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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 Aug 10. 2023

할머니 담배 태던 시절에 대하여

너의 삶을 살아라

    늦은 시간 TV를 보고 있었다. 크게 유행한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인도 사람, 아누팜 트리파티가 출연해 민속촌을 돌아다니고 있다. 키 큰 파란 풀이 초가집 사이에서 자라고 있다. 담배라고 한다. 옛날에는 저렇게 담배를 집에서 들 길렀다는 짧은 설명. 잠은 오고 소리는 점점 아득해진다. 오징어 게임, 거기 ‘한미녀’라는 캐릭터가 요란하게 끽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이 떠오르자 무슨 이유인지 담배를 종이에 말아 할머니께 드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담배를 태는 사람들이 참 많았었다. 버스에서도, 심지어 비행기에서도 가능했다. 지금 아이들은 하는지 모르지만, 그, 왜, 애들 고무줄놀이노래, ‘전우의 신체를 넘고 넘어… 화랑 담배 연기 속에…’ 가사(사실은 군가였다)로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얼마 전 사망한 장 폴 벨몽도가 잘근거리던 모습, 제인 버킨 옆에서 연신 연기를 뿜는 세르주 갱스부르, 써클(동아리)실 가득 뿌연 연기를 뿜으며 모여있는 선배들. 우리나라는, 2002년 KT&G(Korea Tomorrow & Global)로 민영화되었다곤 하지만 정부에서 직접 담배를 만들어 팔았다. 17세기부터 20세기, 우리나라 기호품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담배는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국고를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였다고 한다. (안대회,『담바고 문화사』)

    지금도 담배를 개인이 재배하는 게 가능할까? 예전 같으면 도서관에 가서 신문이며 이것저것 뒤적여야 겨우 알겠지만, 지금은 인터넷이 있다. 2014년 한겨레의 「담배 재배해 말아 피워도 되나」라는 기사에 따르면, 자신이 재배해 피우는 걸 규제하는 법은 없다. 하지만, 사적으로 만든 담배를 대가 없이 지인에게 건넨 거라도 법령 위반 소지가 있다고 한다. 더구나 담뱃잎의 품질과 생산량 등을 관리하는 KT&G가 계약재배할 농가에 종자를 주어야 이듬해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구조라 사적 재배 ‧ 제조를 시도하는 건 쉽지 않다고 한다. 

    아니, 왜 별안간 나는 담배 얘기가 하고 싶은 건지.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담배’라는 말을 따라 떠오르는 일들이 많으니 별일이다. 먼저, 시아버지…, 폐암인 줄 알면서도, 놔둬라, 이렇게 살다 죽을란다, 하시며 베란다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태다, 분 바른 것처럼 가녀리고 창백한 얼굴로 서둘러 떠나가셨다. 시아버지가 그렇게 가시고, 시동생 둘은 장가가고, 지금 나는 시어머니와 살고 있다. 시집오기 전까지는 엄마, 아빠와 함께 할머니와도 같이 살았다. 할아버지는 아빠 여덟 살 때 돌아가셔서, 아빠는 홀어머니의 외아들이었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할머니는 담배를 피우셨다. 그 모습을 기억하자니 그 장면엔 할머니와 같이 담배를 태는,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은데 나는 오빠라고 부른, 지금까지도 오빠라 부르는 아니, 나중에 알았지만 사촌 오빠(고모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있었지만 없었던…)인 사람이 같이 앉아 있다. 이게 담배 냄새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바람이 통하는 마루로 내보내거나 나가 놀게 했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빨간 꽈리를 오물오물 입에 물고 놀았다. 할머니는 담배를 태면서 표를 떼시기(운수 떼기라고 부르기도)도 하고 또 가끔은 언니 오빠들과 화투를 치셨다. 표를 잘 떼려면 암산을 잘해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동네에서 별명이 ‘변호사’로 통하던 할머니가 표 떼시는 걸 보고 있자면 가뜩이나 작은 내 눈이 팽팽 돌아갔었다. 아빠도 태고 할머니도 태고 오빠도 폈으니 담배에 늘 호기심이 일었다. 어느 날 화장대 위에 놓인 아빠 담배를 몰래 피워보다 숨이 턱 막히고 매워 기겁하긴 했지만 시집와서 시아버지가, 시동생이 담배 피운다고 이상할 건 없었다. 생각해 보니, 결혼할 때 남편도 흡연자였다, 다섯 살 아들이 “아빠 담배 싫어요” 한 이후로 끊었지만. 담배 냄새는 너무 싫은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그렇게 싫은 건 아니었나 보다. 

