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간암 누나 간병일기
응급실에서 돌아온 당일, 못 잔 잠을 몰아서 자고 일어났더니, 누나의 열이 또 심상치 않았다. 온도계에 표시되는 열이 높아질수록, 걱정되는 마음에 열을 재는 간격은 점점 잦아졌다. 정말 심각할 때는 15분에 한 번씩 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처방받은 약은 타이레놀 서방정이지만, 절반이 늦게 녹을 뿐이지 나머지 절반은 일반 약과 비슷하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누나가 저번에 응급실을 다녀오고 특별한 처치없이 고생만 많이 해서 그랬는지, 38도 까지는 응급실에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사실 나도 응급실에 데려가기 싫었다. 응급실에 가면 누나가 잠도 못 자고, 가장 싫었던 것은 의자에 눕혀놔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번에 38도가 넘어가서 타이레놀을 하나 먹었지만, 그래도 열이 잡히지 않고 점점 오르자 타이레놀을 하나 더 먹었다.
AAP의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이 간독성인데, 일 최대 4,000mg 이상시 발생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누나가 술을 정기적으로 먹은 것도 아니고, 당시 타이레놀 서방정 2알이라고 해봤자 650mg*2개이므로 허용치를 벗어나진 않았다. 타이레놀 일반형도 500mg 2개를 섭취하는데, 서방정은 절반씩 녹으니 한 번에 많은 양을 섭취하는 것도 아니었고.
누나가 간암 환자라서 먹일까 말까 정말 온갖 갈등을 했었다. 누나의 열이 괜찮아져도 간이 망가지면 어쩌나 하는 그런... 병원에서 하루 최대 3알만 먹으라고 표기했었고, 저녁에 2알을 연달아 먹었지만 하루 복용량을 초과하지 않았으므로 누나에게 그냥 먹자고 말했다.
정말 부처님이 도와주셨을까? 누나는 2알을 먹고 이내 점점 열이 내려가서, 꽁꽁 싸맨 이불을 점점 걷어냈다. 누나는 부처님께 열심히 기도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도 해가 뜰 때쯤에나 잠에 들 수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 엄마에게 누나 이제 조금 괜찮아졌다 말하고 늘 자러 갔으니.
누나는 이럴 때마다 내가 신경이 예민해져서 체온계를 10~15분 단위로 측정하려고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아무래도 온몸의 신경이 예민해서, 귀가 많이 아팠던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응급실을 안 가려면 이렇게라도 해야지..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그날도 저녁부터 열이 슬슬 오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39도를 넘어섰다. 살아생전 처음 보는 숫자였고, 누나도 나도 몹시 당황했다. 나는 누나의 패혈증이 걱정되어, 누나 가기 싫은 거 알지만 이번에는 가야 할 것 같다며 설득했다. 누나도 39도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이내 짐을 챙겼다.
당시 12월 첫날인가 둘째 날이었다. 월드컵이었을까, 축구를 했던 것 같았는데, 왜 기억하냐면 당시 응급실에 사람이 많이 없었다. 응급도를 분류하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자리가 많으니 의자 3개로 배정해 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했고, 선생님은 급한 분들이 오시면 비켜야 한다는 조건으로 내어주셨다.
누나의 키는 170cm으로 꽤 큰 편인데, 의자 2개에 비집고 누워있는 게 너무 속상했었으니까. 다행히 누나는 의자 3개에 누울 수 있었고, 후리스를 말아 베개로 넣어주고, 잠바를 벗어 이불로 덮어주었다. 하지만 응급실이 늘 그렇듯, 대기시간은 길었다. 내 예상은 아침이었는데, 내 예상을 보란 듯이 빗나가버렸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혈액검사를 진행했고, 의사와 면담을 하는데 무슨 췌장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내 예상엔 얼마 안 된 의사 느낌이었고, 이내 해당 장기에 관련해서 CT까지 찍어야 했다. 그리고 염증 수치도 계속 높아서, 내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주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응급실 당직의가 교체되었는지 다른 사람이 잠시 왔었는데, 누나가 계속 목이 아프다길래 한 번 봐줄 것을 요청했더니, 가글을 처방해 준다는 말만 하고선 절대 봐주지 않더라. 그리고 수액 줄에 공기가 찼는지, 공기를 빼는 것까진 좋았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못해 새어 나온 피가 옷에 다 묻었었다.
당시 응급실은 옛날 학교에 있던 가스 온풍기로 난방을 하고 있었고, 공기가 굉장히 건조해서 물을 계속 연거푸 마셨었다. 누나는 혹시 모를 상황 때문에 물을 마시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방법은 물로 가글을 시켜주는 게 전부였다. 누나의 입가가 마를 때마다, 나의 마음도 갈라져만 갔다.
