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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윤 Oct 10. 2023

사계절을 좋아하게 된 이유

매일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누가 어느 계절을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사계절을 모두 좋아한다고 답한다. 원래부터 그랬던건 아니었던 자칫 줏대 없어 보이는 이 답의 배경은 내 여행 취향에서 나오게 되었다. 손발이 시릴 정도로 추운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나라로 가는 여행을 좋아했었다. 추위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한국은 겨울인데 이곳은 한여름이라는 역설적인 부분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 같았기에 그 감정을 잔뜩 채우고 한국에 돌아와 주변 친구를 만나면 그곳의 해변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분위기는 또 어땠는지 자랑 겸 이야기를 한마디씩 건네며 잠시나마 그 여행의 여운을 가져오는 낙으로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두 계절을 보내 다시 여름이 돌아올 즈음에 유난히 푹푹 찌는 날씨와 밤잠 설치게 하는 모기로 여름에 대해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빼놓지 않고 여름에 대한 불평을 늘이기 마련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빨리 여름이 지나갔으면, 또 한편으로는 빨리 겨울이 와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떠났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에 역설적인 부분을 찾게 되었다. 겨울에는 그렇게 따뜻한 곳을 찾으면서 막상 그 계절이 찾아왔을 때는 이리 경악을 하고 있었다니…. 다양한 원인을 찾아보았으나 이 모든 역설적인 상황을 관통할 수 있는 이유는 없었고,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은 두 계절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랐다는 것이다. 같은 기후에 그저 즐거웠을 시간으로만, 혹은 괴로웠을 부분으로만 필터를 걸쳐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에 꽤 놀라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 괴로웠던 계절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게 되었다. 본인도 겨울이면 그랬었고 누군가는 그토록 기다렸거나 혹은 바랐을 이 계절의 매력을 찾아 만끽하기로 했다. 시원한 바다에 가서 친구들과 서핑을 하고 살을 잔뜩 태워 온다거나 혹은 물과 관련된 행사에 가서 어렸을 때 이후로 오랜만에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놀다 온다거나 여름이라 즐길 수 있는 것들로 온전히 여름을 보내며 조금씩 여름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부터 무난히 봄, 가을을 좋아했었고 위와 같은 이유로 여름과 겨울을 포함한 다른 계절의 고유 매력을 눈여겨보게 되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사계절을 차별을 두지 않고 좋아하게 되었다. 봄은 따뜻한 날씨와 봄에 볼 수 있는 여러 꽃들의 싱그러움이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을 주기에, 여름은 여름에만 할 수 있는 물과 관련된 액티비티들이 다른 기억보다 선명한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기에, 가을에는 떨어지는 낙엽 밟는 소리와 또 선선한 날씨가 가족같은 포근함과 차분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기에, 겨울은 한없이 추운 날의 저녁에 코트를 입고 입김을 내며 걷는 폼이 꽤 감정을 센치해지게 만들어주어 좋았다. 

 돌이켜보니, 계절에 대한 역설적인 마음가짐이 현재에 겪고 있을 이 계절에 대한 행복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해 보니, 이런 마음가짐은 계절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앉아있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 시절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학교에 대해 답답함으로 가득해 자유로운 성인을 부러워했었고, 성인이 된 지금에서는 늘어나는 책임감과 걱정거리들 때문에 지금보다 실수가 누적되지 않았고, 순수했을 학생 시절이 그리웠었다.

 어쩌면 매 순간 내내 다른 이유와 상황들로 인한 결핍 혹은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타임라인들을 정리해보면 다른 순간에서 그 결핍이 해소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네이버 지식in에 올라왔던 질문과 답변이 떠올랐다.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더 행복한 미래를 만들라는 답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자칫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말장난이라 여겼었는데 최근에 와서야 이 답변이 다시 마음에 와닿기 시작한다. 심심한 출근길을 달래주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 업무 시작 전 여유를 내 즐기는 커피 한잔, 업무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바라보는 창밖 풍경과 햇살, 퇴근하고 한숨 돌리고 전화를 걸어 듣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내가 사계절을 차별없이 사랑하듯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현재도 어느 순간에서 그리워하고 바랐을 그 순간일 것이 분명하기에 부족한 것들보다 채워진 것들을 매일 의식하고 사랑하려 노력한다.

겨울이면 따뜻한 나라로 가는 여행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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