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 사는 거지
“엄마, 이젠 외할머니 어디로 모셨는지 알았어요?”
아빠가 돌아가시던 해, 내겐 외할머니가 한 분 더 생겼었다. 엄마는 엄마의 친엄마를 환갑이 되어서야 만나 그분과 칠순 되던 해 또 헤어지게 되었다. 그해 가을,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고 했다. 할머니랑 함께 살고 계시는 할아버지 전화였다. 할아버진 줄 알고 받았는데 웬 중년의 여자였다. 그 집 큰 며느리라고 했다. 어머님이 최근 연락하시곤 한 것 같아 전화한다며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 하더란다. 왜 그러시냐고 하니,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고, 다리가 아프시다고 했는데 앓지도 않으시고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는 그래, 누구라고 했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냥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어제, 병아리콩으로 콩장을 하려고 물에 불렸어…. 너 병아리콩 해 먹어 봤어?”
내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엄마는 갑자기 생각이 난다는 듯 무심히 물었다.
“어제 한 다섯 시간 정도 불렸나? 그냥 내놓고 잊어버렸는데 갑자기 어디서 톡, 톡, 소리가 나는 거야. 뭔가 하고 보니 병아리콩이 불으면서 그런 소리를 내더라고….”
엄마는 여전히 식탁 위에서 그 신기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기나 하듯 지그시 내려다보며 엷게 웃었다. 지난번 똑같이 물었을 때는 ‘그런 거 알아서 뭐 하겠어?’ 하셨지. 외할머니를 다시 만났지만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다른 할아버지와 자식이 넷씩이나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 자식들이 할머니 얕보면 어떡하느냐며 명절에도 날짜를 피해 찾아갔다. 또 찾아갈 때마다 할아버지가 곁에 앉아계시는 통에 얘기하기도 조심스러웠는데, 할아버지는 산소줄을 하고 계실 만큼 몸도 좋지 않고 나이도 많이 드셔서 어디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것 한 번 대접하지 못했다.
엄마와 할머니가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 외할아버지는 왜 일찍 돌아가셨던 건지, 내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로 알고 있던 분들은 왜 그렇게 늘 차가우셨던 건지, 그 긴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빠는 알고 계셨던 건지…, 엄마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최인훈이 『광장』에서 ‘삶이란 외로움의 아들’이라고 할 때,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다….
엄마와 외할머니댁에 갔었다. 할머니가 무겁게 들려 보내주신 김치 맛이 그렇게 시원했었다. 그때도 그 할아버지가 계셨고, 할머니와 함께 엄마까지 당신 수발드는 사람 취급해 언짢았고, 외할머니는 밖에까지 나오셔서 엄마 손을 잡고 미안하다 울먹이셨다. 두 사람은 왜 좀 더 일찍 만날 수 없었던 걸까…?
입춘도 지났고 우수가 코앞인 오늘, 아침부터 쌀쌀한 바람이 불며 눈이 내린다. 나는 엄마에게 받아온 병아리콩을 넓적한 락앤락 용기에 담고 콩이 잠길락 말락 하게 물을 부어 놓았다. 창을 꼭꼭 닫아 바깥소리가 아득하다. 라디오도 틀지 않았다. 조용히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콩이 두 배도 더 되게 불었는데 소리가 없다. 한 세배쯤 된 것 같은데도 조용하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고 조바심이 나서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차를 한 잔 마시며 창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궁금한 마음에 그릇 가까이 귀를 대고 가만히 들어 보았다.
무슨 소리가 들렸다. ‘톡, 톡…’ 이 아니라 저 멀리서 여러 가지 모양의 작은 돌들이 물결에 구르는 소리 같았다. 이름이 병아리콩이어서인지 그 소리가 무척 천진난만하다. ‘엄마답네…. 이렇게 작은 소리가 들린 거예요? 이 소리가 그렇게 신기했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웃음이 난다. 이제 뭔지 알았다 싶었을 때, 갑자기 ‘딱!’ 하는 소리가 난다. 가만있다가 또 ‘딱!’ 소리가 제법 크다.
“아이스크림은 추운 겨울에 밖에서 먹어야 맛이지!” 꼬꼬마 시절, 엄마와 손 호호 불어가며 아이스크림을 먹었었다. 아이스크림은 너무 차 깨물지도 못하고 입술로 녹여 먹느라 정신이 팔려있을 때 갑자기 엄마한테서 ‘딱!’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엄마는 젊었을 때 껌 좀 씹을 줄 알던(?) 여자였다. ‘딱!’ 씹던 껌으로 작게 풍선을 만들어 입속에서 이로 찰지게 터뜨리는 소리였다. 놀란 날 보고 깔깔 웃었지, 어린 내 눈에도 예쁘고 착한 우리 엄마….
“이거 한번 먹어 볼래? 이번에 내가 담근 김치야.”
“엄마, 할머니 김치처럼 시원하네. 근대 엄마 김치 맛이야. 그러고 보니 엄마도 나이 드니 외할머니 닮 아 보여요.”
“그럼, 얼굴 긴 것이…, 그렇지?”
엄마는 그저 궁금했을 뿐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는데 만나 보았으니 그걸로 됐다, 엄마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됐다고 한다. 엄마가 이렇게 이야기를 마칠 때마다 내 마음은 조금 슬프다. 때때로 쓸쓸하다. 그래서 그 병아리콩이 불으면서 낸다는 소리가 그렇게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공을 들여 기다려서 들은 그 소리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엄마는 괜찮아. 너도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인간사라는 것이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하고, 얽히고 꼬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오늘 종일 불린 병아리콩을 이제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서 남편, 아들과 함께 야식으로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뭐, 그런 게 사는 거지 싶다. 엄마는 늘 이렇게 살아가는 편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