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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빈 Mar 13. 2024

해제| 제3장 - 팔레스타인을 발견한 유럽의 시온주의자

(파란색 글씨는 인용문입니다.)


각 장의 제목을 지을 때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내용에다 분량이 많다 보니 글을 읽으면서 '핵심'을 놓치지 않도록 제목에다 실마리를 넣어두기 위해서였습니다. 3장도 오랜 숙고 끝에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발견'한 '유럽'의 '시온주의자'


3장은 이 세 가지 핵심 단어를 풀어서 설명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주제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1) 발견하다.


무언가를 발견하다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흔히 쓰는,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게 역사로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1492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유럽인들은 열광했다. 단순히 새로운 대륙을 알게 되었다는 지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발견자가 땅의 주인이 된다는 식민주의 사상 때문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먼저 발견하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수많은 토착민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했고 비옥한 자연환경은 신이 기독교도를 위해 마련한 새로운 ‘약속의 땅’이라는 증거로 믿었다. 뒤따른 대량학살과 토착 문명의 파괴도 정원사가 잡초를 뽑는 일만큼이나 무심하게 기록되었다.


우리는 땅에 떨어진 어떤 물건을 '발견'해 주우면 그 물건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단, 원주인이 없다는 가정하에서 말이지요. 그런데 중세 이후 유럽인들은 이 중요한 전제를 왜곡해 버립니다. 오직 '유럽인'만이 무언가의 소유주가 될 수 있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유럽 지역의 땅들은 임자가 있지만, 유럽 밖의 모든 땅은 주인 없는 땅으로 간주했습니다. 그게 세계의 84%를 지배하게 되는 식민주의 사상의 근간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십자군 시기에 유럽의 관심을 받다가 잊히고 19세기에 '재발견'됩니다.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는 무슬림 국가인 오스만 제국이 약화되어 오늘내일하는 신세에다가, 증기선의 발명 등으로 중산층도 팔레스타인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수천 권의 여행기가 나오면서 사회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덕분이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스스로를 팔레스타인의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처럼 토착민의 존재는 지워버렸다. 팔레스타인에 관한 수많은 책에서, 심지어는 여행기에서도 아랍인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몇 안 되는 언급도 황야를 유랑하는 고대 시기의 베두인들로만 묘사하며 동방 세계는 변화하지 않는 후진적인 곳이라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형성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팔레스타인은 황폐하고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버려진 땅’으로 상상했다. 따라서 그들은 주인 없는 땅을 ‘발견’ 한 것이고 약속의 땅의 진정한 주인인 기독교도들이 땅을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2) 시온주의자


시온주의자는 19세기 말부터 등장한 유대인 민족주의자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여기서 '시온'은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성경식 표현입니다. 예루살렘 인근에 시온산이라는 실제 지명이 있긴 한데, 그보다는 그냥 예루살렘, 혹은 나아가 이스라엘 땅 전체를 뜻하는 상징어로 사용됩니다.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시온주의자는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운동입니다. 성경에서처럼 유대 민족의 이름을 드높이고, 그러한 국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3) 유럽


그런데 이 시온주의자들은 유럽의 문명과 정신을 숭상하고 그 속에서 살아온 유럽인들이었습니다. 실제로 기록을 남긴 초기 시온주의자들 대부분은 원래 스스로를 유대인이 아니라 유럽인이라고 믿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계속 유대인으로 부르고 차별을 하자 그에 대한 반향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유대 민족과 국가를 만들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토착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당연히 유럽적 사상에 따라 토착민은 땅의 주인이 없다고 간주하고 팔레스타인을 '버려진 땅'으로 선전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유럽인들로부터 ‘버려진 땅’이라는 관념을 이어받아 팔레스타인을 ‘민족의 땅’으로 새롭게 ‘발견’했고 유대인들의 이주를 조직한다. 분쟁의 씨앗이 심어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럼 이제 3장의 목차를 가볍게 한 번 살펴볼까요?


