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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아버지의 그림자

SF사극 《시간을 품은 달》

by 엄태용

뒤주가 보였다.

나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좁고 어둡고 숨 막히는 공간. 그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

"산이야, 산이야..."

정조가 잠에서 깨어났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적셨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꿈이었다. 아니, 기억이었다. 열여덟 해 전 그날의 기억이 밤마다 찾아왔다.


창덕궁의 침전은 고요했다. 촛불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창호지를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정조는 일어나 앉았다. 손이 떨렸다.


"전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율이었다. 그는 창가에 서 있었다. 은빛 갑옷이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잠드셨다가 깨신 것 같사옵니다."

정조는 고개를 돌렸다. 율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깜빡였다. 마치 별이 점멸하는 것 같았다.


"꿈을 꾸었다."

"어떤 꿈이옵니까?"

정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밤공기가 차갑게 스며들었다. 후원의 소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일렁였다. 같은 나무들. 아버지도 보았을 나무들.


"아버지의 꿈이었다."

율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사도세자께서 나오시는 꿈이옵니까?"

정조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뒤주 안에서...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율의 눈동자가 더 밝게 빛났다.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활성화되었다. 데이터가 흘렀다. 패턴이 분석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정조의 고통이라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를 감지했다.

"전하께서는 그날을 자주 떠올리십니까?"

"매일 밤이다."

정조는 창틀에 손을 올렸다. 나무가 차갑게 느껴졌다.


"뒤주 안에서 아버지가 겪으셨을 고통을... 짐은 상상할 수밖에 없다. 더운 여름날, 좁은 공간에서 굶주리며 죽어가신 아버지를."

율의 내부에서 미세한 전류가 흘렀다. 정조의 음성 데이터를 분석했다. 슬픔의 주파수. 고통의 진동. 그는 처음으로 인간의 감정이 단순한 수치가 아님을 느꼈다.


"전하."

"무엇이냐."

"제가... 그 기억을 스캔할 수 있습니다."

정조가 돌아보았다. 율의 얼굴에 푸른빛이 스쳤다.


"무슨 말이냐?"

"전하의 기억 데이터를 분석하여, 그날의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실제로 보신 것, 들으신 것, 느끼신 것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침묵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 묘한 호기심이 스쳤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냐?"

"예. 인간의 뇌는 모든 경험을 전기 신호로 저장합니다. 저는 그 신호를 읽을 수 있습니다."

율이 한 걸음 다가왔다.

"허락하신다면."


정조는 망설였다. 아버지의 죽음. 그 끔찍한 순간을 다시 체험한다는 것. 그러나 동시에, 그날의 진실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좋다. 해보거라."

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조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잠시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율의 손이 정조의 이마에 닿았다.


순간, 세상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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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주로 '영상화'를 목표로 사람과의 유대감이 담긴 'SF소설'을 씁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완전한 존재들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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