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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 블루 Mar 23. 2024

순간의 영원(6)

에스프레소와 위스키 같은 사이.



유독 마시는 걸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한국에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자리 잡기 전부터 커피와 술은 영혼의 음료였다고. 그리고 그런 날이 있다. 커피와 술을 동시에 마시고 싶은 날이. 회식이 끝나고 늦게 퇴근 한 날 일어난 오전 열 시에 왠지 모르게 술도 커피도 마시고 싶어 져서 어떤 걸 마셔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을 때 자주 가는 카페에 신메뉴로 에스프레소에 위스키가 들어가 있는 신메뉴가 새로 나왔다. 가끔 타이밍은 지나치게 좋을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모아두었던 돈이 바닥나서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해야 할 때 들어온 정직원 제의가 그랬고, 이를 테면 커피와 술을 동시에 마실 수가 없으니까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해서 집에 가서 위스키와 마시려던 오늘이 그랬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 편이었지만 가끔은 사람이 아니어도 첫눈에 반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조합들이 있다. 오늘의 에스프레소에 위스키를 넣은 단골 카페의 신메뉴 같은 것이 그랬다.


약간은 산미가 있는 에스프레소에 아이리시 위스키가 들어가 바닥아래 설탕과 섞이며 단맛과 신맛이 적절한 풍미가 있는 메뉴를 들이키며 따끈해지는 식도라던가, 위장이라던가. 그리고 목으로 넘길 때의 질감이라던가. 에스프레소의 용량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여운이 꽤나 짙은 편이다.


전 날의 어지러운 생각들이 한 모금으로 정리가 됐을 때 날씨는 봄날이었고 이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졌다.


가끔은 이런 날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은 연애에 관한 질문이다 연애라는 건 뭘까. 기간제 베프 같은 것일까? 언젠가 헤어짐이 있는 건 사실 어떤 관계이든 마찬가지 일 텐데 아깝다는 이유로 연애로 발전시키고 싶지 않은 관계도 있다. 친구, 혹은 친구 이상의 사람들은 의외로 존재했다. 너무나 가깝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싶어지고, 멀리하기에는 조금 아쉬워지는 에스프레소와 위스키 같은 사이.


마시지 않기에는 버겁고, 다 마시기에는 아쉬운 여운이 짙은 사람들.


삶에서 이런 사람들이 생길 때 대부분의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어쩌다 보니 아쉽게 보지 않게 된 사이도 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연락을 계속 이어가며 마라탕 2인분이 버거운 날 함께 만나는 친구도 생겼다. 가끔은 정리라는 게, 꼭 필요하지 않고 섞이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시계가 오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전과 오후 그리고 저녁과 새벽 틈새 끼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늘 어려운 일인 것 같고 이것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부턴가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았던 것 같지만 오늘부터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숙제로 아침에 일기를 적는 루틴을 추가했다. 이런 생각들이 흘러가버리면 너무 아까울 것 같고, 내가 되고 싶은 언젠가의 오늘에서 멀어지면 아쉬울 것 같으므로. 그리고 이제 인사를 해야겠지 어제와 오늘처럼 정리가 되지 않고 섞이며 목으로 넘어가는 생각을 닮은 한 잔이 맛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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