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집 근처 치과 병원으로 곧장 향했다.
다행히도 그날은 야간진료가 있는 날이라, 운 좋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의 말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발치는 무조건 해야 하고요, 아랫니도 상태가 좋지 않아 오늘 바로 발치하고 뼈 이식까지 진행해야 합니다.”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빠의 발치는 단순히 이를 뽑는 수준이 아니었다. 과거에 했던 임플란트를 제거해야 하는 일이기에 훨씬 더 고되고 아픈 과정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부디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간절히 부탁드렸다.
세상에서 가장 앉기 싫은 의자가 치과 의자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오빠는 지금 얼마나 떨리고 두려울까. 이 문제는 하루이틀 생긴 것도 아닐 텐데, 제주 여행을 망칠까 봐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픔을 참고 있었을 오빠를 생각하니 속이 울컥했다.
“나, 악처 되기 싫어…”
그날도 오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치과에서 진료를 마치고 나온 오빠의 오른쪽 볼은 왕사탕을 문 것처럼 볼록하게 부어 있었다.
딱 봐도 엄청 아파 보였지만, 오빠는 끝내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진료실에서 나오는 길, 나는 괜스레 짜증이 났다.
“왜 말을 안 해? 왜 혼자서만 참고 있어?”
마치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내온 나에게 죄책감이라도 느끼게 하려는 듯한 그 조용함이 얄미웠다.
그러면서도 착한 오빠에게 또 미안했다.
내가 언제든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내가 울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이유를 묻던 그 오빠였으니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남편이 되어도, 아버지가 되어도
내겐 그냥… 오빠였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러다간 나, 악처 소리 듣겠어…
자기가 무슨 소크라테스도 아니면서… 꼭 그렇게까지 참아야 했어?
“나이 오십에 틀니 끼고 싶어서 그래?”
”여보, 근데 병원비가 뼈이식부터 임플란트까지 비용이 꽤 나온데 대략 천만 원 정도….. “
그 순간, 나는 속으로 ‘헉’ 했지만 표정관리를 했다.
비싸긴 했다. 그런데, 그동안 나 몰래 얼마나 참고 있었을까 싶어 차마 “비싸다”는 말도 못 꺼냈다.
“있잖아, 오빠… 이거 그냥 마지막 임플란트라고 생각하자.
앞으로 치과 올 일 없게, 마음 편하게 하자고. 비싸도 괜찮아.
나 그렇게 남편 바가지 긁는 사람 아니거든?”
오빠는 그제야 입가에 살짝 웃음을 지었다.
왼쪽은 웃고, 오른쪽은 부어서 못 웃고.
반쪽짜리 미소였지만 내겐 그 어떤 미소보다 따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이 사람은 왜 늘 이렇게 혼자 아프고, 혼자 참고, 혼자 해결하려고 할까…
괜히 나 때문에, 아내로서 내가 너무 무심했나…’
”한마디만 할게 다음엔 꼭 먼저 말해줘.
혼자 아프지 말고, 같이 아프자.
그래야 악처 소리 안 듣고 오래 살지. “ 사람해 ㅎㅎ
오빠는 신중한 사람이다. 나는 급하다.
우리는 너무도 달랐다.
처음엔 그 다름이 매력 같았다.
나와는 다른 속도로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묵직하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차이는 때때로 엇박자가 되어 우리를 힘들게 했다.
나는 조급했고, 그는 조용히 기다렸다.
나는 토라졌고, 그는 천천히 다가왔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도 분명 힘들었을 텐데,
내색 한번 하지 않았던 그 마음이 미안하고, 참 고맙다.
우리는 다르지만, 다름 속에서도 같은 방향을 보려 애썼던 두 사람이다.
어쩌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다름을 견디는 일.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
그리고 결국, 서로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는 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함께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