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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성 Oct 17. 2023

자발적 자유2_열두 번째이야기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12


보성이 간절한 눈빛으로 진순을 쳐다보다가 나가려고 한다.  

   

진  순          나는…… 나는 여기서 평생 살다 늙어 죽으나, 나가다 잡혀서 죽으나 상관없는 사람일세.


보성이 진순을 본다.   

  

진  순          그래서 굳이 다른 사람 손에 피 묻히는 짓까지 하면서 나갈 생각따위 는 안 하네. 

보  성          그럼 그 종이는……

진  순          하지만 자네 같은 젊은 사람들은 여기서 평생을 썩어 지내기 인생이 억울하다는 생각 안 드나?

                  뭔가 확실한 방법만 있다면. 충동적으로 어설프게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확실한 방

                  법을 가지고 하는 것이라면 시도해 볼 생각 있나?

보  성          그런 희망 없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됐어요. 아시잖아요? 전에 그 사람들도 지금 형님이 말씀하

                  신 거랑 똑같이 말했다구요.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은 겪고 싶지 않아요. 

진  순          그 사람들과는 달라. 그들은 철저하게 계산하지 못했어. 

보  성          아뇨. 방법은 없어요. 

진  순          방법이 없을 리가 없어. 반드시 빈틈이 있을 거라고.

보  성          형님, 정신 차리세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지금 수찬 형님때문에도 불안해 죽겠는데.   

  

진순이 벌떡 일어나 방안을 둘러보더니 어느 공간으로 이동한다.      


진  순          이쪽으로.      


영문을 모르는 보성이 진순이 있는 쪽으로 간다.

      

진  순          (종이를 펼쳐 보이며) 이거 보게. 이 집안에 설치된 CCTV 위치야. 200개가 넘네. 아마도 더 있

                  겠지. 수찬이 그 친구가 이걸 내게 주고 갔네. 뭔가 치밀하게 계획하고 있는 것 같네. 

보  성          수찬 형님이 얼마 전에 저한테도 비슷한 얘길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CCTV 위치만으로 뭘 어쩌

                  자고요?

진  순          빈틈을 찾아보자는 거지. 나도 절대 안 된다고 했네. 하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살면

                  서 단 한 번도 용기 있게 살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세상을 탓하고, 남들을 탓하고, 자신을 탓

                  하면서 비겁하게 도망치고 숨으려고만 했었지.   

보  성          형님, 이건 용기가 아니라 목숨을 건 도박이에요.

진  순          사고로 다리를 잃을 뻔했을 때 난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산으로 들어갔네. 세상

                  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아니었어. 세상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내가 꼭꼭 숨어 버

                  린 거야. 나 혼자 살아 보겠다고 가족도 등진 채 말이지. 그렇게 겁쟁이처럼 숨어 살다가 다리를

                  고칠 수 있다는 말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이곳에 왔네. 속았다는 걸 알았지만, 어차피 아무런 희

                  망도 보이지 않는 인생 어디서 죽든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네. 하지만 여기서 평

                  생 살다 죽는다면 나는 과연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어차피 한번 죽을 인생이라면 대단

                  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고 미안해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하잖아.  

보  성          ……

진  순          자네 같은 젊은이들을 위한 거네. 내가 도울 걸세. 나는 여기서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아

                  니, 그래. 나도 나가고 싶네. 이 감옥 아닌 감옥에서 자유를 위장한 가식적인 평온에 숨이 막혀

                  죽느니 차라리 나가고 싶다고. 

보  성          하지만……

진  순          가족이 보고 싶어. 그동안 내 마음의 집착을 없애기 위해 집 주변을 살피면서 이곳을 탈출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스스로 확인하고 있었네. 하지만 확실한 방법만 있다면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진순과 보성이 마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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