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래로 뉴스에서 전문가들이 나와서 하는 말들이 있었지요.
'이러다 제5차 중동전쟁으로 확전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여러분? 5차 중동전쟁을 걱정하기엔 너무나도 이릅니다. 왜냐면 1차 중동전쟁조차 일어난 적이 없거든요.
'중동전쟁'은 국제적으로 전혀 사용되지 않는 용어로,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잘못된 번역어입니다.역사를 간단히 살펴본 뒤 왜 중동전쟁이라 부르면 안 되는지를 알려드릴게요.
우선,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1948년에 일어난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을 말합니다. 흔히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불리고, 이스라엘은 건국 전쟁이라 부릅니다.
1948년에 유대 민족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인종청소를 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합니다. 아랍국가들은 인종청소가 너무나 심각해지자 참지 못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돕기 위한 군대를 파병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방진영에서는 인종청소라는 사전맥락은 언급하지 않은 채 아랍 국가들이 선제공격했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이스라엘을 선량한 피해자라고 두둔합니다.
제2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수에즈 위기(Suez Crisis)라고 보다 더 널리 알려졌습니다. 1956년에 이스라엘-영국-프랑스가 이집트를 선제공격해서 발발했습니다.
제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1967년 전쟁, 6월 전쟁, 6일 전쟁 등으로 불립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을 선제공격했고 영토를 강제점령했습니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가 점령된 것도 이때였고, 오늘날까지 식민 지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4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흔히 욤키푸르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빼앗긴 시나이반도를 돌려받고자 화평을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1973년에 무력시위로 벌인 전쟁입니다. 안보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돌려주고 평화협정을 맺습니다.
이처럼 4번의 전쟁은 모두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에 벌어졌고 따라서 '아랍-이스라엘 전쟁'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합니다. 괜히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지요.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을 수 있죠. "어차피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이니 중동전쟁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나요?"
국제사회가 중동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중동의 핵심 국가 중 하나인 '이란'이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란도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아랍 국가라는 오해를 사곤 하지만, 이란은 페르시아어를 쓰는 페르시아인의 국가입니다.
1-4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중동전쟁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중동전쟁'이 앞으로 쓰게 될 용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3년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래로 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아랍 단체들은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어서 국제 사회에서는 '중동 위기(middle eastern crisis)'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중동위기가 우리말로 의역하면 중동전쟁이 됩니다.
그럼 어떤 문제가 생길지 짐작 가시죠? 국제적으로는 제1차 중동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만 제5차 중동전쟁이다!라고 외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거 하나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중동전쟁'이라는 잘못된 표현은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요? 우리나라 이외에 유일하게 중동전쟁이란 표현을 쓰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그럼 답이 나오지요?
어떠신가요. 8년 연구의 내공이 보이시나요? 다음에는 '오스만 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교과서에서도 쓰는 표현이지만 이 역시도 틀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