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트의 하루 Oct 15. 2023

압구정 캘리포니아의 추억 vs하노이 캘리포니아의 악몽

나의 요가 인생은 20년 전 압구정 캘리포니아 피트니스에서 시작된다. 그 당시 압구정은 연예인들이 주로 활동하는 동네여서 유명한 카페, 레스토랑 그리고 와인바가 생기기 시작했던 때였다. 압구정에서 회사를 다니는 고등학교 절친이 있어서 자주 갈 일이 있었다.



한쪽 도로변에 신기한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5층 정도 되는 건물 대부분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더 신기한 것은 그 안에서 러닝머신을 달리거나 헬스기계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렇게 다 보이는 곳에서 길거리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운동을 하다니, 역시 압구정은 관종들이 모여있는 곳인가.  


회원권 가격도 어마무시하고 운동 좋아하는 연예인들은 거의 다 다닌다고 한다. 운동 신경이 없는 데다 못하는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일이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무료체험권이 있으니 같이 가보자고 한다.



운동복은 뭘 입어야 하나, 몸짱들만 가는 곳 아닌가. 그런데 어떤 곳인지 너무 궁금하네.


걱정보다는 호기심이 더 커졌다. 퇴근 후, 피트니스 매니저의 안내를 받으며 두리번두리번 온 층을 둘러보았다. 럭셔리 주스바에는 생과일과 야채를 선택하면 즉석에서 갈아주고 프로틴 박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GX 룸에서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단체 레슨을 받고 있고, 스무 대가 넘는 자전거가 있는 스피닝룸에서는 클럽 같은 음악이 빵빵 흘러나왔는데, 사람들은 트레이너의 지시에 따라 일어났다 앉았다 또는 좌우로 몸을 흔들며 다리는 계속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올라가니 핫요가 스튜디오라는 곳에 있는데 문들 열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훅 덮친다. 찜질방 같은 온도의 방에서 또 20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요가를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은데



매니저가 GX룸의 시간표를 보여준다. 힘든 클래스만 있는 건 아니고 일반 요가 클래스도 있다고 한다.



요가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나와 친구는 옷을 갈아입고 요가 수업에 참여했다. 연예인처럼 날씬하고 예쁜 요가샘이 들어오셨던 것 같고,  헐렁하고 편한 옷을 입은 우리는 엉거주춤 따라한 것 같다. 어떤 수업인지 어떤 선생님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앉지만, 수업 후 몸이 정말 개운하고 상쾌했다.



요가 후,  자쿠지가 있는 호텔 같은 샤워룸에서 사우나까지 하고 나니  항상 구부정하게 피곤을 달고 살았던 몸이 가뿐하다.



그리고 어느새 나와 친구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다. 프로모션 기간이라 오늘을 놓치면 안 된다는 매니저의 설명을 들으며.



이렇게 럭셔리 피트니스와의 인연으로 요가를 시작했고, 나는 요가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엔 요가 한 시간만 하다가, 체력이 좋아지면서 바디발란스나 바디펌프 같은 그룹 근력운동 클래스도 참여했다. 프로그램이 정말 다양해서 생전 안 해본 댄스와 운동을 결합한 수업도 들어보고 너무 신나게 잘 다녔다.



운동 후에는 한참 유행하던 스무디 전문점의 비타민 프로틴 믹스를 밥 대신 먹기도 하고, 가끔은 유명하다는 와인바나 맛집을 가기도 했다. 내가 운동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초중고 시절에 학교에서 하는 운동이란 100미터 달리기, 오래 달리기, 던지기, 멀리뛰기, 매달리기 하나 같이 내가 못하는 것들이었다.  단체운동은 피구, 발야구, 배구 등 달리기와 민첩성에 관련된 것이어서 당연히 못했다. 그나마 윗몸일으키기 하나만 잘했다.  



체육시간이 즐거울 리가 없었고 나는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20년을 넘게 살아왔다. 하지만,  피트니스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운동 시간이 좋았고 요가에 점점 빠져들었던 것 같다. 몇 년 후 이곳은 명동, 강남점으로 방만하게 확장 운영을 하다가 수많은 회원을 가입시켜 놓고 문을 닫고 말았다.



이렇게 압구정 캘리포니아 피스니스는 나의 20대 추억 중 비중 있는 이벤트로 기억되어 있는데, 베트남에도 캘리포니아 피트니스가 있다고 하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코로나 기간이라 남편이 먼저 베트남 정부의 특별입국 허가를 받아 출국했는데, 우리가 살게 될 곳의 4층에 캘리포니아를 봤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나에게 요가뿐만 아니라 피트니스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곳인데, 운명적이다.


베트남에 입국하고 격리를 마치자마자 등록을 했다. 인테리어도 20년 전 한국에서와 비슷한 것 같고 새로 생겨서 깨끗하고 무엇보다 널찍하고 뷰까지 좋은 요가룸이 너무 마음에 든다.




이번엔 베트남 매니저의 영업에 또 넘어가서 1년 회원권만 사러 갔다가 30개월 등록을 하고 말았다.




한 달 비용으로 하면 얼마 안 되고, 난 여기 있는 동안 요가를 매일 할 거니까 괜찮아.




아이들 학교 보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요가 수업 시간에 맞춰 갔다. 게다가 선생님도 인도 사람이라고 한다. 요가의 천국 인도에서 오신 분에게 요가를 배울 수 있다니 기대치가 최고조에 다달았다.



아침 7시 30분, 베트남 여자분들 30여 명 정도가 요가 매트를 깔고 앉아있고  남자 인도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베트남 분들은 대체로 정말 몸이 너무 유연해서 온갖 자세를 잘한다. 인도 남자 선생님의 핸즈온은 불필요하게 세게 혹은 관절에 무리가 갈 정도로 친절하지 않았다. 실망이다. 소중한 관절을 위해서 정말 조심해서 방향성만 알려줘도 충분한데.



베트남은 맛있는 커피도 없고 음식도 쌀국수 몇 번 먹으니 먹을 게 없는데, 요가까지 나를 실망시키는구나. 지금은 아니지만 베트남 생활 초반에는 모든 게 낯설고 실망스러웠었다.



이미 회원권을 끊었느니 스트레칭한다 생각하고 가자. 다른 클래스도 들어보자.



이러한 다짐에도 불구하고, 시설은 좋지만  정작 중요한 클래스가 마음에 들지 않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안 가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과연 퀄리티 있는 요가 스튜디오를 찾을 수 있을까?



 

      


 




이전 07화 45세 아줌마, 요가하러 발리 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