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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용 Nov 22. 2024

3화: 산신각의 계시

SF소설 《무의식、통제사회》

청운동의 밤은 달랐다. 뉴서울의 푸른빛 네온이 닿지 않는 곳. 좁은 골목길 끝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방울소리가 하진의 귓가를 적셨다. 이곳에선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마치 도시의 무의식이 잠든 듯한, 그러나 실은 더욱 깊이 깨어있는 듯한 고요함이 감돌았다.

산신각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오르는 동안 하진의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센서가 보내는 미세한 진동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그의 의식을 흔들고 있었다. 계단 끝에서 만난 진해월의 눈빛은 달빛처럼 차갑고 깊었다. 그녀의 주름진 손가락이 하진의 이마를 가리켰다.


"네 안에 갇힌 것이 보이는구나. 마치 새장 속의 새처럼 퍼덕이며…."


무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진의 시야가 흐려졌다. 귓속으로 쏟아지는 소리들. 누군가의 속삭임, 울음소리, 그리고 서윤희의 목소리가 뒤엉켰다.


_강화도의 햇살이 차갑다. 공명석에서 발견된 문양들이 맥박처럼 움직인다. 서윤희가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다. "이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오래된 거예요. 그들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처음부터..."_


환영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진은 차가운 땀을 흘리며 정신을 차렸다. 산신각 안은 향 냄새로 가득했다. 진해월이 낡은 서랍에서 바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1962년, 내 스승님이 남기신 거야. 강화도에서 무당들이 본 것과 똑같은 빛이 최근에 다시 나타났지. 그들이 돌아온 거야."


사진 속에는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진 돌이 있었다. 하진은 숨을 멈췄다. 그것은 뉴로맥스의 기밀문서에서 본 공명석과 정확히 일치했다.


"무의식은 강물과 같은 것이야. 정부가 만든 댐으로 막을 수 있다 생각했겠지. 하지만 물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찾지. 네 안에 있는 그것도…."


진해월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진의 의식이 다시 흐려졌다. 이번에는 더 선명한 기억이 밀려왔다.


_서윤희가 급하게 무언가를 적고 있다. "나즈라... 그들은 우리를... 실험..." 군인들이 연구실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서윤희는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하진 씨, 당신이라면... 진실을..."_


정신이 돌아왔을 때, 하진의 손에는 낡은 부적이 쥐어져 있었다.


"이건 네 어머니가 남긴 거야. 그날 밤, 서윤희와 함께…."


진해월의 말에 하진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하지만 부적에 적힌 날짜는 5년 전이었다.


밤하늘에서 별빛이 희미하게 깜박였다. 마치 누군가가 저 위에서 지금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하진은 자신의 모든 기억이, 모든 현실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관자놀이의 센서가 미친 듯이 진동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무의미했다. 그의 의식은 이미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마치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천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이제 선택해야 해." 진해월이 말했다. "더 깊이 알고 싶은가, 아니면..."


하진은 대답 대신 부적을 꽉 쥐었다. 그의 눈앞에서 세상이 다시 한번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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