밤에 갔는데 다음날 오전 12시였나, 거진 14시간 정도를 대기했었다. 누나는 그 사이에 광범위 항생제도, 해열제도 투여했지만 열이 잡혔다가 다시 오르고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4층에 거주하여 집에서 나올 수 없었던 누나이기에, 해가 뜰 때 누나를 휠체어에 잠시 태워 구경시켜 주었다.
응급실 근무 인원들이 모두 교대하고 난 다음, 그때서야 내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었다. 만나기 전까지는 화가 가득 난 상태였지만, 정말 친절하고 섬세하게 봐주셔서 씻은 듯이 녹아내렸다. 그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채송화 교수님과 정말 닮으신 분이었고, 지금도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다.
선생님은 CT 확인 결과 췌장이나 이쪽은 전혀 관계없고, 일단 입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응급실 내에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이 상황에서 누나가 의자가 아닌 침대에 누운 것 만으로 너무 행복했었다. 혹시 뭐라도 먹어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괜찮다는 말에 혹시 몰라 가져온 과일 주스를 한 모금하라고 누나에게 주었다.
누나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 때문에 잠을 못 잔 동생이 걱정이라며, 배 고프면 편의점 가서 뭐라도 먹고 오라고 난리였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나도 뭐라도 챙겨 먹긴 해야 했었다. 이제 좀 안심이 돼서 그랬을까, 밀려오는 졸음을 참기 위해 커피도 한 잔 마셔야 했다.
간단하게 먹고 왔는데, 누나는 왜 이렇게 빨리 왔냐며 걱정하더라. 충분히 먹고 왔다며 안심을 시키는데, 간호사가 와서 병실을 신청하고 오라고 했었다. 나는 늘 보호자 병동을 1순위로 신청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간호간병 병실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참을 고민했었다. 지금 들어가면 누나 혼자 보내야 하고, 같이 가려면 기약 없는 기다림을 거쳐야 한다. 누나와 상의한 결과, 일단 누나 혼자라도 들어가기로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병실로 같이 이동했고, 누나의 짐을 정리해 준 다음 꼭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당시 열이 계속 안 떨어져서 문제였다. 해열제도 이제 한계라서 간수치가 급상승한 지금 더는 투여가 어려운 상황이라, 누나보고 얼음주머니를 끼고 있으라고 했나 보다. 그 사이에 누나가 아파했던 편도가 많이 붓고, 기침도 해서 감기약을 달라고 했더니, 혹시 코로나가 아닐까 싶어 코로나 검사도 2번 하고, 격리당하고, HPV 검사인가 그것까지 했다고 말했다.
나는 누나가 혼자 있어서 걱정이었고, 무슨 창고 같은 곳이라고 말해서 더 걱정이었는데, 사진을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고, 누나는 오히려 따뜻하고 조용해서 좋다고 말했었다. 나는 자주 연락이 안 되는 누나가 걱정되어서, 검사 결과를 볼 수 있는 어플을 설치하여 주기적으로 확인을 했었다.
모든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고, 교수님은 항암제로 인해 종양 세포가 사멸하면서 발생한 암성 발열로 결론을 지은 듯했다. 한 일주일을 병원에 있었나, 누나는 머리를 못 감아서 많이 답답한 듯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조무사 선생님들이 머리를 감겨주셨는데, 드라이기가 없어서 말리지를 못했다네..
누나는 늘 집을 추워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가스를 트는 것은 어려웠다. 당시 난방비가 몇 배로 올랐던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누나는 1인용 텐트 같은 것을 찾아봤는지, 나보고 구매해서 설치해 달라고 말했었다. 얼마 후 누나는 갑자기 퇴원하라고 말했다며 나에게 전달했고, 나는 얼른 누나를 데리러 병원으로 갔다.
그 사이에 엄마는 거진 일주일 만에 누나가 온다는 말에, 얼른 시장에 가서 누나가 좋아하는 딸기와 천혜향, 레드향을 한가득 사 왔다. 누나를 데리러 병원에 갔는데, 수액을 급하게 맞아서 그런지 누나의 혈관이 부어있었다. 간호사는 엄청 누나를 챙기기면서 괜찮다고 하길래 몰랐는데, 병원 밖을 나오니 제일 나쁜 사람이었다고 했었다. 괜히 보호자가 오니까 연기하는 거라며.
집에 도착해서 누나는 깨끗하게 씻고 나왔고, 설치된 텐트를 보더니 만족해다. 매번 힘들어서 불을 끄기 힘들어하는 누나를 위해 스위치만 누르면 불을 꺼주는 버튼을 설치해 줬다. 정말 혼자서 고생많았어 누나.. 이제는 열이 안나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