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소망한다
그 집에서 여섯 해가 지나는 동안 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1960년대 지어졌다는 집은 빛이 잘 들지 않아 2층에 마련된 경당이 더욱 동굴 같았다. 빛을 향한 의지로 가득 차 서 있는 나무는 동화 《재크와 콩나무》의 콩나무 같이 키가 크고 잎이 무성했다. 2층 난간에서 올려다보면 털이 보송보송한 나무의 겨울 눈을 볼 수 있었다.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이를 보며 “목련꽃이 피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나무가 목련임을 알았다.
봄을 거듭 지났다. 앙상한 가지에 달린 털복숭이들은 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묻고 검색해봐도 도대체 목련 나무에 꽃이 왜 피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통통하게 매달린 녀석을 발견하면 언젠가 필 수도 있으리라는 바람이 생기곤 했다. 목련 나무가 자라 꽃을 보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니까. 꽃이 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렇게 보기 어렵다는 행운목에 하얀 꽃들이 탐스럽게 달려 향기를 뿜기 시작했을 때 동생의 회사는 부도가 났고 아버지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수유가 피고 졌다. 철쭉이 피고 장미가 달렸다. 아무리 덥고 진드기가 괴롭혀도 무궁화가 피고 졌다. 목련은 피지 않았다. 대신 유난히 큰 잎사귀들만 공룡처럼 턱턱 달려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후두둑 떨어져 쌓였다. 삼사십 년은 족히 그 자리에 있었으리라. 경당에서 나오는 자매님들과 형제님들 말 한마디씩만 모아도 꽃이 피는 기적쯤은 일어나고도 남을 텐데. 그 큰 나무에 환하게 한가득 꽃이 핀다면…, 생각만 해도 초현실적인 기분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나무가 집보다 높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목련의 뿌리는 약해서 언제 넘어갈지 모른다고 했다. 목련은 성장 속도가 빨라 담장이고 어디고 뿌리가 다 헤집고 있을 거라고도 했다. 집과 오래 함께 한 나무는 영물이니 기대 살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집안에 쓰던 가구라면 그저 부숴서 버려버리면 그만이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한 생명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다. 일곱 해가 지나자 거대한 목련 나무가 피우는 꽃에 대한 희망은 모두 사라졌다. 정원의 흙이 바싹 마르도록 비가 오지 않으면 긴 호스를 연결해 2층 경당에서 물을 뿌려 먼지를 씻어주어야 했고, 비가 많이 오면 물구멍이 막혀 마당에 물이 차니 낙엽을 부지런히 쓸어버려야 했다. 태풍이 오면 나무가 쓰러질까 잠도 오지 않았다. 비가 퍼붓던 어느 날, 옆집 지붕 위로 떨어져 배수관을 막은 낙엽 때문에, 그 집 안방 형광등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찔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일터일 뿐 내 집도 아닌데, 사고처리도 사과도 내가 나서서 해야 하니 곤란하고 귀찮고….
나무를 자른대도 일이요, 자르지 않아도 일이었다. 어차피 하는 고생, 이왕이면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분부만 내리시라. 꽃이 피는 것에 대해서라면 함께 희망하고 바라고 기도해 주면 되었다. 그런데 꽃이 피지 않는 나무를 자르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반응이 묘하다. 집을 에워싼 붉은 벽돌을 뒤덮은 담쟁이를 보며 ‘담쟁이’ 시를 읊어주곤 하던 한 자매님은 나무를 좀 다듬자 했고, 온 집이 담쟁이에 점령당할까 무섭게 뜯어내곤 하던 다른 자매님은 나무가 더 자라지 못하게 뿌리까지 파버려야 한다고 했다. 암투병 중이시던 60대 형제님이 나무를 바라보는 눈길은 슬펐다.
집에 들어온 쥐새끼도 “얘들아 자, 자, 나가야지.” 살살 몰아서 밖으로 쫓곤 하던 신부님은 일단 나뭇잎이 옆집으로 떨어지지 않게 다듬기만 하자고 하셨다. 잠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예수의 저주를 듣고 말라버리는 무화과나무라면 좋으련만…. 한 해가 지나자 같은 걱정이 반복되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칠십 만원 가까운 돈이 들었다. 자르던 아저씨들도 밑동만 남겨두고 투덜대며 가 버렸다. 그 누구도 잘했다, 아니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옆집 자매는 또 향나무가 담을 밀어 위험하다며 뽑으란다. ‘예수님은 목수셨다’는 후임 신부님이 직접 톱을 들었다. 식복사 자매와 셋이서 향나무를 잘랐다.
집이 좀 더 밝아진 것도 같고 바람도 더 부는 것 같았다. 지나고 보니 꽃이 피지 않는 거대한 목련과 함께 작은 집에 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나무도 이렇게 어둡고 좁은 곳에서 살기 힘들었겠구나. 꽃 피우기도 버거운 하루하루가 아니었을까. 향나무 속에는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비둘기 소리가 컸었다.
가끔 집을 방문하는 한 자매는 현관문 앞에 절구를 놓고 물을 채워서 그곳에 부레옥잠과 금붕어 두 마리를 넣어 주곤 했다. 부레옥잠의 연보라 꽃을 보는 일은 즐거웠다. 햇살 뜨겁던 어느 날 아침, 배가 뒤집혀 떠오른 두 마리 금붕어를 본 것은 그로테스크였다. 떠오른 금붕어 두 마리를 채로 떠서 납작한 목련나무 밑둥 옆에 땅을 파고 가지런히 묻어 주었다. 이제야 비로소 볕이 들어와 앉은 땅에.
2009년 여름, ‘처치실’이라 써있던 어두운 병실에서 밤을 새웠다. 아침 8시 출근하듯 가셨던 아빠…. 무언가 올라와 꿀꺽 침을 삼켰다. 코끝이 매웠다. 지금 여기가 아니더라도 ‘Et exspecto resurrectionem mortuorum, 그리하여 나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소망한다.’ 카우벨과 차임, 트럼펫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