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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 Jul 18. 2023

너의 마음속에 강이 흐른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참 별일이다, 나를 찾는다는 것 

    늦잠을 잤으면 얼른 일어나 씻고 나가기나 할 것이지 피아노는 왜 치고 싶었을까. 작곡가이면서 피아니스트인 이루마는 친절하게도, 자신이 새로 제작한 악보집을 당근마켓에 올린 뒤 직접 고객과 만나는 홍보 동영상을 찍고, 기와 라이브에 나와 벤츠 자동차 옆에서 우아하게 피아노를 연주했을 뿐이다. 그 모습을 본 내 잘못이지. 에코백과 연필, 스티커 등과 함께 검은 벨벳으로 감싼 이루마 악보집을 샀다. 그 돈이면 아들 녀석 좋아하는 한우가 두 근이지만 이루마가 직접 쓴 악보라고 해서 슬쩍 사버렸다. 

    바이엘부터 혼자 쳐서 배운 피아노, 나 피아노 좀 치네, 할 실력이 절대 아닌데, 짧은 곡 한 곡 제대로 못 치는 솜씨라도, 그저 악보만 보고 똥땅거릴 뿐이어도, 뭘 보고 치는가에 따라서 소리 자체가 달라진다고 느끼곤 했다. 그래 한번 쳐보고 싶은데, 우리 집은 저기 어디 숲 속이 아니니, 아침 시간 피하고 밤 시간 피하면 평일엔 칠 시간이 없다. 어차피 늦었고, 집안이 조용한 것이 어머님도 계시지 않은 듯하여 눈곱만 떼고 피아노 앞에 가 앉았다. 무슨 애 엄마, 며느리, 아줌마가 이런가. 이 시간에 일어났으면 식구들 밥은 뭘 먹일지부터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나는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너의 마음속에 강이 흐른다)’를 친다, 두 번 세 번 …, 이번 치는 곡이 끝날 때까지만 고요하기를 바라며.

    머피의 법칙이라고, 있다. 이런 조급한 마음을 품는 건 잘못이다. 애초에 바람이 없었으면, 여지없이 들리는 문 열리는 소리가, 분주한 몸짓, 발자국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을 거 아닌가. 작고 규칙적인 발소리 위로 불규칙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벌써 공기를 바꾸고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 머리는 이미 혼란해져 그 속에서 음표들은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부딪힌다. 건반 위 손은 멈췄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유별나다. 시어머니가 피아노 친다고 구박하길 해, 동네에서도 부지런하기로 유명한 착한 분인데, 왜 이러는 걸까. 시어머니는, 그냥, 뭘 하든 이쁘다고 엉덩이 토닥여주는 우리 할머니가 아니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함께 불러주는 울 엄마가 아닐 뿐이다. 그 사실 하나로 누가 뭐라지도 않는 죄책감에 이내 소심해진다. 휴일에도 일 나간 남편하고 아침 하셨을 테지 싶어 식사는 하셨는지도 묻지도 않고 작은 소리로, 나가요, 하고 뛰쳐나왔다. 이럴 땐 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되련만, 어김이 없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살이 마르는 착각을 한다. 어이가 없다. 함께 산 지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지?      

    비가 온다더니 하늘이 흐리다. 그날도 이런 날씨였지. 신촌 어느 카페에서 대학생이던 남편과 나는 처음으로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했다. 동아리 엠티에서 밤새 피워주던 모닥불의 따스함에, 앰프, 스피커 등 고장 난 모든 전자 기계들이 그의 손에만 가면 신기하게 살아나고, 가식 없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나는 그를 이미 의지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와 결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의 어머니를 뵌 적이 있다. 4월이었다. 동아리 선후배를 모아 북한산 능선을 타러 갔다. 그가 주도한 모임이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별안간 우박이 떨어지고 비가 내렸다. 춥고 무서운 시간이 이어졌다. 무척 미안했던 그는 모두를 이끌고 자기 집으로 갔다. 소박하고 따뜻한 아파트였다. 작은 접시들이 빼곡했던 밥상은 정겹고 맛났다. 그는 말했다. 부모님 모두 시골 분이시라고, 초등학교밖에 안 나오셨고 농사짓던 분이시라고. 아버지는 서울로 상경하셔서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는데 정말 열심히 사신 부지런하고 우직한 분이라고. 이유는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결심했다. 이 사람과 결혼하자. 맛있던 그 음식을 계속 먹을 수 있을 거 아냐.      

