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한 정리
한의원에서 침이란 것을 처음 맞는다. 가본 적이 있긴 하다. 아이가 발목을 삐었을 때 아이의 친구 어머니가 간호사로 있다는 곳이었다. 아이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고 애 아빠도 아니고 ‘내’가 침을 맞았다. 뜸·부황을 떴다. ‘도담탕’이라는 이름의 한약도 지어먹었다. 내가 괜히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에 끌렸던 게 아니었다. 이래저래 배출되어야 할 많은 것들이 덕지덕지 몸에 쌓여 있다고 한다. 설사를 계속하고, 콧물 기침에 몸살 기운이 가시질 않고, 밤이면 어디서 두들겨 맞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아파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건강검진을 해보니 수치가 뭐 하나 좋은 게 없었다. 깜짝 놀라 1년 동안 약 먹고 음식도 잘 골라 먹고 운동하고 노력을 이만저만한 게 아닌데 끝끝내 오십견이 와서 왼팔을 통 쓰지 못하게 되었지 뭔가. 전엔 잘 아프지 않아 병원이란 곳에 다녀보질 않아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주사도 무섭고 침이란 것도 무서운데, 너무 아프니까, 아무 데라도 가서 물어보자 싶었다. 회사 옆에 한의원이 있다고, 오면 점심을 사주겠다고 꼬시는 남편의 유혹에, 마지못해 넘어가는 척, 하지만 절실한 심정으로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팔을 들어 보라고 하는데 창피하게 힘도 주질 못하겠다. 둥글둥글 둘린 살들이 모두 철 덩어리인 것 같았다. 맥을 짚어 보는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살 빼면 다 낫는 병입니다, 소식하시고 운동하셔야 해요, 그러시겠지. 내가 뭐 남들보다 얼마나 더 먹는다고. 운동은 할 만큼 했는걸. 요즘 코로나라 어디 꼼짝 못 해 그렇지. 내 유일한 낙이란 것이 그림 그리고 책 읽는 것이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건 어쩔 수 없잖아. 네, 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해볼게요.
“혹시 우울증 치료 같은 것 받으십니까?”
“아니요.”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뭐지? 의사 선생님은 공황장애가 있지 않은지 재차 물었다. 진맥으로 그런 것도 알 수가 있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할 수 없는 건, 강한 동의이면서 동시에 의도치 않게 너무 놀란 때문이었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병원에 다닌 적은 없다. 그저 오랫동안 우울감에 시달린 건 맞다. 그것이 무시해도 되는 수준인지 병적인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궁금해 여러 번 인터넷 검색을 해 봤었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극심한 공포, 곧 죽지 않을까 하는 강렬한 불안인 공황 발작이 반복적으로 경험 … 비정기적인 강한 두려움이나 불쾌감이 나타나 ….’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였을 것 같다. 한참을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잘 자다가 악몽을 꾼다. 죽을 것만 같아 벌떡 일어난다. 가슴이 뛰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 씩씩거린다. 식은땀이 나고 앞이 안 보이는 것 같고 어지럽다. 대녀에게 들은 꿀팁이 있었다. 얼른 안경을 찾아 쓰고 부엌으로 가 물을 한잔 마시는 거다. ‘지나갈 거야. 기다려.’ 내게 이야기해 준다. 고단해 30초 만에 잠이든 남편도, 멀리 안방에 혼자 계신 시어머니도, 아들도, 모두가 조용한 깜깜한 밤에 혼자 그러곤 했다. 생각해 보니 내게 폐소공포증 비슷한 게 있었다. 그래서 지하철을 잘 못 탄다. 언제부터인가는 조용한 공연장도 못 견뎌 뛰쳐나온 적도 있었고 지하에 있는 소극장 연극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극장에서도 어둠을 무사히 견뎌야 작품을 다 볼 수 있다. 미사를 볼 때도 긴 의자 맨 가장자리에 앉아야 한다. 언제든 재빠르게 나올 수 있도록. 이건 또 언제부터였던지?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바람이 꽤 서늘한 어느 봄날, 나는 넓은 학생식당에 앉아 있다. 곧 강의가 시작되기 때문에 배는 고프지만, 밥은 안 먹고 데운 두유 하나를 사 마신다. 가끔 녹차도 마셨지만 아무래도 녹차는 더 자극되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다니던 학교가 아닌 곳에서 박사과정을 보내고 있었다. 그곳의 수업 내용이나 학생들의 기세가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겁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아이를 낳은 엄마였고 시댁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강의 시간, 갑자기 숨이 막혀 왔다. 식은땀이 났다. 그래서 중간에 밖으로 나왔던 적이 몇 번 되었다. 사람들이 알아챘는지는 모르겠다. 구석 창문을 조금이라도 빼꼼히 열어 놓아야 세 시간에 걸친 강의를 끝까지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싶으면 꾸게 되는 악몽이 있다. 꿈속에 나는 아무 장식이 없는 단단한 나무 관에 갇혀 있다, 살아서. 사람들은 내가 죽은 줄 알고 나를 관에 넣어 땅에 묻었다. 나 살아 있다고 손이 부서져라 관 뚜껑을 두드려 보지만 나는 이미 깊이 묻혀 있다. 나는 그 꿈의 시작을 기억하고 있다. 부엌 옆 조그만 방을 혼자 쓰고 있었다. 동생은 할머니와 함께 자고 있다. 아침이면 엄마가 조심조심 아침을 짓는 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어슴푸레한 새벽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쌀을 씻으신다. 그리고 작게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픈 소리였다. 전날 저녁 외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이란 것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은 엄마를 너무 슬프게 하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밤마다 내 귓가에서 울리는 그날의 수많은 목소리를 안심시키며 잠이 들었다.
한의사 선생님인데 마치 정신과 선생님 같았지만, 돌팔이는 아닌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겨서 선생님 말씀을 잘 따라보자고 결심했다. 약 잘 먹고 침 잘 맞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살도 빠지고, 팔도 나을 거라고 했다. 워낙 멍 때리는 건 잘하니 치료 시간이 오래여도 괜찮았는데 아픈 팔 때문에 제대로 누워 있지도 엎드려 있지도 못했다. 그걸 좀 잊어보려고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오디오북 하나를 틀었다. 『로실드의 바이올린』. 배우 정동환이 읽어준다. 이름이 로실드라, 유명한 와인과 연관된 것인가 했는데, 러시아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이다.
죽는 것이 애타지는 않았지만, 집에 와서 바이올린을 보니 심장이 죄어오며 안타까운 마음이 솟구쳤다.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져 왔고 사라질 테니까! 야코프는 오두막에서 나와 바이올린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문턱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손해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인생을 생각하며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너무도 구슬프고 감동적인 선율이 흘러나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가 더 깊이 생각에 잠길수록 바이올린은 더 서글프게 노래했다.
아픈 팔을 버티고 초승달 모양의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 있는데 문득, 눈물이 흘렀다. 슬픈 바이올린 소리에서 그 어린 시절 엄마의 흐느낌을 들었을까? 아니다. 그냥 팔이 너무 아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