1절 : 팔레스타인에 내던져진 유럽의 문제

시기 : 1880-1890년대 중반

주제 : 시온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아랍인의 반발을 일으킨 이유

핵심 내용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시온주의를 촉발하는 과정

시온주의가 식민주의로 발전하는 과정

식민 활동의 어려움


2절 : 시온과 유대 문제의 관계

시기 : 1895-1906년

주제 : 유대 문제의 해결책을 팔레스타인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

핵심 내용

시온주의가 대중의 정치적 운동으로 발전하는 과정

아랍인과 오스만을 상대로 한 기만술

단기적인 해결책은 없다는 깨달음


3. 시온주의에 평화는 없었다.

시기 : 1906-1914년

주제 : 거세진 아랍인들의 저항과 이를 묵시한 시온주의자들

핵심 내용

아랍 문제에 대한 시온주의자들의 태도

아랍 언론의 반시온주의

아랍인과의 우호 협상




3장에서는 1880년대부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1914년까지 시온주의자들이 어떠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팔레스타인을 찾아오는지를 알아본다. 이는 친이스라엘과 친팔레스타인 학자들 간에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다. 친팔레스타인계는 시온주의자들이 다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을 식민 지배하기 위해 이주해 왔고 이것이 분쟁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친이스라엘계는 유럽의 박해를 피하고 민족의 부흥을 위한 평화로운 목적으로 고향으로 귀환한 것뿐이라며 반박한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지금부터 시온주의자들이 직접 남긴 기록과 행적을 들여다보면서 낱낱이 밝혀보자.


19세기말에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에 아랍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주해 와서 토착민을 조우하게 되고, 그리고 그 수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를 고민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유대인이 압도적인 다수가 되고 유대 문화가 지배적인 '유대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아랍인을 추방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필연적으로 다다르게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사악한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이 유럽 내에서도 상당히 형성된 무렵이었고 오랫동안 피지배층으로서 박해를 받아 온 유대인들은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난데없이 팔레스타인 땅에 가서 토착민을 몰아내고 유대 국가를 건국하자는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보다 본질적으로, 절대다수가 유대 민족이나 유대 국가라는 민족주의를 거부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 대중과의 간극을 좁히고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걸림돌만 되는 아랍인의 저항은 그저 감춰버렸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는 아랍인이 거의 살지 않고, 유대인의 식민화에 찬성하고, 유대인 이주자들과 평화롭게 지낸다고 거짓선전을 합니다. 이러한 선동이 분쟁이 생겨나고 또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주요한 원인이 됩니다.


저는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는데, 학부 시절에 읽은 수십 권의 정치학 도서들은 하나같이 분쟁이 자원 쟁탈이나 종교, 민족 등의 이념적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들더군요.


'아니, 내 이익, 혹은 국가의 이익이나 이념이 전쟁을 치를 만큼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그냥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남과 의견이 다르면 다른 대로 살면 되지 않나? 나만 이상한 건가?'


안타깝지만, 나이가 들면서 견문을 넓히다 보니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그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는 사실도 깨달았고요. 또한, 자기 이익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도덕적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고 나름의 정당화를 시도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간의 이러한 본성은 단순히 이익이 있다고 해서 전쟁과 같은 행위가 널리 지지받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국가나 집단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합리화'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공부하며 수많은 예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게 앞서 말한 대로 아랍인의 존재나 저항을 감추는 것이었지요. 이러한 노력은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는 시점까지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서, 그때까지도 미국 유대인 중에는 팔레스타인에 아랍인이 산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모릅니다. 물론,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나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도 절대 예외가 아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역사 왜곡은 특히나 치밀하고 집요한 편입니다. 3장의 결론에서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의 정치학 교수인 쉴로모 아비네가 2008년에 쓴 『헤르쯜의 비전(Herzl’s vision)』을 소개하며 이를 보여줍니다.

