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차원 그녀 May 14. 2024

교장선생님은 완내스

그렇게 다정하고 젠틀하던 분이 한순간에 변했어요


 올 3월 새롭게 부임해 오신 우리 교장선생님은 내 교직 경력 만났던 교장선생님 중 탑으로 꼽을 만큼 멋진 분이다. 3월 4일 입학식과 시업식을 했던 강당 단상에서 교장선생님은 내 마음에 쏙 드는 짧고 인상적인 인사 말씀을 해 주셨다. 아이들에게 3가지 부탁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것은 내가 지금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우려먹는 단골 멘트이다.       


첫째, 주인과 손님은 다르다. 우리 학교의 주인은 학생 여러분입니다. 주인의 마음으로 생활해 주세요.

둘째,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 여러분은 1학년 때부터 충분히 안전교육을 받았죠? 실천하는 것은 여러분 몫입니다.

셋째, 다른 사람(친구)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아요.    

  

진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훈화 말씀에 감동한 나는 교실에 돌아오자마자 메모를 남겼다. 그리고 혼자 추측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분명 대단한 독서가일 거라고. 하지만 아직 확인은 못했다. 그 이후 워낙 말수가 없는 교장 선생님 덕분에 친해질 기회는 없었지만, 물론 나도 낯을 상당히 가리는 편이라 가서 들이대는 스타일도 아니긴 하다. 부임 이후 교장 선생님은 교장실에 앉아 있기보다는 학교 곳곳을 누비며 학교 살림을 살뜰히 챙겨주셨다.      


 바쁜 3월 교실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똑똑 노크를 하셨다. 깜짝 놀라 나갔더니 문손잡이를 교체해 주시겠단다. 교실 앞뒤로 문손잡이가 문 색상과 어울리지 않는 알루미늄 손잡이였다. 그게 마음에 쓰였던 교장선생님은 직접 아는 지인에게 손잡이를 구입하시고 개인 드릴까지 들고 오셔서 교실마다 돌며 손잡이 교체 작업을 진행하셨다. 그의 세심함과 눈썰미에 또 한 번 감동했다.      

봄이 되자 화단의 나무에 새순이 올라오고 온갖 풀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가끔 학교 뒤뜰에서 뱀이 나오기도 한다. 나무 밑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가지치기를 하는 사람이 있길래 당연 행정실 L 주무관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분은 교장선생님이셨다. 교장선생님 덕분에 화단에 나무들은 미용실 다녀온 손님처럼 깔끔해졌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교장선생님이 L 주무관님보다 일을 더 잘하시는 것 같다.     

 

하루는 교장선생님이 L 주무관님과 함께 2층 남자 화장실에 고장 난 무언가를 수리하러 오셨다. 우리 교실 바로 옆이라 문을 열어 두었더니 두 분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 아이고, 수고했어요. 오늘 우리가 고쳤네요. 기사 불렀으면 못해도 3~4만 원 돈 들었을 건데.”

“ 네, 교장 선생님. 이제 점심시간인데 식사하러 내려가시지요?”

“ 요거, 남은 거 빨리 마무리하고 가요.”

시어머니 같은 교장선생님을 떨쳐내고자 하는 L 주무관님의 필사적인 노력, 배짱이 같은 L 주무관님을 다독거리는 교장선생님의 티키타카에 나 혼자 배꼽 잡고 웃었다. 교장선생님은 행정실장님보다 L 주무관님 일을 더 많이 챙겨주시는 것 같다. 덕분에 L 주무관님의 일머리가 1 상승했습니다.      


 그 이외에도 교장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장 바쁘신 분이다. 운동장에 낡아빠진 축구 그물망을 발견하고 교체를 지시하셨고, 복도에 뛰어다니는 아이들 질서 지도며, 운동장과 특별실을 돌며 아이들이 흘리고 간 자질구레한 분실물들을 살뜰히 챙겨주신다. 그래서 교무부장이 분실물 사진을 단톡방에 올릴 때마다 ‘아! 오늘도 교장선생님 열일하셨네.’ 이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달콤하고 젠틀하던 교장선생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은 지난주 수요일이었다. 그날은 제43회 스승의 날 기념 교직원 배구 대회가 우리 학교 체육관에서 열렸다. 총 9개 학교가 참가를 했는데 우리 학교는 C조이며, 2개의 학교가 그날 우리 학교에 경기를 하러 왔다. 다른 A, B조도 당일 지정한 학교에서 대회를 하고 조 1위만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각 2위 중 제일 잘한 한 개의 학교도 결승에 진출할 기회를 얻는다. 3주 전쯤 체육부장이 조 추첨을 하고 온 날 단톡방이 만들어지고, 갑자기 나는 후보선수가 되었다. 학교당 남자 6명, 여자 4명으로 참가를 해야 하는데 서브만 넘길 줄 아는 내가 무슨 엔트리라니! 농담인 줄 알았다. 그리고 경기를 위해 우리는 2번의 친선 경기를 치렀다.     


