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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 Oct 05. 2023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할 이유

서랍을 뒤적이다가  

겨우 이틀 전 초를 불고 소원을 빌며 스무 살 생일을 맞은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인이니 무엇이든 자유라고 당당히 문자 한 통만 남긴 채. 크게 일탈하는 성질도 아니니 기껏 술을 먹거나 게임을 하거나 늦도록 돌아다니거나 할 터이다. 그런데 아이가 밤에 집에 들어와 잠들지 않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도 모르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생소해서 나는 이유 없이 화가 났다.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아이가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밤은 지나가고 새벽은 오고 해가 떴다. 어떻게 잤는지 모르게 맞는 아침이라 머리가 무거웠다. 어머니는 손주가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난 밤 내놓은 부럼을 왜들 까먹지 않았느냐고 하시는데 속이 시끄럽던 나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며 투덜댔다.     

나는 조금 충격 상태에 빠졌다고 하겠다. 밤새 쌓인 설거지를 해치우고 피어 안젤리의 사랑에 절망한 제임스 딘처럼 뛰쳐나와 차에 올라탔다. 어쨌거나 아침은 밝았고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손가락이 비틀리도록 시동 버튼을 누르고 핸들을 꺾었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이 커지며 덜컹 브레이크를 밟았다. 불쾌한 소음이 머릿속을 긁었다. 어제 커다란 오피러스 옆에 주차하느라 차를 왼쪽 기둥에 너무 가까이 붙여 놓았던 것이 탈이었다. 기분 같아선 드라마에서처럼 액셀 팍, 브레이크 팍, 핸들 팍, 그렇게 팍팍하게 성질도리를 하며 주차장을 나가고 싶었지만 나는 화가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하는 눈을 하고 심호흡을 한 뒤 슬금슬금 차를 몰고 나왔다.     

아파트 입구, 차도에 차가 없다. 이때다 싶어 액셀을 밟던 그때, 비틀비틀 빨간 코트를 입은 할머니가 차 앞을 지나간다. 큰일이 날 뻔했다. 심호흡을 하자. 한 박자 쉰다. 그새 신호가 바뀌었다. 차들이 한바탕 와락 지나갔다. 횡단보도에 빨간신호등이 켜진다. 신호에 걸려 차들이 서기 시작한다. 벗어난 차들만 지나가면 빨리 1차선으로 진입해 이번에는 기필코 좌회전 신호를 타리라. 차선 하나를 지나 안쪽 차선에 들어서려는데 아, 외박한 우리 아들내미만큼이나 뻔뻔스레 신호 무시하고 달려 들어오는 배달 오토바이. 아니 내가 속도를 냈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내 신호는 막바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서둘러 크게 돈다. 아악! 웬 이삿짐 트레일러가 멈춰 서 있다. 역주행 해, 할 수 있으면, 하듯이. 머뭇거리고 있으니 운전석에서 팔뚝이 쑥 나와 차 앞뒤로 팔을 훼훼 젓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 모습에 나는 막 반항하듯 구호 같은 걸 내 지르고 싶다. 어쩌랴, 맞은 편 오는 차를 흘끔흘끔 살피고 중앙선을 넘어 달려간다. 직진하자니 차 꼬리가 길고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아 왼쪽 샛길로 빠져본다. 자전거 한 대가 삐뚤빼뚤 달려든다. 피했다. 이번엔 사이클 한 대가 덤빈다. 아, 오늘, 왜 이러는 거야. 너무 위험해. 이러다가 뭐라도 치받지 않을까.     

다음 길은 30킬로 미만으로 천천히. 학교 앞이니까. 정신 차려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머리 속이 꿈뻑꿈뻑, 전기가 들랄날랑 한다. 다시 한번 좌회전. 어쩌다 보니 맨 앞이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왜 이리 길어. 조심해서 차를 돌린다고 돌리는데, 쌩하고 달려 나가는 오토바이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넋이 나가서 지나간 오토바이를 보고 있는데, 언덕 위에서 아래로 목숨을 건 건지 예닐곱 대의 오토바이 행렬이 헤링본 무늬 대열로 흔들흔들 내려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밥줄을 쥔 배달의 기수들의 무법천지. 젊어서라지만 너무 무모한 것 아닌가. 아들 같은 남자 녀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가슴이 벌떡거렸다. 스물넷의 제임스 딘은 흥분한 채 포르쉐를 몰다 사고로 죽었다. 지금이 6·25도 아니고 쌍팔년도도 아니지만 내 이렇게 정신 못 차렸다간 사람을 치고 말지. 살자. 살아야 한다. 무사히만 돌아가자 다들.     

이제 비보호 좌회전 한 번이면 도착인데. 횡단보도를 모두 건너길 기다렸다 돌았다. 어머, 이번에도 배달 오토바이. 눈을 의심했다. 인도로 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거다. 급히 창을 내리며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오토바이가 앞을 지나려다 놀라서 바싹 붙어 멈췄다. 운전하던 기사를 가까이 보고 알았다. 오토바이를 탄다고 다 내 아들 또래 제임스 딘인 것은 아니구나. 욕지거리를 듣지나 않을까 허겁지겁 창을 닫았다.     

하루하루는 자전거나 오토바이나 자동차 가듯 굴러 간다. 신경 쓰지 않아도 해가 거듭 떠오르고. 그렇게 일상은 살아지는 습관이라서 슬프거나 기쁘거나 바쁘거나 정신이 좀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지나가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아들 때문에 화가 난 그날, 두렵기까지 했던 그 늦은 아침이 왜 그렇게 잊히지 않고 생각이 나는 건지.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아침」이라는 시에서 ‘내게도 한때는 사랑스럽고, 영웅적이고, 전설 같은 젊은 시절이 있었지. 황금 공책에 적어두어야 할 만큼.--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어! 무슨 죄를 지어서,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나는 지금 이토록 무력할까?’ 하는 구절을 읽을 때도, ‘신문배달 아이들이 사무를 인계하는 날 제임스 띵 같이 생긴 책임자가 두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풍경이 눈[雪]에 너무 비참하게 보였던지 나는 마구 짜증을 냈다’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읽을 때도 나는 그 아침이 떠올랐다.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는 건 순식간이고 저 오토바이 부대들, 나처럼 화가나 울컥해 있는 무다리 아줌마 말고도 사람들 속엔 예상치 못한 폭탄 몇 개는 핀이 뽑힌 채 떠돌아다니고 있다. 혹자는 말하리라. 모두 저마다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뿐이라고. 모양이 제각각이라 좀 복잡해 보일 뿐이라고. 나는 영화 『극한직업』에서 닭을 튀겨 장사하느라 본분을 잊어버린 형사들에게 그 동료가 외치는 그 말, 그 말이 하고 싶다. “왜 최선을 다하는 건데?”     

먹고사는 것이 사람에게 중요하긴 하다. 그래도…, 모험할 줄 모르면 젊음이라 할 수 없다지만 적어도 그들의 무모함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조커처럼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정신없이 사는 이유는 저마다 무수하다. 아, 도시의 삶은 왜 이리 보잘것없고 깨지기 쉬운 건지. 백 세 시대라는 말이 무색한 하루살이 라이프스타일. 생각해 보니 그날 아침엔 화를 낼 일이 아니었다. 청년이 밤을 쇠고 들어오는 일이 그렇게 위험한 일이 되다니, 밥 한 끼 챙기고 한 끼 밥값을 버는데 목숨을 걸고 달려야 한다니, 평범한 가정주부가 까딱하면 사람을 칠 수도 있다니. 그런 세상을 울 아들내미가 살아가야 한다. 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문득 깨달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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