*헤르쯜은 시온주의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 국가의 선지자로 기려집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기존의 헤르쯜 전기들은 상세하지 못하고 헤르쯜이 “팔레스타인의 아랍 인구가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고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국가”를 추구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하며 이 책에서는 이런 면모를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 이런 공허한 주장이 이 책에서는 그럴싸해 보이는데, 왜냐면 이 시기에는 유대인의 이주에 반대하는 아랍 민족 운동이 없어서 아랍인들의 저항을 예상할 수 없었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아랍인들이 시온주의에 저항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떤 역사적 사실도 서술되지 않는다. 토착민이 반대하기 때문에 헌장을 얻은 후에 식민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헤르쯜식 시온주의의 요체도, 2차 시온주의자 대회에서 아랍인들과 식민촌의 무력 충돌 사례가 공식적으로 보고된 것도, (아랍 지도자) 유수프가 보낸 편지도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 7장을 제외하면 이 책 전체에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은 단 한 번만, 그조차도 간접적으로만 언급된다. 즉, 팔레스타인은 철저히 버려진 땅으로 그려진다.


제가 참고한 문헌 중에는 친이스라엘 서적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초기에 이런 책들을 많이 봐서 3장의 초안은 지금보다 시온주의를 두둔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계속 연구하다 보니 뭔가 뒤가 맞지 않는 사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쳐서 지금과 같이 아랍인의 저항을 보여주고, 시온주의자들이 어떻게 이를 감추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글을 완성했습니다.


KOICA에서 3년간 팔레스타인인들을 도왔던 저도 친이스라엘 서적을 읽고 현혹되는데, 유대인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지금도 많은 유대인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고 휘둘리는 건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토록 유대인을 세뇌시키려 하는 시온주의자들은 대체 무슨 목적에서 그러는 것일까요?


시온주의는 단순한 식민주의 사상이 아닙니다. 유대인을 끊임없이 박해해 온 기독교 유럽인들로부터 유대 민족을 영구적으로 구원할 해결책을 찾는 민족주의 운동입니다. 유대 국가를 가져야만 반유대주의를 막을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신념이었습니다. 이게 논리적으로 올바른지는 의문이 상당히 많이 들지만, 적어도 추구하는 목표가 선하다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대의를 위한 '작은 희생', 즉 토착민의 추방을 내부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었던 겁니다.


3장에서는 시온주의 사상의 핵심이 되는 서적들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제가 원문을 여러 번 읽고 심혈을 기울여 정리를 했고, 직접인용도 많이 했으니 대체 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유대 국가를 만들려고 했는지를 눈여겨 봐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론 번역서를 포함해도 국내에 출간된 어떤 서적도 이러한 시온주의 서적들을 제대로 다룬 게 없습니다. 이런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이스라엘을 비판한다면, 적어도 그 뿌리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지요. 그걸 빼놓으니 유대 편 아랍 편 이렇게 나눠서 서로 자기주장만 외치게 되지요. 물론, 시온주의가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가 있다는 이유로 잘못을 감춰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식민주의자로서 군림하려 한 시온주의자들은 대단히 비인도적이고 인종차별적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이전에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시온주의 운동은 19세기 동안 팔레스타인에 대한 ‘권리의 재주장’과 식민화에 전념한 많은 유럽인의 운동 중 하나에 불과했다.” 독일의 성전수호단도 아랍인은 안중에도 없이 팔레스타인 땅을 신이 기독교도에게 하사한 곳으로 여겼다. 비슷한 시기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식민촌을 만든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사학자 일란 파페(Ilan Pappe)는 “유럽인이 이 대륙들에 만든 식민촌들은 오직 유럽 열강의 전략적 이해와 정착민 자신들을 위하는 제국주의 공동체가 되었다. 백인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침투하는 시기에 유대인들은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고향’으로 ‘귀환’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즉, 시온주의자들은 전형적인 유럽인이었을 뿐 그들보다 특별히 더 나쁜 악당은 아니었다. 1914년에 유럽 국가들은 전 세계의 84%를 식민지나 보호령으로 만들어 통치하고 있었으니 비유럽인들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어땠는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유럽중심주의적 보편적 사고관을 이해하는 것은 분쟁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 사이에서 시온주의자들은 몇 없었지만, 그보다 넓은 집단, 즉 유럽 공동체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게 훗날 시온주의가 성공하는 핵심 배경이 됩니다. 이는 4-5장에서 천천히 보게 되실 거고, 다음 주부터는 3장 본문을 1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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