 교장선생님은 정년이 2년 남으셨는데 연세답지 않게 운동을 잘하신다. 키도 크시고 1열에서 공격수로 스파이크를 때리시는 분이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지? 우리가 우승 후보인가?’

근 3년 이래 올해가 전력이 가장 우수하다는 체육부장의 말에 뭔가 역사가 이루어지나 기대를 했다. 그런데 경기를 며칠 앞두고 나는 슬픈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와 경기하는 두 학교가 작년 우승, 준우승 학교이며, 올해도 출전선수가 장난 아니라는 것을. 망! 했! 다!      


당일 4시에 경기는 시작이지만 우리는 3시부터 체육관에 가서 몸을 풀었다. 작년 1등 팀 **학교는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로 단체 티까지 맞춰 입고 와 우리의 기를 죽였다. 작년 2등 팀 @@학교는 섬에 있는 학교라 1시간가량 배를 타고 나왔다고 했다. 하! 뭐 배구한다고 이런 고생까지. 역시 그들은 우리와 다르군.    


  

첫 번째 경기는 우리 학교와 **학교였다. 모두의 예상처럼 우리는 큰 점수 차로 졌다. 3세트를 하는데 2세트를 우리가 다 져서 3번째 세트는 해 보지도 못했다. 진짜 저 7번 선수 살벌하게 잘하네.    

 

두 번째 경기는 **학교와 @@학교였다. 우리 학교처럼 큰 점수 차는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내리 2세트를 **학교가 가져갔다.  와 저 7번 스카우트하고 싶다.     


두 번째 경기가 끝나고 마지막은 우리 학교와 @@학교였다. 우리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고 1세트를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그리고 인성 부장은 종아리 근육에 이상이 생겨서 결국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병원에 간 인성 부장의 병명은 종아리 근육 파열이었다. 인성 부장의 빈자리를 채우러 들어온 교무부장은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으쌰으쌰 했다. 1세트를 이기고 나서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학교는 작년 준우승 팀답게 끝까지 우리를 쫒았고, 체력이 떨어진 우리는 실수를 연발했다. 승부욕이 올라온 교장 선생님이 계속 코치를 한다. 계속 서서 기다리지 말고 수비를 하라고 채근하신다. 무섭게 날아오는 공을 받을 자신이 없어서 나는 몸을 피했다. 교장선생님이 한 마디 하신다. 

“공 계속 피하면 선수 교체할 거야.”

“네, 죄송합니다.”

눈물이 찔끔 날만큼 서운해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사실 그날 교체할 여자 후보 선수가 없었다. 진심 나가고 싶은 것은 나였다. 아슬아슬하게 2세트는 우리가 3점 차로 졌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3세트는 15점으로 줄였다. 하! 빨리 끝내고 싶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며 손을 모아 구호를 외쳤다. 

“이기자 이기자 WP.”

“왜, 구호를 한 가지로 안 하고 계속 바꾸고 그래?”

이제 별것이 다 교장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모양이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내 경기를 했지만 우리는 아쉽게 15:10으로 졌다. 분명 처음에는 즐겁게 하자고 한 경기였는데 다들 출혈이 너무 심한 경기였다. 그리고 나는 오늘 처음으로 성질 난 교장선생님의 모습을 마주했다. 

아! 우리 교장선생님 체육과였지!   

차를 몰고 집에 오면서 마음이 심란했다. 이런 여름방학에 배구 연수라도 가야 하나. 쩝. 다음날 아침 교장선생님은 단톡방에 이런 멘트를 올려주셨다.  

행사 준비하느라 고생한 체육부장, 교무부장, 그리고 선수 여러분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경기결과는 그렇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팀 좀 쎄긴 했어요.^  힘찬 응원해 주신 교직원께도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오늘 체육부장이 복도에서 흘려준 말이 있다. 그날 앞 라인에 교장선생님과 나란히 섰던 그는 교장선생님의 작전 지시를 듣는다고 귀에서 피가 날뻔했다고. 그래서 내리 4일을 술을 퍼마시다 지갑을 분실하였다는.    

       

*이 글은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교장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서 쓴 글로 이 글을 읽고 내가 아는 그 학교인가? 이런 추리는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교장선생님 정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내년에 학교 무조건 옮길 거라고 호언장담했는데 교장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못 갈 것 같습니다. 진심이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반티에 담긴 추억 한 스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