그만이지. 직업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공무원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이곳의 나의 글쓰기도 특별한 것은 없을 것이다. 담백하게 나를 관조하면서 보통 일반 직장인의 이야기를 담을 뿐이다. 그냥 직장이 정부인, 그저 나도 일반 직장인, 회사원일뿐이니깐. 별거 없다. 나는 그냥 공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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