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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 Aug 04. 2023

일이 너무 하고 싶어요

나에게 노동이란 

    ‘Travailler[트라바이에]’, 프랑스어로 ‘일하다’, ‘공부하다’는 뜻이다. 영어나 우리말의 경우는 일하다(work)와 공부하다(study)를 구분해 사용하는 편이다. ‘Travailler’는, ‘일하다’와 ‘공부하다’는 뜻으로 두루 쓰인다. 나는 ‘공부’를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곧잘 오해한다. 잘난척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다른 표현을 쓰라고도 한다. 달리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결혼해서도 여전히 학생이던 때 사람들은 물었다. 집에만 있으면 무료하니 공부하는 게 낫지요, 바깥분이 돈을 많이 버는가 봐요. 그나마 돈을 받는 일을 하던 때도 있었다. 그만둔 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니 또, 집에서 놀기 힘들죠, 아직도 공부를 하나요, 한다. 나이 먹어도 일을 하는 게 좋을 텐데, 말하기도 한다. 나는 학교에서도 트라바이에 했고, 집에서도 트라바이에 했고, 직장에서도 트라바이에 했는데, 사람들에게 내가 학교와 집에서 한 것은 일이 아니다. 학교와 집에서 하는 일로 나의 하루는 바쁘기만 한데, 김사이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물으면, 잘 놀아요, 백수가 과로사한다잖아요, 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청소도 공부, 요리도 공부, 노는 것도 공부, 모든 게 공부라고.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더니…, 팔순을 넘긴 우리 시어머니도 TV에 나오는 요리를 보며 말씀하신다.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공부고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이 일의 정의라니, 어쨌든 공부와 일은 다르다. 그게 보통 상식이다. 그래서 그랬나? 언젠가 문희준의 뮤직쇼(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온 그룹 포레스텔라의 조민규도, 이 중 유일하게 투잡을 뛰는 사람이 아니냐는 문의 질문에, 아뇨,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하고 답을 한다. 이때 문의 반응이 재밌다. “공부도 잡(job)이죠. 일처럼 힘들잖아요.” 공부와 일이 ‘힘들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한 그. 반백 나이 먹도록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자칭 타칭 반백수로 살아온 나는, 처음 보았다. 그런데 그의 말이 내게 왜 그렇게 위로가 되던지.      

    나는 노동이란 돈을 버는 것이라고, 그런 일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매일매일 수고는 그 어느 것도 생산적이지 않았다. 나는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쓰는 일을 할 뿐이므로 일하는 사람, 노동자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바꿔준 글이 있다. 시몬 베유의 「노동의 신비」(『중력과 은총』)였다. 70년도 전에 나온 옛글인데도 현재의 나에게 많은 말을 해 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노동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재창조한다.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필요’ 때문이다. 이 ‘필요’는 존재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오직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노예적이지 않은 노동의 첫째 조건」). 노동은 죽음과 같다. ‘세상의 중력을 견뎌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비참하고 피로하다. 그런데 이것이 노동이 지닌 진정성이다. 내가 한 travails[트라바이](일들), 무겁고 힘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이에 대해 시몬 베유는 단호하게 말한다, 노동엔 피로와 함께 기쁨이,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기쁨, 먹는 것, 쉬는 것, 일요일의 즐거움이 있으나 돈은 그렇지 못하다고.      

    이삼십 대에 나는 해야만 하는 일을 했던 것 같다. 학비가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조교를 했다. 공부하기 위해 장학금이 필요했다. 결혼을 하려고 돈을 벌었다. 도련님들은 결혼한다고 하고 아이 유치원도 보내야 해서 일했다. 남편과 나, 둘이 모두 맏이이다 보니 챙길 일이 많아 돈이 필요했고 나의 아이를 짐짝처럼 맡기고 돈을 벌어야 하는 삶은 도저히 선택할 수 없어 시댁에서 독립해 나오지 못했다.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일종의 서바이벌 경기 벌이듯 일했다. 시어머님이 워낙 부지런하신 시골 분이라 덩달아해야 할 일도 많았다. 어머니는 시골에 가서 메주도 매달고, 마늘도 캐고 콩도 털고 친척분들 잔치에 함께 해주길 바랐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은 아이를 재우고 과제를 해야 해서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불어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갔다. 일 년에 세 번 회지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해서 재밌을 거라, 생각했다. 교수님은, 책상도 있고 조용한 곳이라, 공부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곳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모두 신앙심(?)이 필요한 거였다. 청소, 손님 접대, 식사 준비, 다양한 심부름. 사무장이라는 이름으로 회계도 보고 문상이나 문병을 대신하고 선물 배달을 가기도 했다. 정작 하라고 되어 있는 일은 집에 싸 들고 와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일복은 타고났다는 걸 확인했다. 그래도 보람이 있었기에 생각보다 오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어른의 문턱을 넘는 오랜 시간 무능력한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러다 비로소 알았다. 내가 피곤하게 해야 했던 그 많은 일 들을 ‘그림자 노동’(『그림자 노동의 역습』, 크레이그 램버트)이라고 한다는 걸. 여자, 엄마, 아내, 며느리 그리고 신앙의 이름으로 떠맡았던 일들이었다는 걸. 나는 결국 번아웃이 되었고 공부도 일도 모두 멈췄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생활하자니 주기적으로 멍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베란다를 뛰쳐나가 떨어져도 즉사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아파트 5층의 집. 집에서 노는데 해야 하는 일은 또 자꾸 늘었다. 이게 뭐야, 내 인생 한 번 살아내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어떡하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고민이 계속되었다. 시어머니는 일이 즐거운 분이다. 집에 일이 없으면 동네에서 일을 찾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해보기로 했다. 어머니 영역은 내 영역이 아니었다. 수영을 배우고 싶었다. 무너진 건강을 한번 챙겨보자는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많은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간 맞춰 강좌에 나가는 일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가기 전에 해 놓아야 편안해지는 청소, 빨래, 식사 준비 등등의 기본적인 집안일들이 발목을 잡았다.     

