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넘어서 테니스를 배워도 될까?
와카나는 남편과 둘만 사는 20대의 착한 친구였다. 그녀가 어느 날 나에게 테니스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테니스를 했고, 정말 재밌어서 가르쳐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플라잉 요가 소개를, 그녀는 나에게 테니스 레슨을. 이미 플라잉 요가는 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팀웍을 이루고 있었다. 함께하면 더없이 즐거운 이들이기에 테니스를 같이 하자고 했더니 테니스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저녁에 테니스 코트에 모였다.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 숙제 봐주고 저녁 챙겨주고 남편오면 모이기 딱 좋은 시간.
테니스 코트에는 웃음이 넘쳤다. 와카나는 우리에게 공을 던지고 우리는 순서를 정해 공을 받아 넘겼다. 나는 따로 레슨을 몇 번 받은 상태라서 조금 더 잘 하는 편이었지만, 대부분이 완전 초보였다. 당연히 공은 자기 멋대로 튀어 올랐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테니스 코트 옆 지붕에도 맞고 난리가 아닌데, 우리는 뭐가 그리 웃긴지 박장대소하며 즐거워 했다. 테니스 레슨 겸 영어 수다 겸, 참으로 알찬 시간이었다.
사실 내가 처음 테니스 레슨을 받기 시작한 건 타의에 의해서였다. 아이들 테니스 레슨을 신청했는데 아이들이 싫어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대신 받게 된 것이다. 이미 예약한 수업을 안 나갈 수는 없으니. 그런데 공을 맞추는 게 생각보다 재밌었다. 게다가 친구들과 놀면서 치고 왕초보 친구들 중에서는 초보인 내가 제일 잘하니 더 잘하고 싶어 져서 레슨도 주 1회에서 주 2회로 늘렸다. 40 넘어서 테니스를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하나 있었다. 놀면서 배우니 재미있기는 한데, 테니스가 이 나이에 배워도 되는 운동일까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바꾸는 계기를 만났다
우리의 테니스 팀에 두 명이 더 합류했다. 둘 다 나이가 꽤 있어 보였다. 아니나 다 들까 두 명 다 아이들이 대학생으로 각각 호주, 아르헨티나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부부만 하노이에 살고 있었다. 수잔은 호주 정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남편의 일 때문에 하노이에 오게 되었고, 메르세데스는 남편이 아르헨티나 대사였다. 우리나라 대사는 물론 그 어느 나라 대사도 뉴스에서 들어보기만 했지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대사 부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녀는 대사 부인이라고는 느끼지 못할 만큼 소탈하고 인자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 다 테니스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게 전부라고 했지만, 우리 중에 제일 실력이 좋았다. 나이는 아마 최소 60대. 그 동안은 테니스 멤버 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 은근히 부담이 됐었는데, 그들의 존재가 내게는 위로가 되었다. 둘 다 거의 빠지지 않고 연습에 참석했고, 잘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테니스가 더 재미있어 졌다. 잘하는 사람이 더 잘하고 싶다고 나와 수잔, 메르세데스는 따로 레슨을 더 받으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테니스 실력은 물론 나의 영어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수잔의 남편 데이비드는 항상 테니스 끝날 시간에 맞춰서 테니스 코트까지 수잔을 데리러 오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가져와서 함께 쓰고 가는 다정한 그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어느 날, 게임 마칠 시간에 웅장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오토바이가 테니스 코트 앞에 멈췄다. 세련된 가죽 재킷에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외국인 남자가 내렸는데, 알고 보니 메르세데스의 남편인 아르헨티나 대사였다. 어느 나라의 대사를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수잔과 데이비드가 우리 테니스 멤버들을 집으로 초대해 직접 요리한 음식들로 대접해 준 적이 있었가. 올지 안 올지 설마설마했던 대사 부부도 편안한 중년의 외국인 부부 느낌으로 우리와 시간을 함께 했다. 같이 갔던 우리 남편은 긴장한 채로 참여했다가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며 즐거워했다.
나와 수잔, 메르세데스는 테니스 게임이 없는 날에는 동네 산책을 함께 했는데, 산책 멤버가 점점 많아지더니 나중엔 월드뱅크 주재원 부인인 프랑스인 미뤨리와 메르세데스의 친구인 모로코 대사 부인도 합류하게 되었다. 메르세데스와 미뤨리는 강아지도 데려와서 같이 산책했는데, 강아지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도 동행하며 산책의 기쁨을 함께했다. 특히 모로코 대사부인 오와파는 완전 수다왕이었다. 모로코 음식부터 아프리카 국제정세까지 박학다식을 뽐낼 때면, 그곳이 바로 세계사 강의장 같았다.
테니스가 낮에 끝나면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 끝나면 맥주를 한 잔씩 했다. 그렇게 함께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플라잉 요가에 이어 테니스 모임까지, 이렇게 나이와 인종을 넘어선 나만의 커뮤니티가 하나 더 생겼다.
영어공부 한답시고 넷플릭스 미드 시리즈를 영어자막으로 보다가 답답하면 한글자막으로 보며 살짝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던 답답했던 영어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작과 플라잉 요가 모임, 테니스 모임으로 생기를 띄며 나에게 즐겁게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원하고 상상하던 모습으로!
Hi, Kate. How are you?
이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레스토랑에서 가족끼리 식사를 할 때에도, 마트 가려고 길거리를 다닐 때에도 여기저기서 하이 케이트 하우아유 허그 볼키스까지! 같이 다니던 남편은 신기해한다.
하노이 인싸야? 이 동네 외국인은 다 아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