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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의 하루 Oct 08. 2023

플라잉요가를 하러 갔을 뿐인데

영어 선생님들이 우르르 날아오다


베트남에서의 처음 몇 개월은 자유로웠다. 한국은 이미 코로나가 한창이라 식당에서 몇 명까지만 함께 있을 수 있고, 거리두리를 하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도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한국보다 훨씬 강력한 통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 락다운 기간 동안 베트남은 강력하게 모든 공용 시설을 통제했다. 불행하게도 내가 살고 있던 레지던스에서 일본인 코로나 사망자가  나왔고,  2주 동안 건물 전체가 폐쇄되어 각 집의 모든 구성원들은 현관 밖으로 못 나가고 격리 생활을 했다. 입국할 때 2주 격리에 이어 또 다른 2주 격리.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첫 번째 격리 때는 음식이 너무 안 맞아서 거의 못 먹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레지던스에서 제공해 주는 일식, 한식, 양식을 매일 선택해서 먹을 수 있었다. 나와 남편, 아이들은 4명이서 2주 동안 꼬박 붙어 있으면서 삼시 세 끼를 함께 하고, 오전에는 독서나 각자의 업무나 공부, 오후에는 다 같이 유튜브 홈트를 했다.



집에 있던 온갖 보드게임을 섭렵하고 심지어 시간이 오래 걸려서 기피했던 모노폴리도 여러 번 했던 기억이 있다. 남편은 모든 업무를 전화통화와 메신저로 처리했다. 한국에서와 달리 집이 넓어서 따로 또 같이의 적정한 선을 유지하며 돈독한 시간을 보냈다.



그 외에도 카페나 음식점은 테이크아웃만 가능 하고, 마트도 가족 중 한 명만, 하루에 한 번만 갈 수 있을 때도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밖을 돌아다니다가 베트남 경찰서까지 갈 뻔한 적도 있었다. 운동 시설 이용도 못 해서 집에서 온라인으로 요가를 하기도 했다.



내가 공산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암울한 기간이었다. 락다운이 완화되자마자 달려간 곳은 집 근처 요가원이었다.



그런데 왠걸, 새로 오픈한 요가원엔  나이가 70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선생님이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미국에서부터 유명한 분이고, 베트남에는 합작 투자 개념으로 요가원을 오픈하게 되어 잠깐 오셨다고 한다.  옷차림과 태도에서부터 고수의 느낌이 풍겨났다.



한국에서는 요가 선생님하면 날씬하고 예쁜 모습이라는 전형적으로 갖고 있는 편견이 있었는데, 과연 수업을 제대로 하실 수 있을지 의문을 품은 채로 수업에 참여했다. 할아버지 선생님은 본인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오직 큐잉만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정말 신비로웠던 사실은 내가 그 동안 참여했던 그 어떤 요가 클래스보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못 할 것 같았던 동작까지도 해냈다는 것이다. 보면서 따라하는 수업은 보고 듣고 움직이는데 비해서, 보지 않고 소리만 듣고 움직이니 보는 과정이 생략되어 오히려 더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온 정신을 기울여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요가 선생님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요가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지만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 외에도 나는 베트남에서 만난 외국인들을 통해 나이에 대한 편견을 하나하나 깨어가는 순간들이 더 있었고, 이는 내 가치관에도 큰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되었다.  




오전 요가 수업의 주요 멤버는 나처럼 남편의주재원 발령으로 오게 된 프랑스 여자분, 영어학원 선생님인데 락다운으로 온라인 수업만 하고 있는 필리핀 여자분, 베트남 에어라인 파일럿인데 비행이 없어서 요가를 하러 온 콜럼비아 남자분 그리고 나였다. 우리는 할아버지 선생님의 신비로운 요가 클래스를 들은 후에는,  다 함께 요가원 바로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선생님의 요가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가난했지만 콜럼비아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파일럿이 된 이야기, 필리핀에서 태어나 싱가폴에서 신학 공부를 하다가 베트남에서 영어선생님이 된 이야기,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바쁘게 살다가 베트남에 와서 남편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일상의 소중함을 느낀 이야기 등등  아직 덜 풀린 락다운의 규제 속에서 소소하지만 재밌는 일상을 공유하게 되었다.


