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좀 아시는 분들은 영국이 유대 국가를 약속했기 때문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TV나 신문, 역사책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요. 그런데 이는 전적으로 틀렸습니다. 왜 그런지 볼까요?
지난 글에서 보셨듯이, 1차 대전 때 영국은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후세인-맥마흔 서신협상으로 아랍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협상을 주도한 외교부에 대해서 내부 비판이 나옵니다. 유전지대인 이라크와 유사시에 군대를 파병할 통로가 되는 팔레스타인-요르단을 확보하는 게 중동정책의 핵심인데 어떻게 독립을 허용해 버리냐고요. 동맹국인 프랑스도 아랍 독립에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외교부는 프랑스와 협약을 맺어 아라비아반도를 제외한 아랍 지역을 분할해서 가지기로 합니다. 이게 그 유명한 사이크스-피코 협약입니다.
영국은 사이크스-피코 협약에 대해서 한 가지 불만을 품었습니다. 바로 팔레스타인의 북부 지역이 국제관리지역으로 편성된 점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모두 팔레스타인을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온 절충안이었습니다. 영국은 협약을 맺은 뒤로도 어떻게 하면 프랑스를 팔레스타인에서 쫓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시온주의자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시온주의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는 유대 민족주의 운동입니다. 시온주의자들은 1882년부터 35년간 팔레스타인에 식민촌을 세우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으나, 전 세계 유대인의 1% 정도만 시온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이들을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프랑스가 아닌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길 원한다는 국제 여론을 형성해 달라고 제안을 던집니다. 시온주의자들이 수락하자 1917년 11월에 영국은 시온주의자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냅니다.
영국 정부는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의 고향(a National home for the Jewish people)을 팔레스타인에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에서 살고 있는 비유대 공동체의 시민적, 종교적 권리가 침해받거나 혹은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이 향유하는 권리와 정치적 지위에 피해를 끼치는 일은 없도록 할 것이다.
이 서신은 외교부장관의 이름을 따서 '밸포어 선언'으로 불리고 있고 많은 학자들이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이자 시발점으로 손꼽습니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영국이 밸포어 선언으로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선언문 어디에도 유대 국가는 없고, 영국이 약속한 것은 '민족의 고향'입니다. 그런데도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고 알려진 까닭은 친이스라엘계의 정치 공작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의 고향'이 뭔지 전혀 모르는 번역가들이임의로 유대 국가로 잘못 번역하는 바람에 오해를 키우고 있습니다.
유대 민족의 고향은 시온주의자들이 유대 국가라는 최종적 목표를 숨기기 위해 1897년에 고안한 기만적인 용어입니다.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이 시온주의에 반대했고, 또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는 오스만 제국이 시온주의를 경계했기 때문에 시온주의자들은 유대 국가라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팔레스타인에서 공법으로 보장받는 유대 민족의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시온주의의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국내에서는 '공법'을 '국제법'으로 잘못 번역하고 있는데, 시온주의자들은 국제법이란 용어를 쓰면 국가처럼 해석될 우려가 크다고 일부로 공법(公法)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영국은 시온주의자들이 목표로 내건 '민족의 고향'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국의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유대 국가를 약속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직접 통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관료들은 장기적으로는 유대 국가가 세워지는 것도 긍정적으로 보았으나 당장 그런 국가를 세울 의도는 없었습니다.
1차 대전이 끝나자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독립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영국은 유대 '민족의 고향'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독립을 시켜줄 수 없다며 강제로 통치합니다. 당연히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불만을 품게 되고, 자신들은 유대 국가를 원치 않는다며 항쟁할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영국은 밸포어 선언은 '민족의 고향'을 약속한 것이고 유대 국가는 아니라며 달래는 한편, 시온주의자들의 식민촌 건설을 도우며아랍-유대 간의 세력 경쟁을 유도합니다. 분쟁은 그 과정에서 태어난 산물입니다.
저는 국내에 발간된 거의 모든 팔레스타인 서적을 읽어봤는데, 대부분의 서적에서 역사적 오류가 무수하게 많이 발견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오류 No.1이 바로 유대 민족의 고향을 유대 국가로 번역한 사례입니다. 만약 영국이 1차 대전 중에 밸포어 선언으로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면 오늘날의 분쟁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랍인들이 즉시 무장투쟁을 시작했을 것이고, 전쟁으로 국력이 소모된 영국이나 당시까지 미미한 세력만 구축했던 시온주의자들은 이를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역사의 최고 전문가인 여호수아 포라스도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니 번역가분들. 제발 이런 오류들을 고쳐주세요! 이 매거진 쓰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런 역사 왜곡 수준의 잘못된 번역을 바로 잡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