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3. 생추어리
흙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비좁은 뜬장(바닥이 들린 철창) 안에서 태어나고 죽어가는 300여 마리의 반달곰들이 있다. 1981년, 가축으로 수입해 들여오도록 허가했으나 88 올림픽을 전후해 수입도 수출도 금지. 이후 정부는 웅담채취와 판매를 허가하지만 수요는 없었다. 보상을 놓고 40년 넘게 이어진 농장주와 정부의 평행선.
2022년 3월, 그중 극소수인 22마리가 시민들의 도움으로 뜬장을 벗어났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자유를 누릴 곳이 우리나라에는 없었다. 길고 복잡한 시간과 수속을 거쳐 머나먼 미국 땅 콜로라도의 TWAS (The Wild Animal Sanctuary)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흙을 밟을 수 있었다.
생추어리 Sanctuary (넓게는 세속의 법에서 벗어난 성역, 좁게는 제단을 의미한다). 사육장, 실험실, 동물원, 서커스 등 오랫동안 인간에게 길들여져 더는 스스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동물들을 위한 피난처. TWAS가 인상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그 규모. 현재 1,214 에이커(약 150만 평) 면적 안 90여 개 서식지에서 750여 마리의 사자, 호랑이, 곰, 늑대 등이 살고 있다.
150만 평이라면 여의도(87만 평)를 2개 합친 정도의 면적인데... 엄청 넓은 것 같지만 한 마리당 차지하는 면적으로 따져보면 약 2천 평 - 가로세로 80미터 정도 - 에 불과하다. 그래서 TWAS는 시민들의 현금기부와 토지구입 캠페인, 교육사업 등을 통해서 생추어리의 면적을 10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생추어리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야생동물을 야생동물답게 대하기 위한 최소 조건은 서식면적이라는 것을. 예를 들어, 야생 상태의 시베리아 호랑이 한 쌍을 위해서는 최소 400 제곱 킬로미터 - 서울 면적의 66% - 가 필요하다. 새끼라도 태어난다면 더 넓은 면적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최소한의 조건을 보장하지도 못하면서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말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월악산에 산양을 방사하기 시작한 것이 1994년, 지리산에 반달곰을 방사하기 시작한 것이 2004년. 지난 30여 년의 '복원사업'을 통해 산양과 반달곰의 숫자는 늘어났다지만 과연 그들의 삶은 평안에 이르렀나?
산양들이 좁은 보호구역을 전전하다 겨우내 떼죽음을 당하고 온난화 때문에 일찍 겨울잠을 깬 반달곰이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오는 것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많은 이들의 오랜 노력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야생'을 받아들일 생각도 준비도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방사'는 허울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솔직히 인간은, 애초부터 야생성을 부정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하늘이 내린 유일무이의 특별한 존재라고 스스로 여기면서.
22마리 반달곰의 생추어리를 향한 여정은 김민우 감독의 다큐 <곰마워> 에서 확인할 수 있다.