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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o 수오 May 19. 2024

철학책 서문을 보고 눈물이 났다

그 글은 완전해서 선했고 불완전해서 아름다웠다



   얘, 너는 무슨 책을 펼치자마자 우니?    


   어이없고 난감한 듯 한 목소리로 너는 내 오른쪽 허벅지를 쿡 눌렀다. 책 서문을 보고 주책맞게 울었다. 어떤 작품이길래 에필로그부터 감동이냐고? 한 단어에 온 우주를 꾹꾹 눌러 담아 별나라 언어와 별다른 것이 없는 악명 높은 철학서. 아니 그런 책에 도대체가 울만한 포인트가 있던가? 혹시 글이 너무 어려워 분통해서 눈물이 났나?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글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감정이 걸려 터졌을까.


   곳곳에 등장한 별나라 언어들도 꽤 있었으나 문제 되지 않았다. 사실 내용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글의 논리 구조가 아닌, 저자의 수고로운 역사를 보았다. 그러니까 작가의 탁월한 지성이 아니고 그의 육체적 노동이 보였다. 그때 입술 밖으로 나지막한 말이 튀어나왔다 ‘예술이구나 이건’. 그 글은 완전해서 선했고 불완전해서 아름다웠다.    


   우리는 종종 일상에서 예술을 발견한다. 단어는 감탄사처럼 쓰인다.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 땀 한 땀 엮어 만든 거미줄을 보고 놀라워하는 것처럼, 우리는 탁월하게 지어 만든 일상의 결과물을 보고 그렇게 감탄한다. 화이트 큐브 속 알 수 없는 재료만 흐트러트려 놓고 이제 ‘이것들을 예술이라고 하자!’라고 외치는 요즘 예술보다 오히려 전자가 본 개념에 더 가깝다. ‘예술(art)’이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유래되었고, 이는 인간의 모든 활동 중에 ‘숙련된 솜씨’를 뜻하는 그 어원을 상기해 보면 말이다.  





당신은 책의 첫 장만 보고 울컥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한 문장 보고 확 올라온 적은 있었습니다. 물론 문학 작품이었고요. 그런데, 지식을 전달하는 전문 서적을 보고 눈물이 나다니요! 참으로 어리둥절했습니다. 아직도 명확한 이유는 모르고요. 그렇지만 그 경험은 저에게 큰 심적 동기를 안겨주었죠.   


   사실 저에게도 서문의 저자처럼 마땅히 추구하고 싶은 진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고군분투할 다짐도 했었고요.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온통 그 생각뿐이었어요. 현실의 삶을 유지하는 데는 관심 없었습니다. 어쩔 때는 밥 먹는 것조차 잊을 때도 있었어요.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을 생각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다음날 아침을 정하는 제가 말이죠.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든든했어요. 잠을 자지 않아도 정신은 말똥말똥했죠. 그렇게 수십 개월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립되었지만 행복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고립돼서 나를 만족시키는 내 행복은 달콤했지만, 오직 나 밖에는 없는 그 이기적인 행복은 늘 헛헛함이 동반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내 생명감은 점점 살찌워져 갔지만, 정작 내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습니다. 저에게는 그들의 생명을 돌볼 능력이 없었어요. 오히려 그 돌봄의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중이었죠.


   그래서 그랬나 봅니다. 그 서문을 보고 눈물이 난 것이요. 그는 마땅히 추구해야 할 모두의 정의를 추구했고, 그렇게 맺은 열매는 누군가의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의 완성도는 선했고, 그의 겸손은 아름다웠습니다. 존경스러웠습니다. 아주 깊게요. 그리고 질투가 났습니다. 벅차게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도 저럴 능력이 있을까? 필요한 영양소로 똘똘 뭉친 슈퍼푸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허기는 채울 수 있는 열매는? 미감을 황홀하게 만족시키는 최고급 열매는 아니더라도 정성스레 접시에 담기에는 부끄럽지 않은 열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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