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디 Jul 07. 2023

가족이라는 착각

흘러가는 세상의 한순간

    코로나 걱정 때문에 미국에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 마스크를 보낸다. 해외로 마스크를 보내려면 가족관계증명이 필요하다. 그 서류에는 돌아가신 아빠와 엄마 밑으로 우리 삼 남매 이름이 적혀 있다. 돌아가신 아빠의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엄마의 아버지,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인간 복제가 가능한 세상은 아니니까 당연한 이치다. 나 역시 결혼하고 출산을 하면서 가족을 이루고 남편의 가족과 산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환갑을 맞던 해 나는 엄마의 가족관계가 ‘입양’으로 형성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엄마가 엄마를 낳아주신 엄마를 찾은 것인데 나는 나 자신의 존재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한 상담 시간에 가족관계를 할머니·할아버지, 외할머니·외할아버지까지 묻는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연세가 터무니없이 젊어서 나만 상담을 진행하지 못한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스물인 당시 내겐 이와 관련하여 어떠한 작은 의심도 일지 않았었다. 평범함을 모두 갖춘 내게 그런 일이? 그럴 리는 없을 테니. 

    혈연으로는 분명하나 법률로는 남인 엄마의 엄마를 찾아갔다. 마이크 리 감독 영화 『비밀과 거짓말』을 보면 찾은 엄마에게 남편이 없어서 우여곡절은 있어도 엄마와 딸이 만나 새로 관계를 맺고 가족이 되던데, 행인지 불행인지 엄마의 엄마에겐 오랫동안 해로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집 마루 벽면엔 아들·딸들이 이룬 가족의 사진들이 19세기 유럽 전람회장처럼 걸려 있었다.

     "아가, 니, 그리 멀리 혼자 살지 말고 이제 엄마랑 와 살지 그러냐.”

    넓직한 1인 소파에 회장님처럼 앉아서 3인용 소파에서 무릎 위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던 엄마에게 90년대 드라마 속 이덕화 같은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말했다. 혈연으로도 법으로도 남인 사람이 엄마의 남편이니 아버지 아니겠냐는 투다. 언뜻 듣기엔 따듯한 말이다. 아내의 과거를 모두 알고 이해하며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엄마 입장이 되어 들어 보면 사정은 다르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척 살아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으니까.

    ‘이제 와 엄마랑 살라고?’ 머리로 이것저것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할아버지는, 이거저거 먹이려고 부엌과 마루를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할머니와 안절부절 앉은 엄마 사이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그 모습이 불편해 엄마가, 밖에서 맛있는 거 먹고 올까요, 하고 물으면 할아버지는 밖에서 먹으면 어디서 먹든 무얼 먹든 더러운 것 같아서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식사 때문에 엄마랑 여행할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할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할머니는 문갑 깊숙이 넣어둔 반지며 목걸이, 화장품 등을 꺼내 엄마 손에 쥐여주고 얼른 집어넣으라 하기 바쁘다. 떠날 때쯤 할아버지는, 명절에 애들이 어찌어찌 올 예정이니 알고 있으라, 한다. 명절엔 피해 오라는 말이다. 아니 자식이 넷씩이나 있는데! 자기 가족들한테는 하지도 못할 소리를! 

     할머니도 엄마도 말씀이 없다. 할아버지 혼자 얘기가 계속된다. 니 엄니가 나이가 들어서 밭에 나가는 일도 밥하는 것도 힘들다, 네가 들어와서 엄니 도와드리면 훨씬 좋지 않겠냐, 너도 외롭지 않을 거다…. 이쯤 되니 가슴이 뛰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생각이 수영장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물을 잔뜩 먹은 것처럼 빙글빙글 복잡하다. ‘나도 엄마도 할머니도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겠지? 어떡하든 참아야 할까? 할아버지는 자신이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있어. 아니, 아픈 노인이잖아. 불쌍한 사람이야. 할머니가 너무 고생이 심하시겠어. 엄마가 그런 할머니 지켜주고 싶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데! 아니, 엄마는 자신을 버린 데 대해 화도 나지 않는 걸까? 이 두 노인네가 지키려는 가족들은 보아하니 자기들 살기 바빠 보이는데! 가족이라구? 다들 착각하고 있네!’ 

    착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와 반백 년을 함께 한 엄마의 딸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라도 당신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우리 엄마는 이제 당신들이 버린 불쌍한 딸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 숨을 잠시 들이마시고 말했다.

     “할아버지, 울 엄마가 뭣땜에 여기 살아야 하나요? 할머니랑 울 엄마랑 할아버지 진지를 차려 드려야 하는 건가요? 울 엄마가 왜요? 울 엄마한텐 자식이 셋이나 있구요. 다들 배울 만큼 배웠고 잘 먹고 사는 걸요!” 

    할아버지는 잠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할머니는 당황해 일어서시며 늙은 호박이랑 옥수수랑 콩들을 챙기러 나가셨고 엄마는 할머니가 쥐어 준 반지, 목걸이를 옷방에 가져다 놓고 봉투에 할머니, 할아버지 용돈을 챙겨 넣어 장 위에 올려놓고 나와 함께 나왔다. 

    차 트렁크에 옥수수랑 늙은 호박이랑 콩을 넣어 주시는 것을 보고 엄마는 미국에 있는 둘째 보러 3개월 떠나 있을 거라 인사드리러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잘 다녀오라고 엄마 손을 잡았다. 그리고 여태 보지 못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울먹였다.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울보인 울 엄마도 같이 울 줄 알았지만 착잡한 표정을 지을 뿐 말이 없었다….      

    

    엄마가 미국에 다녀오고 얼마 안 되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날이 할머니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