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디 Jul 19. 2023

당신과 나의 레시피

생일 미역국 

    아 왜 이렇게 안 들어가, 자는 남편 방해 안 되게 유튜브를 좀 보자고 이어폰을 꽂는다는 게 휴대폰에 찔러 넣어야 할 납작한 부분을 내 귀에 열심히 밀어 넣으려다, 눈이 나빠져도 너무 나빠진 거 아니냐, 구멍을 왜 찾질 못해, 툴툴거리다 보니 떠오른다. ‘난 아이폰이 아니잖아.’ 휴대폰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지 싶다. SF소설에서처럼, 내가 죽으면 이 휴대폰이 나를 재현하지 않을까. 

    밤이 깊어 늦은 시각이지만, 새벽에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쇠고기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내일은 시어머니 생신이기 때문이다. 오미크론인가 뭔가 코로나가 진정되질 않아서 식당 예약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지난 일요일 가족들과 함께 집에 모여 식사했다. 질병관리청의 권고를 따르지 않는 격이긴 하지만 작년 팔순 잔치도 줌으로 벌인지라 어른들 모두 백신 접종 완료했으니 약간의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집에서 식구들 모여서 밥 먹는 게 모험이 되었다. 아직 연락들 없이 조용한 걸로 보아서 그래도 무사히 치른 것 같아서 안심이다. 늘 그렇듯이 생신 당일 아침 미역국은 20년 넘게 내 차지다. 이런 꾀, 저런 꾀, 부리며 치르는 맏며느리인 나의 미션. 애 아빠가 아침 일찍 출근하니 새벽 다섯 시에는 일어나야 할까 걱정을 하던 차였는데 어머님, 이번엔 일찍 일어나 밥 차릴 필요 없다고 편의를 봐주신다. 그래도 생일 미역국은 남이 끓여 주는 걸 먹어야 하고 친구분들, 친척분들 전화하셔서 며느리 끓여준 미역국 먹었느냐고 하실 것이기에(어머님은 먹었다고 얘기하마, 하시지만) 미역국만은 끓여 놓자고 생각했다. 

    시어머니가 가장 즐기는 미역국은 ‘맹 미역국’. 그냥 물에, 많이 자르지 않은 미역을 가득 넣고 끓여 국간장에 꾹꾹 찍어 먹는 미역국이다. 시집와서 처음 미역국을 끓일 땐 그걸 몰랐다. 유튜브에서 백종원도 ‘미역만 끓이면 맛이 없잖아요’ 했듯이, 생일엔 그래도 쇠고기미역국이다. 내가 아는 가장 맛있는 건 엄마표이기에 엄마가 끓여 주시던 레시피 대로 최선을 다했었다. 쇠고기를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불린 미역을 넣고 또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고 마늘 조금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한다. 울 엄마의 철학은 ‘미역국은 끓이면 끓일수록 맛있다’이고 미역이 보들보들 풀어질 때까지 끓이는 것이 핵심이었다. 가정 시간에도 혈액순환에 좋은 미역 성분은 지용성이라 참기름을 넣고 볶아 주면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배웠다. 많은 사람이 요리 사부로 모시는 백종원 유튜브도 봤다. 그 사람 음식 간은 늘 의구심이 인다. 그만큼의 국에 그만큼의 국간장과 액젓을 부으면 말도 못 하게 짤 텐데, 그가 시키는 대로 끓였더니 “정말” 맛있더라는 댓글이 넘치고, 그의 레시피가 각광받는 걸 보면, 다른 많은 보통 사람들의 입맛이 나보다 짠 것일 테지 싶다. 그것도 참 이상하다. 주변 사람들과 밥을 먹어보면 나보다도 더 싱겁게 먹는 사람들이 많던데. 

    그런데 시어머니 미역국 레시피는 엄마와 어쩜, 단계 단계가 그렇게 다 다른지. ‘맹미역국’을 좋아한다는 건 국을 무엇으로 끓이던 맑고 깨끗해야 한다는 거다. 고기로 끓이되 고기 잡내가 있으면 안 된다. 특히 핏물을 제대로 빼지 않고 끓여서 떠오르는 불순물은 ‘극혐’이다. 국물의 참기름 냄새는 떫다. 미역은 너무 풀어지지 않게 약간 “꼬득”해야 한다. 그래야 국간장에 “꾹꾹” 찍어 먹을 때 맛있다. 그 맛을 위해선 고기든 미역이든 참기름에 볶지 않는다. 중요한 건 쇠고기에서 불순물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먼저, 양지머리를 준비해(반드시 한우여야 특별히 정성을 드러내 보일 수 있고 제일 맛있는 건 사실) 찬물에 담가 붉은 핏물을 되는대로 빼서 채에 건져 물기를 제거해 두었다가 끓는 물에 한 번 데쳐 낸다. 데쳐 낸 고기를 찬물에 깨끗이 씻어 다시 물기를 빼 두고 깨끗한 냄비에 물을 가득 끓인다. 반드시 “끓는 물에” 고기를 듬성듬성 썬 덩어리째 넣는다. 물에 굵은소금을 약간 넣고 40분 이상 오래 끓인다. 맑은 국에 맑은 기름이 조금씩 뜨기 시작하면(이 기름을 더 고소하게 즐기려면 사태를 섞는다) 고기를 꺼내 손으로 찢거나 칼로 썰어 다시 국에 넣고 끓이다가 불린 미역을 넣고 함께 끓인다. 불린 미역도 찬물에 한 번 씻어 넣는다. 미역에서 충분한 맛이 우러나야 하긴 하지만 너무 끓이면 안 된다. 마늘을 조금 넣고, 국간장은 좋아하시니 생각보다 더 넣고(백종원보다는 조금 넣고) 액젓을 넣어주면 더 깊은 맛이 있어 좋다. 