           프랑스 재료만으로 직접  만든 티라미슈

                     (프랑스 친구 Gene 집에서)





케이트, 플라잉 요가 같이 가보자!




요가 수련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필리핀 친구가 낮 12시 플라잉요가 클래스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지나가다만 보고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호기심이 생겼다. 회원권에 모든 클래스가 포함되어 있으니 안 해볼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오전 수련 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수업에 들어갔다.  






뭐든 처음 해보는 것,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게다가 클래스 시간에 맞춰 요가룸에 가보니 온통 외국인들 뿐이었다. 이들은 이 시간에 다들 어디서 왔을까. 온갖 여성 외국인들이 모여있는 HIWC 모임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인데.



이런저런 의문을 품고 있는 사이에 클래스가 시작되었는데 나에게 플라잉 요가는 요가라기보다는 근력 운동에 가까웠다. 특히 팔 힘이 많이 필요하고 허벅지 근력 또한 중요하다. 팔은커녕 다리도 아파서 겨우 따라 하는데 선생님은 본인이 한 번 시범을 보이고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지쳐서 포기할까 하는데 오른쪽에 있던 외국인이 알려준다.




"팔로 이 줄을 당기고 허벅지를  이렇게 걸치면서 해봐."


" 난 팔에 힘이 없어서 안 당겨져."


" 내가 도와줄게. 받쳐 줄 테니까 다리 힘을 이용해서 움직여봐."




선생님보다 더 잘 알려준다.  그래도 낑낑 데고 있으니 왼쪽에 있던 친구도 나를 지지해 주고, 이제는 앞, 뒤에 있던 사람들까지 나를 응원해 주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정말 기적처럼 자세를 완성했다. 다들 손뼉 치고 환호성에 선생님은 어디서 나타나셨는지 인증샷까지 찍어주고 난리였다.

                                기초자세 완성




이런 따뜻하고 친절한 분위기는 뭐지. 나만 빼고 다들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역시나 알고 보니 필리핀 친구가 매니저로 있는 영어학원의 선생님들이었다. 온라인 수업이 없는 점심시간에 다 같이 운동을 하러 온 것이었다. 어쩐지 다들 친절했을 뿐만 아니라 설명을 참 잘하더니만.



이제는 친구가 된 영어 선생님들과 플라잉 요가 수업이 끝나면 함께 점심을 먹으러 다녔다. 선생님들의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 나의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인 3시까지 매주 화요일, 목요일 이렇게 나에게는 즐거운 영어회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참 운도 좋다.


이들은 필리핀, 페루, 헝가리,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각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러 베트남에 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비영어권 동남아 사람들의 편견 중 하나는,



노랑머리에 파란 눈의 백인은 영어를 잘 가르칠 것이다.



국제학교나 영어학원에 가서 처음 살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이런 외국인 선생님이 있는지 없는 지다.  베트남도 다르지 않아서 대우가 더 좋은 국제학교에는 백인 선생님들이, 영어 잘하지만 그 외의 국가 선생님은 영어학원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도 이들 중 두 명의 친구가  논리적이고 학력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는데,  이들은 역시  몇 달 후 테스트를 거쳐 영국문화원의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수많은 국가의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외국인을 보면 무작정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과거와는 달리 나와 맞는 사람, 대화가 통하는 사람,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 등등 한국사람을 만났을 때와 같은 기준으로 친구가 되는 과정을 배웠다.  더 이상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도 체감하게 되었고,  그만큼 영어실력도 늘어갔다.








내가 플라잉 요가를 적극 추천해서 온 일본 친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테니스를 정말 잘 치는 친구였다. 나는 테니스 레슨을 조금 받다가 흥미가 떨어져서 쉬고 있었는데, 자기가 테니스를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라켓만 들고 오라고.


왜 자기 시간을 내서 이렇게까지 하지?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이렇게 친절한가?  


그녀의 실체는 곧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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