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May 08. 2024

2중 '막'장

막 할게요

글 쓰는데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매사 멈칫멈칫 걱정하고 겁을 먹는 제가요. 하다못해 노래방 번호 누르기도 고민하며 최선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고뇌하는 제가 말이에요. 그까짓 노래 좀 잘 안된 것 갖고 스트레스받는 제가요. 쓰기는 그렇지 않네요. 그것이 이상합니다. 멋모르는 초보의 무모함인지 아직 무서운 맴매맛을 못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이 그래요.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예 지금까지 연재한 것도 그림 맞는데요. 그건 그거고 오늘부터 매일 1 그림 다시 시작하려고요. 제 수준에 어려운 수채화 책을 시작하면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연습하던 흐름이 깨어져서요. 다시 걸음마 그림 하려고 해요. 쉬운 그림 매일 그리기. 겁 상실이 필요한 초보 힘 빼기하려 합니다.


정문정 작가가 이런 말(글)을 했어요.

"말은 할수록 늚을 느낀다. 글은 다르다. 쓸수록 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신경숙 작가도 <요가 다녀왔습니다>에 같은 맥락의 말을 했습니다.

"지난번 작품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 자신이 없다. 하다못해 어제보다 잘 쓸 수 있을지마저 알 수 없다"고요.


그렇게 치면 글이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더 대단한 비기가 없는 종목이 아닐까 싶어요.

에세이를 예로 들자면, 보통 개인적인 얘기에서 시작해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하고 거기서 느낀 점 혹은 하고자 하는 말을 하며 끝맺는 게 무난하다거나. 한 문장에 너무 많은 메시지를 담지 않는 것이 좋다거나. 말하듯이 쓰라든지 하는 기술적인 면, 글쓰기 방법에 대한 것(아는 게 많지 않아 예시가 좀….)들을 습득한 분들에게 글 쓰기는 더 이상 형식의 문제는 아닐지 모르겠어요. 독자를 사로잡는 법이 쓰기 방법에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요. 운전을 30년쯤 혹은 그 이상 했다고 3년 차보다 눈에 띄게, 비교 불가하게 잘하는 게 아닌 것처럼요. 그 운전이라는 건 길을 잘 아는 것(목적지로 가는 길을 아는 것)이 중요할 테고 글을 쓴다는 것(쓸 내용이 있는지, 하고자 하는 말이 독자가 원하는 글)인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예, 물론 아니면 말고입니다.

아직 그 수준으로 '작가'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잘하기 때문에, 쉬워서 부담이 없는 것이 아닌거죠. 가진 게 있다면 잃기 싫을 거예요. '작가'가 이 정도밖에? 라는 말을 들을까 글테기라도 겪을 것 같네요. 다행인 점이라면 저는 아직 거기 닿지 않았으니까요. '작'이라는 말과의 거리는 '맘' 편함을 선물로 주었으니까요.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욕심도 잘하려는 조바심도 비난받을 두려움도 없는 작업입니다. 언제나 강조하지만 저는 브런치에서 귀여움(?)이나 담당하는 초보니까요. (내돈내책하고 나면 '작가의 책임감' 달게요. 하하) 그렇게 부담 없으니 순수하게 즐겁습니다. 쓰는 일이요.

길 가는 사람 붙잡고 제 얘기 좀 들어주시라고 할 필요가 없어요. 외롭게 독백하는 일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뱉었다는 홀가분함을 주는 행위입니다. (가상의) 독자를 향해 내가 하고 싶었던 말(독자가 원하는 말이 아닌)을 했다는 신남. 헬로키티처럼 귀는 있고 입은 없는 독자의 신체적 조건을 악용하여 대상을 향해 떠들 자유를 받았으니 마음껏 그 권리를 누리는 중입니다. 더 누리기 힘들 만큼의 호사입니다.

글감이 떠오르는 대로 써 재끼고 아무 말이나 편하게 하며 글벗님께 부담 아닌 부담을 드리지만 저는 더없이 행복하기만 한 것입니다. 시간이 나면 어서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싶어 컴퓨터부터 켜곤 하니까요.