    나는 담배 피우는 남자와 결혼해 집을 전세 얻어 살았다. 어느 날 남편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전세금을 빼서 프랑스에 가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불어를 전공했으니 좋지 않겠느냐고. 좋다고, 그래보자, 떠난 프랑스에선 사람들이 훨씬 더 자유롭게 담배를 피웠다. 담배는 더 비싼데 저렇게 편히 피다니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는 나란가보다 싶었다. 그때 나는 놀랐다. 프랑스 사람들은 담배를 태우고 꽁초를 그냥 바닥에 버려두었다(코로나가 끝난 지금 상암동 빌딩 사이사이 모습이 그때 같다). 21세기가 시작되던 해였다. 과 선배 하나가 말했다. 아는 프랑스 사람이 그러는데, “일거리를 주는 거”라고, 내가 알아서 치우면 사람들 고용할 일이 없지 않겠느냐 하더라고. 개똥과 담배꽁초로 기억에 남은 프랑스는 그런 선진국이었다. 

    사람들이 담배를 태고 나면 프랑스 길거리마냥 흔적이 남는 게 보통이다. 쪽쪽 빨고 버린 꽁초가 남아있거나, 어쩔 수 없이 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거나, 흡연 과정의 모든 분비물들을 받아내는 그릇류가 남아있다. 담배 태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흔적을 남기고 다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일하던 직장에서도 나는 떨어진 담배꽁초 모양, 구겨진 담뱃갑, 함께 남은 물건들을 보고 누가 다녀갔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담배 태는 사람들은 그저 피고 싶을 때 피고, 피고 싶은 곳에서 피고, 피고 싶은 만큼 피울 수 있는가만 생각하는 것 같다. 중독성이 있다는 게 그런 뜻일 것이다. 다음에 태울 새 담배와 라이터는 그들이 지키고야 마는 그들의 몫이고, 태우고 버린 꽁초와 뇌와 허파를 돌아 배출되는 연기는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들의 몫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논문 발표하는 학교 강의실로 가 있다. 골초로 유명한 한 교수를 위해 조교들은 커다란 재떨이를 그 옆에 가져다 놓았다. 발표가 끝나자 교수는 그저 일어나 나가고 누군가가 재떨이를 들고나갔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성당 주일학교에서 열심히 국수를 말고 아이들 간식을 만들던 때였다. 무슨 행사 끝이었는지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여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는 자리가 있었다. 신부님이 격려차 오셨다. 사목회장이 모시고 왔다. 식당 테이블 가운데 자리한 신부님이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둘러보자 옆에 있던 사목회장 형제가 앞에 앉은 자모회장 엄마에게 눈짓한다. 자모회장 엄마가 흠칫 놀라자 “재떨이”라고 나직이 말한다. 신부님이 아이들과 엄마들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굼뜨게도 밀리고 밀려 그분들과 가까이 앉아 있던 내가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당에서는 금연인데요.” 옆에 계시던 수녀님이 내게 눈치를 준다. 사목회장은 날 잡아먹을 기세로 말했다. “바깥양반은 집에서 담배 안 태시나?” 신부님은 겸연쩍게 담배를 비벼서 껐지만, 그 꽁초가 놓인 재떨이는 식탁 위에 남았다. 신부님이 다녀간 흔적이었다.

