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었으면 또 고생할 뻔
시험관이식센터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의 마음은 비장했다.
"여기 신분증이요."
"아, 들어오시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생년월일 여기서 확인할게요."
1차를 해봤다고 기억하던 순서대로 신발을 갈아 신기 전에 냅나 신분증부터 내밀었다. 긴장감이 가득했던 처음과 달리 두 번째 방문은 제법 여유를 가져다주어서 내 마음은 한결 편안했다. 짧은 안내 뒤로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회복실로 들어간 나는 침대로 자리 안내를 받았다.
"시술 전에 수액부터 맞을 건데, 콩주사라고 들어보셨죠?"
"네, 들어보긴 했어요."
"오늘은 이거 맞으면서 바로 시술 들어가실 거예요."
일명 '콩주사'라고 불리는 수액은 NK수치가 높을 때 처방이 되거나 이식 전 면역을 제어하며 약하게 떨어뜨려 착상 확률을 높여준다 한다. 2차라 수액이 추가되면서 콩주사까지 처방된 나는 이틀 연속 양쪽 팔에 피검사를 한 후라 가운데 멍이 든 쪽을 뺀 자리에 수액을 맞고 걸어서 자리를 이동했다.
배아 이식 시술을 받는 곳에 들어가 전처럼 누워서 자세를 잡으니 현실감이 확 와닿는 느낌이 들었지만 큰 긴장은 하지 않았다. 다만 걱정이 들었던 건 초음파가 잘 보일지, 그것만 신경이 쓰였다. 1차는 방광이 비어 자궁이 보이지 않아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이식 자리도 정확하게 확인이 어려웠으니까.
"초음파가 잘 보여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아, 그때 잘 안 보여서 고생하셨죠."
"네, 그래서 오늘은 집에서 나오기 전에 물 한 모금 먹고 왔거든요."
"그러셨구나, 잘하셨어요."
시술 담당을 맡은 분이 전과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대화였다. 어쩌면 긴장이 덜 한 게 시술 전까지 웃으며 나누는 소통이 즐거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적막한 것보다 훨씬 마음의 위안을 가져다주니까. 곧 이름을 확인하고 원장님이 들어오면서 시술이 시작되었다. 차마 겉으로 뱉지 못한 나의 긴 숨과 함께.
"여기 내막 보이죠? 이제 배아 이식할게요."
물 한 모금 먹고 나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찾느라 헤맸던 1차와 달리 초음파는 한 번에 정확한 위치를 비추었다. 내가 봐왔던 내막의 모양이 저렇게 잘 보일 줄은 몰랐는데 직접 보니 마음이 얼마나 놓이던지. 불편함도 덜하고 배아를 넣는 과정을 보느라 나의 시선은 모니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배아 이식은 잘 됐고 좋은 소식 기다려봅시다."
"감사합니다."
"물 마시고 오시길 잘하셨네요. 저번이랑 다르게 초음파가 잘 보인 거 보면."
"그러게요. 다행이에요."
간단한 멘트를 남긴 원장님이 나가고 대화를 나누었던 간호사의 다정한 칭찬에 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람이 참 가볍다고 느낀 게 고작 초음파 하나로 실패의 탓으로 돌렸다가 잘 보였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다주다니. 간절한 만큼 임신에 관해 사소함마저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
회복실로 돌아와 다리를 살짝 올리고 겨울 이불을 덮은 나에게 한 시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이내 배아 상태를 설명해 주러 선생님이 왔을 때 보이는 배아의 모양은 전보다 나은 상태였다. 보조부화술을 한 상태였는데 후에 나올 결과에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지만 느낌이 좋은 걸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천천히 맞아야 하는 콩주사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되도록 아프다는 말은 참는 편인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선생님을 불렀고 주사 자리를 느슨하게 풀어 그나마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연이어 빼고 난 후에도 칼로 쑤시듯이 통증이 있어 당황한 나는 내 살을 꾹 눌렀다.
선생님을 두 번이나 부르기가 애매해 참으면서 버티니 통증은 점차 가라앉았고 검색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주사의 부작용 중에 혈관통이 있다는 것을. 결국 멍이 들었지만 착상에 도움을 준다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싶었다. 아파도 도움만 된다면 뭔들 못하리.
"고생했어."
주사와 약 처방을 받고 난임센터를 나선 나는 곧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심이 들면서 마음이 착 가라앉는데 운전하고 집에 오는 길이 얼마나 들뜨던지. 1차보다 편안했고 여유로웠기에 전체적인 느낌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먹은 대로 편하게 생활을 즐기기로 했다.
무리한 운동만 빼고 평소대로 먹고 움직이며 최대한 생각을 멀리 두었다. 좋은 생각을 하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전처럼 누워서 쉬기보단 틈틈이 걷기로 가볍게 몸을 풀었고 느껴지는 증상에 연연하기 않으며 조금 나아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어떤 결과든 눈물은 나지 않겠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짧지만 긴 기다림 끝에 피검사를 하러 가기 하루 전, 결국 못 참은 나는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참고 참았던 증상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