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재 Oct 10. 2023

사계절을 좋아하게 된 이유

매일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누가 어느 계절을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사계절을 모두 좋아한다고 답한다. 원래부터 그랬던건 아니었던 자칫 줏대 없어 보이는 이 답의 배경은 내 여행 취향에서 나오게 되었다. 손발이 시릴 정도로 추운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나라로 가는 여행을 좋아했었다. 추위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한국은 겨울인데 이곳은 한여름이라는 역설적인 부분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 같았기에 그 감정을 잔뜩 채우고 한국에 돌아와 주변 친구를 만나면 그곳의 해변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분위기는 또 어땠는지 자랑 겸 이야기를 한마디씩 건네며 잠시나마 그 여행의 여운을 가져오는 낙으로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두 계절을 보내 다시 여름이 돌아올 즈음에 유난히 푹푹 찌는 날씨와 밤잠 설치게 하는 모기로 여름에 대해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빼놓지 않고 여름에 대한 불평을 늘이기 마련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빨리 여름이 지나갔으면, 또 한편으로는 빨리 겨울이 와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떠났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에 역설적인 부분을 찾게 되었다. 겨울에는 그렇게 따뜻한 곳을 찾으면서 막상 그 계절이 찾아왔을 때는 이리 경악을 하고 있었다니…. 다양한 원인을 찾아보았으나 이 모든 역설적인 상황을 관통할 수 있는 이유는 없었고,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은 두 계절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랐다는 것이다. 같은 기후에 그저 즐거웠을 시간으로만, 혹은 괴로웠을 부분으로만 필터를 걸쳐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에 꽤 놀라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 괴로웠던 계절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게 되었다. 본인도 겨울이면 그랬었고 누군가는 그토록 기다렸거나 혹은 바랐을 이 계절의 매력을 찾아 만끽하기로 했다. 시원한 바다에 가서 친구들과 서핑을 하고 살을 잔뜩 태워 온다거나 혹은 물과 관련된 행사에 가서 어렸을 때 이후로 오랜만에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놀다 온다거나 여름이라 즐길 수 있는 것들로 온전히 여름을 보내며 조금씩 여름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부터 무난히 봄, 가을을 좋아했었고 위와 같은 이유로 여름과 겨울을 포함한 다른 계절의 고유 매력을 눈여겨보게 되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사계절을 차별을 두지 않고 좋아하게 되었다. 봄은 따뜻한 날씨와 봄에 볼 수 있는 여러 꽃들의 싱그러움이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을 주기에, 여름은 여름에만 할 수 있는 물과 관련된 액티비티들이 다른 기억보다 선명한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기에, 가을에는 떨어지는 낙엽 밟는 소리와 또 선선한 날씨가 가족같은 포근함과 차분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기에, 겨울은 한없이 추운 날의 저녁에 코트를 입고 입김을 내며 걷는 폼이 꽤 감정을 센치해지게 만들어주어 좋았다. 

 돌이켜보니, 계절에 대한 역설적인 마음가짐이 현재에 겪고 있을 이 계절에 대한 행복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해 보니, 이런 마음가짐은 계절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앉아있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학생 시절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학교에 대해 답답함으로 가득해 자유로운 성인을 부러워했었고, 성인이 된 지금에서는 늘어나는 책임감과 걱정거리들 때문에 지금보다 실수가 누적되지 않았고, 순수했을 학생 시절이 그리웠었다.

 어쩌면 매 순간 내내 다른 이유와 상황들로 인한 결핍 혹은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타임라인들을 정리해보면 다른 순간에서 그 결핍이 해소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네이버 지식in에 올라왔던 질문과 답변이 떠올랐다.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더 행복한 미래를 만들라는 답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자칫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말장난이라 여겼었는데 최근에 와서야 이 답변이 다시 마음에 와닿기 시작한다. 심심한 출근길을 달래주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 업무 시작 전 여유를 내 즐기는 커피 한잔, 업무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바라보는 창밖 풍경과 햇살, 퇴근하고 한숨 돌리고 전화를 걸어 듣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내가 사계절을 차별없이 사랑하듯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현재도 어느 순간에서 그리워하고 바랐을 그 순간일 것이 분명하기에 부족한 것들보다 채워진 것들을 매일 의식하고 사랑하려 노력한다.

겨울이면 따뜻한 나라로 가는 여행을 좋아했다.


작가의 이전글 ‘흠뻑 쇼’에 흠뻑 빠져든 사람의 회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