    한 가지 얘기가 더 있다. 설거지하다 날씨가 좋아 내다보면 창밖으로 공터에 화분들과 작은 벤치가 모여있는 게 보인다. 우리 시어머니를 비롯해 몇몇 아파트 사람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이른 아침 모여 즐겁게 꽃을 가꾸는 공간이다. 이곳에 가끔 빨간 모자를 쓰고 나타나 담배를 피우고 흔적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지곤 하는 총각이 둘 있다. 담배 피우기 좋은 장소란 걸 더 잘 아는 거지. 알고 보니 식구가 많아 집에 있기 힘든 사람들이라고. 결국 치우는 것은 이 예쁜 공간을 만든 아주머니들이 되고 만다. 어머님께 말씀드리니 “아이고, 한 군데 잘 버리고만 가면 누가 뭐라 그럴꼬. 쯧쯧.” 하신다. 그래도 어머니는 그 담배 피우는 사람들에게 뭐라 못하시고 “그냥 치우면 되지” 하신다. 어머님이 그러시는 것도 이해가 간다. 시동생과 같이 살 적 나는 왕할머니(시어머니의 어머니)께 시동생이 피운 담배꽁초가 쌓여 있는 재떨이를 비우지 않았다고 혼났다. 

    담배란 물건이 그렇다. 우리나라 민화에 그런 그림이 있다. 토끼가 호랑이 앞에 납작 엎드려 장죽을 올리는 그림(二卯奉寅圖). 이런 상황에 놓이면 나는 복잡한 감정에 알 수 없이 화가 난다. 누군가의 끽연에 나의 생명과 노력, 자유가 침해받는다는 불쾌감이 본능적으로 솟는다. 그다음 어째서 피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가 생각이 들면서 짜증이 난다. 


    베블런이란 학자가 쓴 『유한계급론』을 다시 읽었다. 귀족, 성직자 등 한가롭고 비생산적인 상류계급이 유한계급이다. 이 유한계급은 유목이나 수렵을 하며 살아가는 부족들에서 보이는 계급분화 단계 과정에서 생겼다. 열등 계급에는 노예와 하인은 물론 모든 여자가 포함된다(이런 분석에 눈이 확 뜨이고 동하는 건 여자인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먹고살기 위해 매일 해야 하는 육체노동 즉, 생산활동이다. 남자들은 이 비천한 생산활동에서 면제시켜 전쟁, 사냥, 스포츠, 종교의식을 대비하고 이에 종사하게 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폭력과 지략을 공격적으로 구사하는 약탈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산적인 노동이 아니라, 강탈에 의한 자산취득 활동으로 보면 된다. 집단이 다른 집단과 적대적인 관계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이런 역할분화는 가속화되었다. 전쟁, 사냥, 스포츠, 종교의식 같은 일은 명예로운 것. ‘명예롭다’는 말은 ‘우월한 힘을 과시한다’는 뜻이고 ‘가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우월하다’는 것이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나는 도서관에 가 담배에 관한 책을 빌렸다. 『담배의 사회문화사』에서 강준만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남아메리카 고원 지대가 원산지인 담배가 유럽 부유층에 확산되었다. 북미에 정착한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정착할 수 있던 건 이 담배 덕분이다. 미국의 역사는 ‘담배의 역사’다. 토지를 척박하게 만드는 식물인 담배의 특성상 더 많은 토지가 필요하게 되었고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기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려오기 시작했다. 미국 초기역사에서 담배는 환금작물이었고 이주민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담배와 정부 권력은 이렇게 유착관계를 이루었고 이런 관계는 우리나라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베블런이 말하는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는 우리나라 양반들의 담배 소비 양태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1867년 4월 대원군의 사치 금지령에는 담뱃대 길이 제한 조항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넓은 갓을 쓰고 갓에 온갖 장식을 달며 소매가 펄럭이는 도포를 입은 양반들은, 담뱃대 길이가 50센티가 넘어 손이 담뱃대 끝부분에 닿지 않아서, 종들이 불을 붙여주지 않으면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이 모든 건 신분 서열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너나없이 골초였다고 한다. 양반들은 불평했다. 위아래가 없어진다고, 여자들까지 핀다고, 나라의 근간을 위태롭게 한다고. 

