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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Jun 12. 2024

거지 같은 주차장 때문에

아침부터 남편이랑 싸웠다.

3년 전에 이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아파트의 최대 문제점 심각한 주차난. 평일 저녁 8시만 넘어도 주차 자리를 찾아볼 수 없어서 아파트 주변 도로에 주차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으며 주말에는 5시만 넘어가도 거의 만차다.      


밤에 이중 주차한 차는 다음날 정오까지는 무조건 이동시켜서 주차해야 한다. 아니면 주차위반 스티커가 발부된다. 토요일 오전 9시쯤 일을 보려고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다. 내 앞에 그랜저 신형이 가로막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서 밀었다. 앞에서도 밀어보고 뒤에서도 밀어보았다. 안 움직였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차량에 있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죄송한데 차 좀 빼주세요. 제가 아무리 밀어도 안 움직여요.”

“기어 중립으로 해 놓고 주차한 거 같은데요.”

“근데, 아무리 밀어도 안 됩니다.”

5분 만에 내려온 아저씨는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갸웃했고, 차는 기어 중립 상태가 맞았다. 그냥 내가 차를 못 민 것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힘이 없어서. 차마 이 말은 못했는데 아저씨의 눈초리는 따가웠다.    

  

그런데 이번 주는 이 주차난이 몇 배로 심각하다. 지하주차장 하자보수 도색 작업 마무리 단계라서 군데 군데 주차금지 종이와 라인이 설치되는 바람에 안 그래도 불편한 주차장이 2배는 더 불편해졌다.      


어제 퇴근 후 겨우 빈자리를 찾아서 주차했고, 분명 아침이면 내 차 앞에 이중 주차된 차가 있을 거라 확신이 들었다. 아침 6시 50분 출근 준비 완료. 야근하고 밤늦게 들어온 남편을 끌고 내려가기 미안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나는 차를 밀 힘이 없다. 지하로 내려갔더니 이중 주차된 차들이 한 대도 빠져있지 않았다. 이중 주차 라인을 반이나 물고 주차한 차량까지 있어서 내 차를 빼기 위해서 총 4대의 차를 밀어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밖에 주차하는 건데 망했다.

①구역에 있는 차 2대를 밀었다. 남편이 뒤에서 밀고 나는 앞차랑 부딪치지 않게 간격을 봐주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②구역의 차를 2대나 더 밀어야 했다. 남편은 계속 나보고 차를 타서 시동 걸고 갈 준비를 하라고 채근했다. 그런데 걱정이 많은 나는 남편이 미덥지 못하다. 혹시나 힘 조절을 못해서 이중 주차 차량이 박치기할까 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빨리 타라! 가야 될 거 아이가?”

“부딪친다고 부딪친다고 살살 밀어라!”

“내 알아서 한다. 빨리 타라고!”

“앞에 앞에 차 붙는다.”

“차 타라! 저 차도 나가려고 시동건다이가.”

순식간에 목소리는 커졌고, 반대편 차량 아저씨는 우리가 싸우는 줄 알고 쳐다봤다. 이건 뭐 싸운 거냐고 물으면 싸운 건 아닌데 둘 다 화는 났다. 남편이 ②구역의 차를 앞으로 밀어준 덕분에 나는 무사히 차를 빼서 주차장에서 탈출했다. 휴~ 아침부터 지친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하나도 귀에 안들린다. 또 생각이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아! 출근하기 싫다. 아침마다 차 빼는 거 너무 힘들다. 신용 대출도 다 갚았는데 빨리 대출을 알아봐야겠다. 그래서 주차장 넓은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겠다. 대출이 있으면 사표도 못 쓰겠지. 요즘 빚이 없으니 일할 맛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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