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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의 하루 Oct 20. 2023

60대 요가티처를 만나다, 기대하지 마!

베트남의 모든 정보는 페이스북에 있다. 아무리 네이버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네이버는 페북이고, 카톡은 잘로이다. 대부분의 외국인은 페이스북으로 검색하고 와츠앱이나 메신저로 소통한다. 일본인들은  라인으로 소통한다. 내 폰에는 카톡, 잘로, 와츠앱, 메신저, 라인이 모두 깔려있다.



네이버에 '하노이 요가'를 검색해 본다. ’ 제니스‘라는 이름의  요가 스튜디오가 뜬다. 페이북에 다시 검색하니 사진과 시간표가 나오고 집 근처에 있는 것 같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다시 한번 체크한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안쪽에 위치한 거 같다. 혼자서라도 가보려는 참에 HIWC(Hanoi International women's club)에서 알게 된 한국분이 다니고 있다고 한다.



본인은 한국에서도 요가코스를 수료했었는데 추천하는 곳이라며 길 찾기 어려우니 같이 가주겠다고 한다. 이미 몇 전부터 하노이에 살고 있던 펜시한 그녀는 귀여운 전기바이크를 타고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평생 처음 바이크의 뒷자리에서 긴장한 자세로 앉아서 제니스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뒷골목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고, 1층엔 비건레스토랑 2층엔 리셉션과 대형 스튜디오 1개, 소규모 룸 2개가 딸린 아담한 곳이었다. 새 건물은 아니지만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다.  요가매트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고, 화장실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레몬그라스 에센셜오일향이 은은하다.  세면대에는 손 닦는 작은 수건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스튜디오의 커다란 창 밖으로는 초록초록한 나무들이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다.



한눈에 맘에 쏙 든다. 유럽에서 오신 분이 오너이자 메인 티처라고 하던데 역시.  



여기서 나는 요가를 하게 되겠구나.


직감으로 알 수 있다.

나이 들어갈수록 보자마자 알 수 있는 게 많아진다.   



떨리는 첫 수업.


요가 수업도 맘에 쏙 들었으면 좋겠지만 기대를 너무 하지 말자.



지난 몇 개월간 베트남에 살면서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뭔가 너무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유명한 수제맥주집이 있다는데 가볼까? 유럽 사람이 하는 에스프레소 맛집이 있다는데 가볼까 해서 가보면 어딜 가도 한국이 훨씬 맛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고 지나가다 우연히 갔던 곳 중에는 의외로 좋네라는 생각이 든 곳이 많았다.



기대하지 마.



외국인이 대부분이다.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요가매트를 펴고 블록과 벨트를 챙긴다. 음, 저건 뭐지. 요가하는데 다 필요한 것인가. 게다가 접이식 의자까지. 번거롭다. 요가는 나와 매트만 있으면 되는 심플한 수련인데.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따라 물건을 하나둘씩 챙긴다. 커다란 쿠션 모양의 볼스터까지 챙긴다. 거기다가 담요까지. 뭐 이런 수업이 다 있지.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세상에. 나이가 엄청 많아 보인다. 선생님은 나를 비롯한 수업에 처음 참여한 사람들에게 본인을 '윌리'라고 소개하셨다. 한국에서 요가를 할 때는 거의 젊은 20-30대 선생님들이거나, 많아야 40대 인 선생님들이었는데, 실망한다.



얼마나 선생님 구하기가 어려우면  60대 선생님이 들어오실까. 역시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어.



명상과 함께 수업이 시작되고, 평생 이런 특이한 요가 수업은 처음이었다. 요가매트의  한쪽을 벽면에 붙이고 다른 한쪽은 룸의 중앙을 향하도록 놓아, 사각형 스튜디오 안의 모든 사람들이 거의 서로 마주 보는 형태이다.



선생님은 한 동작 씩 시범을 보여주고, 수련생들이 그 자세를 따라 할 때 선생님이 하나하나 체크를 해 주신다. 어떤 자세는 블록을 이용하여 몸의 균형을 맞추고, 접이식 의자를 펴고 잡거나 앉거나 기대거나 하면서 몸의 발란스를 맞춘다. 벨트와 담요도 동작을 무리해서 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최적의 상태로 자세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놀랍다.



처음엔 이것저것 챙겨야 하고, 선생님 설명을 듣는 동안은 가만히 서 있어야 해서 한국에서 하던 흐름이 계속 이어지는 빈야사가 그리웠다.  



설명 들으려고 온 게 아니고  운동하러 온 건데.




그런데 수업이 진행될수록 그동안 동작을 할 때 긴가민가 했던 의문점들이 하난하나 풀리기 시작했다. 벽을 이용하여 트리코나사나 삼각 자세를 할 때는 이 자세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건데 내가 그동안 잘 못해 왔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리고 수강생들 중에는 60대의 외국인 남녀들이 여럿 있었는데, 윌리 선생님의 친구이자 요가 수련생이었다.



두 가지의 놀라움을 안고 수업은 끝났다.



첫 번째, 이런저런 도구를 사용하여 동작을 하니, 하나하나 너무 힘들이지 않고 정확히 할 수 있다. 많이 움직이지 않은 것 같은데 몸의 균형이 똑바로 맞춰진 느낌이다.



두 번째, 선생님의 나이다. 선생님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17년 전에 트레이닝 코스를 마치고 티칭을 시작하셨다고 하니,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시작하신 것 같았다. 그 때로부터 3년 후인 지금도 훌륭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계시니 경이로울 지경이다. 지금은 70세 정도 되신 것 같다.



40대가 되고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 중학생이 되니 난 뭘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많아졌던 때이다.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요가를 아무리 좋아하지만 취미활동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트레이닝 코스는 직업을 가지려는 20대나 하는 거라는 편견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제니스의 오너이자 메인 티처인 마제나의 수업도 너무 좋았다. 그녀는 40대 후반의 아들 둘 엄마였다.  마제나와 윌리는 나이도 있고 마르고 예쁜 동양의 젊은 요가 선생님들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다.


수업의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고, 유머와 카리스마는 또 어떤가. 나는 이 두 선생님에게 반했다.



드디어 찾은 것이다.



요가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궁금증이 하나씩 풀릴 때의 희열과 도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는 동작들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베트남의 코로나 확산이 심각해지고 모든 단체활동 시설은 문을 닫게 되면서 일 년 넘게 제니스를 갈 수 없었다. 요가에 대한 갈증은 유튜브를 기웃거리며 그나마 채울 수 있었지만, 직접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수련하는 게 너무 그리웠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락다운이 풀리고 일상생활로 돌아가 신나게 요가를 할 수 있을까.



벌써 1년도 넘게 락다운인데 과연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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