    엄마도 시어머니도 백종원도 모두 한결같이 하고 넘어가는 말이 있다. ‘미역국에는 마늘을 넣지 않아도 된다지만 그래도 조금 넣어라.’ 미역국에는 마늘을 넣지 않아도 된다고는 도대체 누가 그런 건지. 지금까지 미역국에 마늘 안 넣는 사람을 보질 못했다. 끓여보면 고깃국에 미역만으로도 맛있긴 하다. 그래도 한국 사람이라 그런 건지 왠지 뭔가를 까먹은 기분이 드는데 그래서 그때 마늘을 넣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늘을 넣느냐 안 넣느냐가 아니라 ‘조금 넣어라’인 것 같다. 마늘이 약간 과해지면 매운탕 같지 않게 순식간에 마늘 국이 되어버리는데, 뭐, 이것도 마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용서가 될지도. 

    가끔 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 드릴 때면, 엄마가 나를 좀 낯설게 느끼는 게 보인다. 그러면서 덧붙이신다. 남동생 생일 때 미역국을 끓여줬더니 입맛에 안 맞는다고 하더라고, 결혼해 입맛이 변한 것 같다고. 그럼요, 엄마. 우리 몸은 수시로 변하는걸요. 그럼 엄마도 그러신다. 그렇지, 나도 예전 같지 않아. 엄마, 나이 들어서 솜씨가 변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하면 엄마도, 나도 그래하는 말이야, 옛날 나하고 지금 나하고 다르다고. 

    내가 시어머니 미역국을 끓일 때와 엄마 미역국을 끓일 때 레시피는 각각 정말 다르다. 간도 다르다. 엄마를 위해서는 참기름을 거짓말 같이 넣고 볶다 끓이고, 시어머니를 위해서는 맑은 고깃국물을 우리는 데 정성을 들인다. 나도 핏물 익어 부옇게 떠오르는 불순물 나오는 건 싫으니, 고기 핏물을 충분히 빼는 데 노력한다. 그래도 내가 끓인 미역국은 시어머니와도 엄마와도 다르다. 나는 시어머니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마도 아니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은 생홍합이 들어간 미역국이다. 엄마가 끓여 준 것도 아니고 시어머니가 끓여 준 것도 아닌 내가 끓인 홍합 미역국. 내가 좋아하는 건 나밖에 할 줄 모른다. 엄마들은 그저 남이 해주는 밥이 맛있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나를 위해 해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 원치 않는 음식 억지로 먹을 필요가 없으니까.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언지 여쭤본 적이 있다. ‘곱창전골’이라고 하셨다. 곱창 손질할 줄을 몰라서 해 드릴 수가 없는 음식이다. 맛있는 곱창전골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온 가족, 온 동네 통틀어 어머님밖엔 없다. 한 번은 아주 괜찮은 밀키트를 발견해서 집에서 쇠고기 곱창전골을 해 먹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도 맛있다고 하시고 아들, 남편 모두가 좋아했다. 그래 몇 번을 더 사와 봤더니 식구들 관심이 급격히 식는 것을 느꼈다. 언제 어떻게 만들어도 적힌 레시피로 끓이기만 하면 누가 끓여도 맛있는 음식인데 왤까. 아들에게 물어봤다. 늘 똑같기 때문인 것 같다는 답을 들었다. 뭐지. 기성복과 핸드메이드 차이 같은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아들은 또 더해 말한다. 똑같은데 할머니가 끓여주신 것과 엄마가 끓여준 게 다르다고. 

    집밥이란 건 생각보다 변화무쌍하다. 만드는 사람도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다녀오고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에 따라 또, 그날의 기분과 몸 상태에 따라 다르고, 먹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그날그날 형편에 따라 다르다. 먹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아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같이 음식을 먹었는데 그 음식이 맛있다는 것은 얼마나 일어나기 힘든 일인지 모른다. 집 밖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하지 못한 게 안타까워지는 건 그 때문인지도. 맛있다는 것의 본질은 변함없는 정량과 순서로만 표현된 레시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게 엄마 노릇, 딸 노릇, 며느리 노릇하며 사는 재미인가 싶어 웃는다.

    문득, 빵을 먹을 때 우유랑 먹어야지 탄산음료랑 먹는다며 남편과 싸웠다던 선배 언니는 지금 어떡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빵 먹을 때면 우유랑 탄산음료를 함께 챙길까? 아님, 삼겹살 한 번 먹으려면 불판을 식탁에 올려 구우면서 같이 먹자 아니, 사방에 기름이 튀니 따로 구워 먹자고 다투시던 우리 엄마 아빠처럼 지금도 여전히 때마다 싸우고 있을까? 언니가 자신이 좋아하는 우유를 포기하진 않았을 거다. 그러길 바란다. 우유가 없을 때 가끔은 탄산음료를 마시며 빵을 먹고 있으려나? 

이전 08화 봄날의 물김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