하지만 제 성격이 원래 그렇지 않았듯 '그림'이라 말을 하면 원래대로 그만 경직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붓 한번 잡기도 연필 한번 잡기도 두려워요. 앓는 소리 하며 오래 병중입니다만 증상의 호전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 정도는….' 은 요원합니다. 물론 그림 그리는 분들이 보기에는 겨우 그 정도 연습으로 두려움이 사라질 것 같으냐 비웃을지 몰라요. 황당할 만큼 어이없거나 철없는 소리일지 모르죠. 그럼에도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하는 작업이라면서 매번 무서움부터 들고 보니 왜 그럴까 하는 궁금증은 입니다. 글 쓰듯이 즐겁게 할 수 없을까 궁리를 해요.


대상을 관찰하고 내가 바라본 것을 표현하면 되는데 글과 그림은 무엇이 달라 어려울까요?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제게 대상을 관찰하고 통찰을 뽑아내는 도구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기보다 나음을 보장하지 않는 글이니 그냥 기분이나 표현한 걸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을지도요. 그에 반해 그림은 그 과정을 건너뛸 수가 없네요. 끝까지 해 내야만 결과물이 나오는 거지요. 대상-> 관찰-> 표현으로요.

관찰 대상은 널렸지만 개성 있는 눈으로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겠고 그렇게 나만의 눈으로 본 것을 표현하는 게 그림이라면, 확신에 찬 말투로 정답을 내어야만 하는 거라면? 미완성의 그림이 최종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끝까지 결말을 내어놓아야만 하겠습니다.


아! 그렇네요. 글은 제 우유부단하고 엉뚱한 생각을 밀어붙여 답을 내지 않아도 발행을 누를 수 있습니다. 열린 결말로 독자에게 바통터치가 됩니다. 대단한 독자분들이 더 좋은 생각으로 결과를 만들어 줍니다. 저는 뭐 거의 화두만 던져도 성공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림은 종목이 다르네요. 제가 본 대상을, 제 눈으로 본 물체를 저만의 것으로 과제 제출을 해야 하니까요. 라테를 먹을지 바닐라라테를 마실지 차가운 걸 마실지 뜨거운 걸 마실지 나가서 마실지 앉아서 마실지 수많은 결정이 힘든 제게 한순간 한순간 결정하고 답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이 그림이겠네요. 그림에 힘이 드는 이유 같습니다. 핑크 인디핑크 핫핑크를 결정해야 하고 정면으로 그릴지 측면으로 그릴지 소실점을 어디로 찍을지 어디까지 그려야 할지를 정해야 하는 그 작업을 제가 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아! 두려운 이유는 알았습니다. 두려울 만하네요. 그렇다고 내일 당장 무서움이 사라졌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하얀 종이보다 눈앞이 더 하얄 것 같습니다.

겁이 사라지는 날이 오긴 할까요? 확신에 찬 손놀림으로 과감하게 그리는 날이 올까요? 글쓰기처럼 문장을 날릴 수도 지워버릴 수도 없는 그림을. 고치기도 힘든 수채화를 즐겁게 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수많은 연습만이 두려움 대신 한 장의 그림을 만드는 방법일 테니까요. 자동 가제트 팔을 또 소환해 보죠 뭐. 오늘부터 그냥 '아무 그림' 그리기 시작하겠습니다. 막글처럼요. 막그림, 또 시작하겠습니다.


근데 이거 왠지 <그린이의 그림 독학 분투기> 2부 같은데요?


대문 사진은 <어반스케치>하려고 오늘 찍은 사진 중 한 장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진주 문산 동네입니다.


들여름달 여드레 삿날(05월08일 수요일)

유럽 갈 생각없습니다. 그림 그리려고 샀습니다. 책을요.ㅎㅎㅎㅎ

마트에 갔는데 5권에 만원하는거에요. 무조건 담았죠. 책이 한 권 2천원이라니 으흐흐흐흐 백수라도 사야죠.

첫 장부터 그려보겠습니다. 아침 아이들 밥 먹는 시간동안만. 딱 5분만에 그리려고요. 연필 보조선 필요없이 막 그림 하려고요. 두려움 없애기. 머뭇거리기 없기가 목적입니다. 딱 5분만에 끝내기! 잘하지 말기!!!! 2천원짜리 책과 천원짜리 다이소 공책으로 시이작! 겁 상실 1일 1그림~

이전 20화 중요하게 할 말은 없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