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이야, 갓
알배추, 감자, 오이, 사과, 쪽파 그리고 배추, 이렇게 6개 사와, 엄마, 알배추 맞죠, 그래 알배추, 배추 사 오라고, 니 김치엔 배추 넣어서 하려고, 그럼 마지막에 배추는 뭐고, 언제, 알배추라고, 맞다, 다시마가 없어, 다시마 사와, 그럼 알배추, 감자, 오이, 사과, 쪽파, 그리고 다시마네, 아니, 그러면 6개밖에 안 되잖아, 다시마 더했으니까 7개 아냐, 아니, 엄마가 감자, 오이, 사과, 그리고 뭐더라, 감자, 오이, 사과, 음, 음, 그래 쪽파, 그리고 알배추, 다시마는, 그래 다시마까지, 그러니까 다시마에 알배추, 감자, 오이, 사과, 쪽파 사가면 되죠, 응, 그래.
칠십 대의 엄마는 오십 대인 내게 물김치를 만들어 주마하고 시장 볼 것을 일러준다. 이젠 보일러 온도를 이십 도에 맞추지 않고 둬도 추워지지 않는 완연한 봄이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지리산에서 따왔다는 취나물, 나무 두릅, 땅두릅, 세발나물, 돌나물, 달래, 냉이가 채소가게 맨 앞줄에서 눈길을 끈다. 오랜만에 시장에 나오기도 했고, 또 오랜만에 엄마를 보러 가니, 맛있는 걸 많이 사 보리라. 하지만 웬걸, 감자와 사과를 사니 시장 가방이 단숨에 무겁고, 그렇게 힘들게 목록을 받아 놓고서 적어 놓지 않아 깜빡하는 바람에, 한 단에 이천 원 하는 쪽파를 사러 가다 금세 포기, 사천 원을 주고 사버리고, 이제 서둘러 가볼까 하던 잠깐 사이 한 단에 삼천 원짜리를 발견하고서도 물리질 못한 채 지났다. 엄마랑 점심에 해먹을 수제비를 두 그릇 사서 담고 따뜻하게 막 부쳐 나오는 모둠전 만 원어치를 산 뒤 마지막으로 다시마를 산다. 오천 원짜리와 구천 원짜리가 있다 한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구천 원짜리 주세요, 그리고 작은 소리로, 엄마 드릴 거니까 좋은 걸로, 한다. 시장통 사장님들은 이 말에 마음이 좀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팔천 원만 달라고 한다. 왠지 비싸게 샀을 것만 같던 쪽파 생각이 금세 좋은 다시마 생각으로 바뀌어 기분이 좋다. 벚꽃이, 개나리가 환하게 핀 길을 타고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의 ‘인 운 알트라 비타(In un’altra vita)’를 목청껏 따라 부르며 엄마에게 내려가는 길은 뭐라 더 보탤 수 없이 봄날이다.
수제비를 끓여 점심을 먹고 엄마는, 마루 소파에 앉아 보라 하고 바닥에 노랑, 파랑, 빨강, 보라, 분홍 색색이 곱게 섞인 코스모스, 모란, 해바라기, 장미꽃 모양 수세미를 펼쳐 보인다. 3개월에 하나씩 쓰고 버리면 한 3년은 쓸 수들 있을 거야, 왜 그렇게 바쁘게 많이 뜨느냐고 물으니, 혹 엄마가 죽더라도 생각하면서 한참은 쓰지 않겠나 싶어서란다. 엄마, 요즘은 그 수세미 실도 플라스틱이라 안 썩는다고 친환경 실 들 쓰던데 하니, 그럼 아껴서 써서 더 오래 쓰면 되지 않냐, 한다. 창밖도 봄꽃이 천지지만 집안에도 고운 꽃이 만발이다. 한참을 이리 놓고 저리 놓으며 사진을 찍다 보니, 얼른 김치 담아야지, 한다.
감자 껍질을 벗겨 찐다. 배, 사과하고 양파를 함께 갈아 물김치에 풀어 넣을 거란다. 흰 주머니에 고추씨와 마늘 편, 생강편을 넣어 놓는다. 나는 쪽파를 다듬는다. 쪽파 때문인지, 운전을 오래 하고 밥을 많이 먹어서인지 아님, 봄 햇살 때문인지 심히 졸리다. 나는 졸면서, 넌 고춧가루 들은 거 싫어하니까 뽀얗게 담을 거야, 파프리카라도 빨간색 나는 걸 좀 넣을까 그러면 빛깔이 고울 테니, 파프리카는 안 되겠다, 그럼 당근을 넣으면 되겠다, 하는 엄마 목소리를 꿈결처럼 듣는다. 엄마는 당근을 굳이 꽃 모양으로 만들어서 얇게 썬다. 그러면서 얘기라도 조잘거리라며 나를 자꾸 식탁 의자에 앉아 있으란다. 내가 잠깐 일어난 사이 고양이 코코가 자리를 잡고 빤히 쳐다보기에 나는, 거기 이 언니 자린데, 툴툴거리면서 다른 편 의자에 가 앉는다. 엄마는 논란의 그 알 배추를 소금에 절여 놓고 무, 오이를 썰어서 쪽파와 당근 썬 것과 섞는다. 풋고추도 송송 썰어 넣었다. 감자, 배, 사과, 양파를 함께 갈아 놓은 걸 채에 물을 부어가며 거르고 소금 간 살짝, 그리고 빼먹지 않고 액젓을 조금 넣어 준비한다. 절인 배추를 씻어 듬성듬성 썬 걸 통에 깔고, 저며 놓은 채소들을 골고루 버무려 넣은 뒤, 준비한 물을 붓는다. 고추씨, 마늘, 생강편을 넣은 다시 주머니를 가라앉힌다. 가져가는 동안 새지 말라고 얇은 비닐을 덮은 뒤 뚜껑을 잘 덮어둔다. 소금 한 톨, 물 한 방울까지 나만을 위한 엄마의 맞춤 물김치 완성.
나는 오늘 엄마 사랑을 미국에 있는 여동생 몫까지 더해 혼자서 듬뿍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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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김치는 달라. 장미 잎이라도 넣으신 거?”
“아니, 갓이야, 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