    이번엔 ‘담배’로 검색해 영화를 하나 보았다. 『담배 가게의 프로이트』라는 영화였다.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젤탈러의 『담배 가게 소년』이 원작이다. 그 속에선 노동자들이 피는, 필터도 없고 질도 나쁜 담배 얘기가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노동자들의 흡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광산을 운영하는 독일인이 ‘시간은 금’인데 작업 효율이 오르지 않는다고 긴 담뱃대로 태는 담배를 금지한다. 이에 노동자들은 파업했고, 광산 관리자가 외국에서 짧은 담배를 가져다 풀었더니 환호성을 올렸다….

    조금이지만 살펴본 담배에 관한 이야기들은 돈과 신분 과시, 약탈과 관련이 있었다. 돈을 벌자고 길러 팔기 시작했고, 그것이 국고를 채우니 국민이 골초가 되는 걸 방조했고, 세금을 더 걷으려고 담배값을 올리면 사람들은 다른 경로를 찾아내곤 했고, 그 경로를 찾아 서양 담배 회사들이 장사했고,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줄어 장사가 힘들어지면, 교묘한 방법으로 여성과 청소년을 상대했다. 약탈과 정복의 극치인 세계대전과 금연을 강요하는 독재자들을 겪은 후 담배는 해방과 자유를 상징하며 상실의 아픔을 대신하게 된다.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 없다는 담배의 중독성과 어울리는 전설도 있었다. 그 기원에 대한 신화도 있었다. 공주가 죽어 시신을 풀밭에 버렸는데 풀향기를 맡고 소생했다, 왕비의 죽은 넋이 연기로 변해 홀로 남은 남자의 그리움을 달래주었다, 담배 연기로 뒤덮인 진흙에서 여성들이 탄생했다, 한 여성이 초자연적 변신을 통해 담배로 환생했다, 살해당한 식인종 여인의 유골에서 담배가 처음 자라났다 등등.      


    우리 할머니가 담배를 태기 시작한 이유는 이렇다. 할머니께 할아버지는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 어릴 적 제사상에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보면, 계란형 얼굴에 흰 도포를 입고 계신데,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이정재를 닮았달까. 키가 커서 시골의 작은 초가집 정도는 훌훌 넘어 다니셨다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젊은 아내를 두고 시름시름 앓다 떠나셨다. 할아버지 제사상에는 늘 귤이 올랐다. 귤을 좋아하셨는데 그때 귤은 정말 귀한 과일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이 키보다 높이 쌓이던 추운 겨울, 할머니는 매일 같이 그 속을 헤치고 할아버지 무덤을 찾았다. 옷고름이 다 풀리고 저고리가 벗어지고 치마가 눈에 흠뻑 젖어 돌아 감겼다. 추운 줄도 몰랐다. 미친 듯이 무덤을 찾아가 울다 지쳐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정신없이 무덤에 도착해 울었는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이승에서의 정을 떼었다. 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수절해 할아버지와 한 무덤에 묻히겠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가만 두지를 않았다.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 그때 동네 사람 누군가가 담배를 피워보라고 권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담배를 태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는 엄마에게 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할머니 담배를 말아 드린 기억 말고 꽁초나 재를 치운 기억은 없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할머니가 담배 태시면 엄마가 치워드렸어?” “아니, 할머니가 다 알아서 하셨지.” 어느 순간 할머니는 담배를 끊으셨고 돌아가시기까지 죽을 때 힘들다며 보약이나 인삼 같은 것은 드시려고 하지 않았다. 담배를 끊고 매일 아침 하시던 긴 기도의 원대로, 소원대로,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묻히셨다. 세르주 갱스부르가 그랬다. “만약에 마지막 순간, 여자와 담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담배를 고를 거야. 더 쉽게 버릴 수 있잖아.” 멋있다고들 난리다. 그래 보이는 말이지만 분명히 반어법이다. 여자를 담배보다 더 쉽게 버리고 담배 바꿔 물 듯했던 그다.      