    생각해 보니 나는 호랑이 굴에 자기 발로 들어간 토끼였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토끼 같은 마누라랑은 살아도 곰 같은 마누라 하고는 못 산다” 하시고 남편은 “전 토끼보다 곰이 더 좋아요” 하니 외견상 나는 곰이지만, 처지를 보면 딱 ‘호랑이 굴에 토끼’가 맞다. 어머니 아버지는 음식을 짜게 드셨다. 몸을 많이 움직이시고 땀을 많이 흘리는 분들이니 보통 사람보다 조금 짜게 드시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싱겁게 먹는다. 갑을 관계가 분명한 식탁 위에서 이성은 통하지 않는다. 상황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가 가정의 단란함을 보장한다.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다. 음식을 싱겁게 만들고 짜게 먹는 사람이 소금이나 간장을 더 해 먹으면 된다. 반대로 짜게 만들고 싱겁게 먹는 사람이 물을 부어 먹든지 조금씩 먹으면 된다. 문제는 누가 기준이 되느냐다. 호랑이와 토끼가 함께 식사하고 있다면 기준은 호랑이가 당연하다. 호랑이 입장으로는 토끼를 잡아먹지 않고 살려두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호의요 관용이다. 토끼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입맛까지 존중받길 원하는 것은 난센스. 나는 짠 국에 물을 부어 먹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 내가 그렇게 눈치 좋은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틈나면 눈치를 보는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짜다, 맛없다, 안 먹는다,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시아버지가 유일했다. 

    시아버지는 정말 말이 없는 분이었다. 책을 읽지 않으셨고 티브이 뉴스에 나와하는 기자들 말은 배운 사람들 말이라 늘 옳았다. 그런 시아버지는 배운 사람인 친정 부모님을 만나는 상견례에 오시며 검게 그을린 팔뚝에 커다란 밴드를 붙이고 나타나셨다. 문신을 가리기 위해서다. “애는 튼튼하니 잘 가르쳐 주시면 뭐든 잘할 겁니다.” 교장 선생님이 맏딸을 시집보내는데 하신 말씀이다. 아무래도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 수 있고, 양가 부모님이 서로 배려하시는 모습도 좋았고, 시부모님이 찾아간 무당은 우리 둘 궁합이 너무 좋다고 했고, 심지어 무당이 잡아 준 날짜에 성당 예약도 비어 있고(이건 마치 제종교통합의 행운이었다),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에도 불구하고 거짓말같이 화사하게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나는 결혼을 했다. 

    결혼하고 나니 사람들 질문이 변한다. 신혼집은 어디냐, 전세냐 뭐냐, 몇 평이냐, 시아버지는 뭐 하시는 분이냐. 그런 질문들에 어느 순간 나는 친정은 목동이고, 작고 전세지만 방배동에 신혼 짐을 풀었다고, 시아버지는 건축업을 하는 분이라고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여정부 교육정책에 힘입어 학생 부족했던 대학원 박사과정에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던 데 불과하면서, 서울대 다니냐고 하면 나는 겸손한 척 마지못해 그렇다고 말하곤 했다. 모두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늘 뭔가 설명을 더 해야 오해가 없을 것만 같은 마음에 편치 않았다. 

    어느 날 한잔하신 시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네가 좀 배웠다고 시댁 무시하고 그러면 죽을 줄 알어(충청도 분이시라). 서운해서였는지 아님, 무서웠는지 눈물이 났다. 내가 누굴 무시한다고, 잘난 게 뭐 있어서 잘난 척을 했겠느냐고. 시댁에서의 생활은 좀 과하게 비교해 보자면 이랬다. 감사하고 기쁜 순간 아무 무장도 없이 뛰어들고 보니 사람들이 내게 총을 겨누는 듯했달까. 그날 이후 미묘한 긴장은 계속되었다. 종일 채널 에이, 티브이 조선, 엠비엔을 돌려보시던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정치적 신념에 늘 혀를 차고, 시어머니는 김치를 함께 담지 않는, 어떡하든 외식하려 하고, 집안일 안 하려는 며느리가 서운했지만, 우리 집은 평화로웠다. 나는 나의 기대대로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을 수 있었고, 시어머니는 고집스러운 시아버지를 좋아하고, 남편은 미련한 곰 같은 마누라를 사랑했다.      

    오늘 시어머님이 끓여 주신 미역국을 먹었다. 너무 짜서 물 반 컵을 바로 부었다. 그래, 긴 시간이 지났다. 호랑이 굴에 들어간 토끼가 가끔은 곰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부디, 힘 빠지니 저렇게 맘대로 구나, 생각하시지만 않았으면 싶다. 나는 여전히 눈치를 본다. 그래도 틈만 나면 피아노를 친다. 이루마의 ‘너의 맘속엔 강이 흐른다’를 친다. 문득 내게 호의적이기만 했던 세계가 순간 등을 돌린 듯했던 그때 그 시간으로 가 본다. 아주 가끔은 그 시간 앞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기보다, 어느 동네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나 배운 사람인지, 그런 것들이 아무 의미 없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밤새 피운 모닥불이 따뜻하고 포근하던 그때,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산을 올라야겠다고 결심하던 그 순간이 보고프다. 참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참 별일이기도 하다, 나를 찾는다는 것. 나는 그를 만나 함께 잘살고 있는 것이 그래도 내가 한 일 가운데 제일 잘한 일이라 믿고 있다. 


사슴은 이리를 두려워하고, 이리는 호랑이를 두려워하고, 
호랑이는 큰 곰을 두려워한다.
(유종원(柳宗元)의 《비설(羆說)》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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