    이런 그림자 노동을 거부하거나 최소화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생활방식’(『그림자 노동의 역습』, 크레이그 램버트)이 있다고 했다. 자급자족의 가치체계에 충실해 기쁘게 수용하는 방법과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는 법. 그 방법을 궁리해 보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돈 벌러 나갈 때보다 시간이 있으니 과일잼이나 만두, 피클 등은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의 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옷빨래는 식구들 각자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 대신해 주는 사람을 찾자니, 그런 세상은 아무래도 모르겠고, 식기세척기와 전기밥솥 그리고 걸레 청소기를 샀다(오천 원짜리도 쉽게 못 사던 나였다). 덕분에 수영을 배웠다. 이제 나는 물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 물속에 있는 것이 아늑하고 기뻤다. 시몬 베유가 그랬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술가들이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구하는 풍요로움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인간의 소명은 수고하여 순수한 기쁨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노예적이지 않은 노동의 첫째 조건」에서)      

    학생도 직장인도 그만두었으니 오랫동안 괄시받던 내 책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요즘 보통 사람에게 책은 너무 크고 무겁다. 가지고 있고 싶어도 놓아둘 곳이 마땅치가 않다. 먼저 제본 책들을 전부 스캔을 떠 pdf 파일로 만들고 꼭 필요한 책들도 역시 파일로 만들어 외장하드에 넣었다. 중고로 팔 수 있는 건 팔고 전공책은 필요한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파괴한 책들은 모두 폐휴지로 팔았다. 폐휴지를 판 돈으로 가족들에게 짜장면과 탕수육을 쐈다. 책을 파괴하다 보니 저마다 만들어진 모양새가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단히 만들어진 책을 뜯을 땐 아쉬운 마음이 컸다. 재활용되지도 않는다는 폐지에 대해서도 미안한 맘이 들었다. 책을 만지는 일이 즐거워졌다. 책을 많이 다루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나이 50에 사서가 되기로 했다.      

    사서자격증을 땄다. 도서관에 원서를 내보았다. 여러 번 떨어졌다. 면접 볼 수 있는 기회라도 얻으면 다행이었다. 하긴 청년들도 일자리 얻기 쉽지 않다는데. 이력서 쓰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일이라 할만한 일을 해보지 않은 것 같아 고민이 되었다. 알바노동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얘기한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마음을 괴롭히는 건 자기소개서였다. 젊어선 그렇게 잘만 써지던 것이….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처럼 달리기를 잘한다고 쓰거나, 김영하 단편 「바람이 분다」에서처럼 ‘일자리를 구해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요. 워드를 조금 치고 컴퓨터 통신은 채팅만 잘해요.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몰라요. 잘 웃고 아주 가끔 우울해요. 종교도 없고 친구도 없어요. 야근할 수 있지만 토요일은 일하고 싶지 않아요. 영화를 좋아하고 소설을 싫어해요. 바흐와 너바나를 좋아해요. 일터가 조용한 곳이면 좋겠어요. 호출기로 연락 주세요’ 하고 쓰면 뽑아주려나. 억지로라도 쿨할 수 있는 건 한 살이라도 어릴 때나 가능하다. 흔히 말하는 디지털 리터러시에 뒤떨어져 보일까 하여 컴퓨터활용능력도 땄다. 아무리 해도 나의 자기소개서에는 자꾸만 회한 비슷한 감정이 끼어들었다. 무엇보다 ‘왜 일을 하려 하는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했다. 자기소개서엔 너무 진지충이라 할 것 같아 못 쓰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엔 나침반 같은 글이 하나 있다.     

어떤 의욕이 없다면 삶은 실로 어둠이고
지식이 없다면 모든 의욕은 무모한 것이며,
노동이 없다면 모든 지식은 헛된 것이고,
      사랑이 없다면 모든 노동은 공허한 것이다.     
      (「일에 대하여」, 칼릴 지브란, 『예언자』에서)     

    나는 공부를 좋아한다. 모든 것이 ‘공부’ 라시던 우리 할머니처럼, 늘 배우고 해 보는 엄마처럼, 바지런한 우리 시어머니처럼,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일한다’는 말은 ‘공부하다’는 말과 같다. 힘들었지만 살려니 필요했던 일, 그래도 열심히 했다. 알아주는 사람 없었으니 돈은 그리 많이 벌지 못했다. 이제 나는 나를 스스로 인정해 줄 수도 있는 나이가 아닐까. 누군가도 말했다, ‘아줌마는 인정이 필요하지 않아’라고. 내게 말해 본다, 그동안 수고가 참 많았구나. 책을 만지면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의 생각 한 조각, 작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작은 도서관이라도, 코로나라도, 배가나 책수선 봉사를 하러 나간다. 잘 빠지지 않는 살도 빠지는 힘든 날도 있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뿌듯하다. 일하러 가는 아침이 기쁘다. 밥값 정도의 수고비도 나온다. 도서관에서 다른 일도 배우고 해 볼 기회가 더 늙기 전에 있었으면 싶다. 일하는 게 노후 준비인 나는, 일이 너무 하고 싶다. 이제, 나를 위하는 것이 자식을 위한 일이고 사회를 위한 일이기도 한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 나를 좀 위해도 되는 나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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