    담배가 아무리 위안이 된다 한들 담배 문화는 돈의 흐름 아래 약탈과 정복에 연결되어 있다. 전투에 나가기 전 오스만 투르크 병사들에게 지급된 마약처럼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선 병사들에게 담배가 지급되면 곧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한다. 담배 포장에 붙어 있는 무시무시한 그림을 봐도 담배란 것이 분명 그렇게 좋은 건 아니다. 사람의 가장 아프고 허전한 내밀한 곳까지 돈이 파고든다고 생각하니 그걸 피우는 자유란 어쩌면 착각이다 싶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조선 시대 양반들 말처럼 “여자는 피우면 안 된다”하는 여성 혐오자가 있다. 또 그걸 굳이 피겠다며 자유를 부르짖는 “페미니스트”도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 입장으로는 모두 난센스일 뿐이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은 권리일까? 오징어 게임의 한미녀가 담배를 숨겨 들어와 피우는 걸 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관리자들이 그래도 인간미가 있다고. 아니, 바로 그것이 돈이 전부인 자본주의 집단조직의 저열한 속성(담배의 생산‧판매‧소비는 테러, ‘구조적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목숨을 걸고 돈을 따내기 위해 게임에 참여하는 볼품없는 여성 참가자에게서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해 끽연하는 병사의 모습이 비쳐 보였기 때문이다.

      

    “공부 열심히 해. 그래야…”

    “그래야 남들 뼈 빠지게 일할 때 놀 수 있는 거지.”      


    『유한계급론』을 읽고 있던 나는 아들이 그렇게 답하자 깜짝 놀랐다.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 가사에도 나오지 않는가. ‘공부해라. 그건 너무 교과서야.’ 대학에 가는 공부를 한다는 게 그렇지, 아냐, 아냐, 일 안 해도 먹고 살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헛된 짓을 해도 용서받고, 오히려 그것이 자랑이고 과시인 유한계급이 여전한 것 사실이지만, 그런 생활은 우리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겐 해당이 안 돼. 더구나 꿈꿀 것이 못 돼. 우리에게 그렇게 살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공정하지 않다, 성낼 일이 아니란다.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할머니가 태셨던 담배는 진짜 위로였을까? 담배를 피우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지만 그것이 정말 자유의지에 의한 것일까? 어릴 적 할머니가 해 주시던 옛날이야기는 때때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하고 시작되었다. 강준만에 의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는 시절’이라는 말은 한편으로 짐승조차도 마음대로 담배 피우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고 한다. 신분에 따른 담배 예절이 갖추어지기 전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나. 담배, 이 요망한 물건. 결국 나는 꼬이고 꼬인 사오백 년간 세계 약탈의 역사와 자본주의의 어이없는 지배력에까지 화가 나고 만다. 

    모든 딸 들이 엄마가 되는 게 꿈일 수는 없는 세상이니 ‘엄마처럼 좋은 엄마 되는 게 내 꿈’이란 가사는 놔두고, 노래가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너의 삶을 살아라가 아닐까? 엄마가 된 나를 위해 그리고 딸은 아니라도 나의 아들을 위해 생각해 본다. ‘나의 삶을 산다’는 건 뭘까?‘나의 삶을 산다’는 건 그저 자유롭게 담배 피우듯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담배를 맘대로 피운다는 건, 담배와 돈과 이를 위한 약탈이 명예인 세상 논리에 따라 원형 경기장의 검투사처럼 살아야 한다는 뜻일 터이니. 그렇게 살지 않는 삶이란 가능한지, 할 수 있다면, 어찌해야 하는 건지, 이 나이 먹도록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소설 『담배가게 소년』에서 쾌락원칙을 이야기하는 끽연가 프로이트가 주인공 소년에게 이야기한다.      


“길을 아는 것이 우리의 운명은 아니란다.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운명이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건 대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하기 위해서야. 말하자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가는 거지. 크게 운이 좋아야만 간혹 작은 빛이나마 타오르는 걸 볼 수 있어. 그리고 커다란 용기를 내거나 끈기를 보이거나 우직함이 있어야만, 가장 좋은 건 세 가지를 다 갖춰야만 스스로 여기저기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거야!”     


크고 작은 폭력, 보이지 않는 경쟁이 여전한 세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내 아이에게 나는 “너의 삶을 살아라”라고 신념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 꼭 말해주고 싶다. 방법은 여전히 잘 몰라도 그리 사는 것만이 행복한 거라고.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에게도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단다…. 피지도 않는 담배에 대해 생각하느라 책 붙들고 끙끙거린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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