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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Jun 08. 2024

행복한 2등 상(賞)


어떤 지인이 여행 중에 급히 선물(膳物) 가게를 좀 들러야 한다고 해서 잠깐 동행하게 되었다. 그분은 이리저리 한참을 살펴보며 고르고 골라 최종 하나를 구매하기로 결정하고 아주 만족스러운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셨다.


필자는 그저 아, 가족분이나 친구, 동료들에게 줄 어떤 선물을 사셨구나 생각했다. 그냥 가만히 있기 좀 멋쩍어, "선물하시려나 봐요?"라고 하며 지나가는 말처럼 짧게 물었다. 그분은, "아뇨,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에요."라고 다시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하셨다.


그 당시 필자는 그 말이 아주 신선하게 들렸던 것 같다. 왜냐하면 필자는 어디 낯선 도시로 여행 가서 (다른 사람 줄 선물은 샀어도)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을 스스로 사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좀 뜬금없이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연말이면 으레 TV방송사마다 초저녁부터 밤늦게까지 각종 연말 시상식으로 도배하다시피 하니 시청자들로서는 (일부러 TV를 끄지 않는다면) 별 다른 선택의 여지가 많이 없어 이런저런 시상식들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다.


각 시상(施賞) 분야별 수상(受賞) 후보 소개와 발표, 인사와 눈물의 수상 소감들이 감사한 분들 이름 호명과 함께 길게 이어지고 축하의 박수와 "다시 한번 큰 박수"가 또 계속 이어진다.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당사자라면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명예로운 상이고 수상하는 개개인마다 그동안의 노력이 어떤 결실로 인정(認定) 받는 일이므로 축하받아야 할 자랑스러운 영광의 수상이다. 또 애정을 갖고 지켜보던 시청자로서 혹은 어떤 연예인의 열렬한 팬으로서 해당 수상 과정을 흐뭇하게 지켜봤을 수도 있다.(최근 수상 소감이 너무 길어지자 1분 이내로 시간에 제한을 두는 경우도 생겨났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연말 시상식이 아니어도 내가 어떤 시상식에 초대받고 또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만의 노력과 그 정성을 자신 스스로에게 시상(施賞)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물론 상(賞)이란 누군가가 만든 뛰어난 공적과 업적, 그 성과를 칭송하기 위해, 그러니까 잘한 일이나 훌륭한 일을 칭찬하기 위하여 “남”이 (단체나 조직이) 인정(認定) 해 주는 것이라는 기본 테두리가 있지만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존중해야 할 자기가 스스로를 인정하고 상을 주는 것이야말로 여느 다른 인정[상]보다 값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신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장 비참한 삶 속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살아온 지난 수십 년 동안 말 못 할 우여곡절도 많았고 회한(悔恨)도 많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잘 버텨내고 나름대로는 잘 살아왔노라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토닥이며 스스로에게 "선물"하듯 스스로에게 멋진 "연말 00상"을 준비하고 시상해 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 남은 건 꽃다발 하나와 수상 소감을 준비하는 것뿐이다. 나 역시 고마운 사람들, 감사한 분들의 이름들을 일일이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많이 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아무도 나의 수상 소감이 길다고 해서 제한된 시간을 지켜달라며 재촉하지는 않으리라.




여담이지만 필자는 학창 시절 백일장에서 한때 운 좋게 장원(壯元)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또 다른 글짓기 대회에서는 2등을 하게 되었다. 전교학생들이 다 모인 강당에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2등 상(賞)을 받는 데 그날은 그리 기쁘지가 않았다. 머릿속엔 온통 왜 1등을 받지 못했지, 좀 더 신경 써서 썼더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2등이 얼마나 값지고 엄청난 상(賞)인 데라는 생각에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꼭 어떤 수상을 하지 못해도 괜찮다. 필자가 다른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은메달’의 실망과 ‘동메달’의 기쁨처럼 우리는 1등만 기억하는 000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해 왔기 때문에 2등이 주는 기쁨을 만끽 못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2등 상에 만족하자고 해서 1등 못한 자신을 자기합리화하거나 주관적으로 정당화시키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2등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잊지 말자라는 뜻이다. 아무리 1등만 기억하는 000 세상이라지만 우리 스스로가 그 2등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3등과 4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수십 년 전부터 자주 들은 말이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다. 혹시 MZ세대들이 들으면 이런 말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학창 시절에도 이미 이런 말들은 많이 들었고 또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우리의 학교와 사회는 늘 성적순으로만 사람들을 줄 세우고 구분시켜 왔다. 마치 진짜로 "행복이 성적순인 것"처럼 말이다.




필자도 살아오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일들도 좀 있었다.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아 갈등과 방황의 시간도 있었고 열심히 준비한 00 시험에 떨어져 상심한 적도 있었고 이런저런 일로 속앓이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여기까지 나름대로 잘 견디고 잘 버티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인생은 꼭 1등이 아니어도 2등 상을 받더라도, 아니 그냥 수상 후보로 노미(nominated)만 되어도 만족(滿足)하면서 또 자족(自足)하면서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려 한다.


태어나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은 나의 노력과 의지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대부분은 내 주위의 사람들, 내 가족들과 지인들, 동료들 덕분이다. 그분들에게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비록 1등 만을 위한 무대에는 못 올라가도 그래서 남들 앞에 서서 준비한 수상 소감을 말하진 못하게 되더라도 "행복한 2등 상" 수상에 스스로 큰 박수를 치며 스스로에게 격려와 칭찬을 해주고 싶다.


스스로에게 상패와 상장도 만들어주고 그와 함께 부상(副賞)으로 멋진 상품을 구매해서 "선물"을 하고 싶다. 비록 손에 가진 건 별로 없지만 그동안 애썼다고, 정말 고생 많았다고, 이만하면 그럭저럭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이런 '자화자찬'(自畵自讚)의 말을 이렇게 "뻔뻔하게" 스스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좀 살만하다는 말이지 않느냐며 되물어도 할 말은 없다. (글쎄, 그렇게 되묻는다면 그 말도 맞다고 인정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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